인형으로 만든 블랙코미디, 영화 ‘더 하우스’ [리뷰]
넷플릭스 ‘더 하우스’ 리뷰 독특한 질감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귀여우면서도 섬뜩한 느낌, 옴니버스 구성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움직이는 그림’이다. 요즘은 3D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겠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애니메이션’을 검색해보면 ‘만화나 인형을 이용하여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촬영한 영화. 또는 그 영화를 만드는 기술’ 이라는 검색결과가 나온다.
‘인형’을 이용해 만드는 애니메이션이 바로 오늘 소개할 애니메이션의 기법, ‘스톱모션’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이들은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나 ‘패트와 매트’, ‘치킨 런’, ‘코렐라인: 비밀의 문’ 등을 떠올리면 되겠다. 1993년의 영화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 또한 스톱모션 형식으로 제작됐다.
인형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수십 개에서 수백 개까지 제작해야 하다 보니, 보통 제작하기 쉬운 클레이를 재료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스톱모션 방식은 다른 기법에 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는데다 ‘움직이는 인형’이라는 소재에서 오는 기괴함 탓인지 호불호가 갈려 소비층도 한정적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 ‘더 하우스’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기괴함을 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 블랙 코미디 영화다. 영화 속 인형들은 클레이가 아니라 양모펠트 인형으로 제작되어 독특한 감성을 전한다.
‘더 하우스’는 2022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디 어즈’를 제작한 파로마 바에자 감독과 ‘멋진 케이크!’, ‘오 윌리…’를 제작한 에마 데 스와프 감독, ‘토드와 토드’, ‘더 버든’, ‘썸띵 투 리멤버’를 제작한 니키 린드로스 본 바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코미디 드라마 장르의 단편 모음집 영화다.
출연진으로는 미아 고스, 자비스 코커, 수잔 워코마, 헬레나 본행 카터, 매튜 구드, 클로디 블레이크리, 스벤 볼터 등이 성우로 참여했다. 영화 평점 사이트 왓챠피디아에서 5점 만점에 3.2점(2748명)을 기록했으며 IMDB 별점 6.8점(평가자 1만2949명), 로튼토마토 97%를 달성했다. 러닝타임은 97분이다.
영화는 세 명의 감독이 제작한 에피소드 형식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채의 집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귀여운 인형으로 제작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지만 ‘집’이라는 주제에 대해 심오한 철학을 전하는 블랙 코미디 영화다.
첫번째 에피소드 ‘거짓의 속삭임(And heard within. A lie is spun.)’은 집에 대한 허영심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소녀 메이블의 가족은 허름한 저택에서 생활한다. 오랫동안 생활해온 정든 공간이지만, 메이블의 동생 이사벨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집을 찾은 메이블의 부친 레이먼드의 형제자매들은 그들의 집을 무시하고 깎아내린다.
자존심이 상한 레이먼드는 술에 취한 채 숲속을 방황하고, 그러던 중 숲속에서 ‘밴 슌비크’라는 건축가를 만나 특별한 제안을 받게 된다. 으리으리한 신축 저택을 메이블의 가족에게 대가 없이 지어주는 대신, 기존 살던 집을 버리고 새로운 집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라한 집이 부끄러웠던 레이먼드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가족들을 이끌고 저택으로 이사한다. 저택 안에서는 계속해서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메이블은 불안감을 느끼지만, 메이블의 부모 레이먼드와 페니는 저택의 화려함에 홀려 불안감을 느끼지 못한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신분과 체면의 수단으로서 집을 대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메이블의 가족이 선물 받은 주택에는 항상 으리으리한 식사가 차려져 있지만 커튼이나 침대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부재한다. 화려한 주택의 건축을 위해 기존 메이블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집은 무참히 분해된다.
첫번째 에피소드의 배경이 과거라면, 두번째 에피소드 ‘아무도 모르는 진실(Then lost is truth that can’t be won)’의 배경은 현대다. 밴 슌비크의 저택은 시간이 흘러 새로운 주인인 쥐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집을 구매한 쥐는 개발업자로, 자신이 살기 위해 저택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집을 고쳐 팔아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개발업자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업자를 쓰지 않고 혼자 힘으로 집을 리모델링하고, 은행에서는 매일 빚을 갚으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집은 하루가 다르게 멋진 모습을 갖추지만, 정작 집의 주인인 개발업자는 자신이 구매한 집의 허름한 지하실에서 ‘벌레’처럼 웅크린 채 살아간다.
예비 고객들에게 집을 공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개발업자는 저택에 벌레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손님들에게 멋진 집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벌레를 모두 몰아내야 하므로, 그는 붕산가루와 청소기를 들고 벌레들과 씨름을 시작한다.
두번째 에피소드에는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태도에 대해 비판한다. 개발업자는 은행에 빚을 지면서까지 집을 구매하지만 그 집은 생활을 위한 공간 ‘집’이 아니라 부자가 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부동산을 투기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자연히 투영되어 보인다.
세번째 에피소드 ‘귀 기울이면 행복해요(Listen again and seek the sun.)’에는 마지막 집주인, 로사가 등장한다. 마을은 홍수로 잠겨버리고 언덕 위에 지어진 집 또한 곳곳이 습기에 젖어 생활할 수 없는 상태다.
로사는 셋방을 내주며 살아가는 원룸의 주인인데, 주변이 물에 잠겨버렸으므로 대부분의 세입자는 모두 떠나버렸고 남은 두 명의 세입자는 제대로 된 집세를 지불하지 않는다. 로사는 그들이 돈을 내지 않아 집을 고치지 못하고, 집을 고치지 못해서 새로운 세입자가 오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사실 마을 전체가 호수에 잠겨버린 상황에서는 집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로사는 집에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어 차마 집을 버리고 떠나지 못한다. 집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로사의 앞에 어느 날 코스모스라는 신비한 인물이 나타난다.
영화는 세 주인공 중 로사를 가장 온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로사는 이 기묘한 집을 체면의 수단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 집 그 자체로서 애정을 가지고 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집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집이라는 물건에 집착하게 되면 긍정적인 결과를 보기 어렵다. 로사는 결국 ‘집’이라는 애정의 관념이 그 자리에 묶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각종 비유를 곁들인 영화는 친절한 설명서보다는 불친절한 예술작품에 가깝다. 서늘한 교훈과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펠트인형들로 인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집’이라는 소재가 생활의 따뜻함 이전에 신분의 증명과 부의 수단, 그리고 집착의 이미지를 전하는 시대에 소소한 생각의 시간을 선물해주는 독특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오늘은 영화 ‘더 하우스’를 추천한다.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