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감독 “멋대로 편집” vs 쿠팡플레이 “감독이 수정 거부”
‘안나’ 성공 뒤에 밝혀진 편집권 분쟁 이주영 감독 VS 쿠팡플레이 첨예한 의견차 투자사의 권리? 창작자의 권한?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 이주영 감독과 쿠팡플레이 측이 ‘편집권’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
지난 2일 이주영 감독은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시우(담당변호사 송영훈)를 통해 “현재 공개되어 있는 6부작 형태의 <안나>는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이 감독을 배제한 채 쿠팡플레이가 일방적으로 편집한 것”이라며 “서사, 촬영, 편집, 내러티브의 의도 등이 모두 크게 훼손됐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장문에 따르면, 이주영 감독은 듣도 보도 못한 편집본에 자신의 이름이 달리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 크레딧의 ‘감독’과 ‘각본’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쿠팡플레이는 이를 거절했고, 문제의 시정을 요구했음에도 쿠팡플레이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감독 측은 쿠팡플레이 측이 공개 사과 및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다하겠단 강경항 입장을 내보이기도 했다. 이 감독은 “<안나>는 타인보다 우월한 기분을 누리고자 저지르는 ‘갑질’에 대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유감스럽게도 쿠팡플레이는 이 같은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편집한 <안나>를 ‘쿠팡플레이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을 붙여 공개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현재 공개된 <안나>는 그 어떤 ‘오리지널’도 없다”라며 “창작자가 무시, 배제되고 창작자의 의도가 남아나지 않는 ‘오리지널’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김정훈 편집감독도 이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저는 <안나>를 편집한 편집감독이나, 지난 6월 24일 만나본 <안나>는 내가 감독과 밤을 지새우며 편집한 ‘안나’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만든 8부작이 6부작으로 짜깁기되어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나는 편집과 관련된 쿠팡의 의견을 담은 페이퍼를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라며 “내가 편집한 것이 아닌, 누가 편집했는지도 모르는 <안나>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견디가 어렵다”라고 성토했다.
<안나> 사태에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쿠팡플레이는 지난 3일 입장을 밝혔다. “<안나> 촬영이 시작된 후부터 일선 현장의 이 감독과 제작진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왔으나, 감독의 편집 방향은 당초 상호 협의된 방향과 현저히 달랐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수개월에 걸쳐 감독에게 구체적인 수정 요청을 전달했으나 감독이 수정을 거부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작사의 동의를 얻어, 계약에 명시된 우리의 권리에 의거해 쿠팡플레이는 원래의 제작 의도에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했고, 그 결과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는 작품이 제작될 수 있었다”라고 자찬했다.
쿠팡플레이 측은 감독의 편집 방향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총 8부작의 <안나> 감독판을 8월 중 공개하기로 했다.
쿠팡플레이의 결정에 이 감독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이 감독 측은 “쿠팡플레이가 감독에게 수정 요청을 전달했고 감독이 수정을 거부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보통 편집본에 관한 제작사나 배급사의 의견은 협의를 거쳐 공식 문서로 제시되는 것이 보편적이나 이러한 문서를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라고 꼬집었다.
“감독의 편집본은 승인을 받은 시나리오 최종고와 동일했다”라며 “쿠팡플레이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입장문을 발표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면서 “대한민국 영상산업의 발전과 창작자 보호를 위하여 이번과 같은 지극히 부적절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의 실행에 나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안나> 사태가 남긴 것
이번 <안나> 사태가 남긴 것은, OTT 시대를 맞아 거대 플랫폼들에 관행처럼 남은 일종의 ‘갑질 계약’이다. 제작사 측은 어떻게든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기 위해 OTT와 IP(지적 재산권)를 모두 넘기는 방식으로 계약을 진행한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들이 지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창작자들이 계약을 꺼리는 이유다.
여기서 창작자와 제작사의 입장은 다소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제작사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계약의 성사라면, 창작자들은 그 외에도 온전히 만들어진 자신의 창작물을 인정받고 평가받는 일을 중하게 여긴다.
쿠팡플레이 측이 창작자와의 소통 없이 제작사와의 계약서만을 들이밀며 그쪽의 동의를 얻어 편집본을 가져가고 그걸 재편집해 내놓은 건, 아무리 투자자라고 해도 창작자의 고유 권한이라는 선을 완벽히 넘어버린 행위라 할 수 있는 것.
쿠팡플레이 측의 반박문에 드러난 “제작사의 동의를 얻어, 계약에 명시된 우리의 권리에 의거해 쿠팡플레이는 원래의 제작 의도에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했고, 그 결과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는 작품이 제작될 수 있었다”라는 대목이 쿠팡플레이의 태도를 잘 나타낸다. 창작자의 동의를 얻지 못했더라도 계약을 했던 제작사의 동의만 얻으면 된다는 식이다.
무엇보다도 시청자들이 호평했으니 괜찮다는 것인데, 본래 감독의 의도대로 완성됐던 8부작을 본 적이 없는 시청자들로서는 쿠팡플레이측 얘기대로 8부작보다 6부작이 더 나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또한 상업적으로 더 나은 작품이 완성됐다 하더라도 온전한 창작자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작품을 마치 그 창작자의 생각대로 만들어진 것처럼 포장해 내놓은 건 소비자인 시청자를 기만하는 일이기도 하다. 조금 세게 표현하자면 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한편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는 지난 6월 24일 최초 공개됐다. 드라마는 정한아 작가의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 인생을 살게 된 유미(수지 분) 이야기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