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산이 관행” 넷플릭스 VS SK “콘텐츠 사업자는 해당없다”
‘망 사용료’ SKB VS 넷플릭스 SKB, 증인 내세워 “망 사용료 내라” 회선 사용료 약 300억, 넷플릭스 “내가 왜?”
망 사용료 지급을 둘러싸고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팽팽하게 맞섰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9-1부(정승규·김동완·배용준 부장판사)는 24일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이하 SKB)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항소심의 5차 변론을 진행했다.
이날 변론에선 2016년 당시 무정산 합의 여부에 대한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SKB와 넷플릭스는 2015년 9월 처음으로 망 연결에 대한 합의를 진행했다. 이후 2016년 1월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망을 연결했다. 그리고 2018년 5월부터 망 연결 지점을 일본 도쿄로 변경했다. 이때부터 두 회사의 의견 충돌이 시작됐다.
앞선 네 차례의 변론에서 SKB는 “처음 시애틀에서는 일반 연결 방식(Public Peering, 퍼블릭 피어링)을 적용했지만 2018년 5월 도쿄로 연결 지점을 바꾸면서 직접 연결 방식(Private Peering, 프라이빗 피어링)을 사용했기 때문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어링’은 주로 ISP 사이의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트래픽을 교환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맞선 넷플릭스는 “연결 지점이 시애틀에서 도쿄로 바뀐 것이지, 트래픽을 교환하는 방식은 같다”고 반박했다.
5차 변론에서 SKB는 “넷플릭스와 망 이용료 무상 합의를 한 적이 없다. 당초 시애틀에서는 연결에 관한 별도의 합의를 거치지 않고 퍼블릭 피어링이었지만 도쿄로 연결 지점을 변경한 이후에는 별도의 합의가 필요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SKB는 실무자 H씨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그는 “2018년 1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넷플릭스 측 기술 실무진과 만나 도쿄로 망 연결 지점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후 넷플릭스는 시애틀 연결 지점에서 트래픽 과부하가 발생했다고 증언하며 SKB 측에 도쿄로 연결 지점을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메일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H씨는 “그렇지 않아도 모니터링하던 트래픽의 상태가 불량했고 넷플릭스 트래픽과 관련한 소비자 불만도 다수 발생했다. 그 전부터 회사 차원에서 논의되던 상황에 넷플릭스 측의 관련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엔지니어기 때문에 다른 부서의 업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관련 부서에서 망 연결 비용 등에 대한 부분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느냐는 질문에는 “아마 넷플릭스 측과 논의됐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답했다.
넷플릭스는 H씨에게 “프라이빗 피어링은 반드시 이용료를 지급해야 하냐”고 질문했다. H씨는 “서로간에 명시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계약 당사자와 매번 협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후 넷플릭스는 “SKB가 도쿄로 연결 지점을 변경할 당시 ‘망 이용료’를 요구했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특히 넷플릭스는 망 연결 지점을 변경하는 것이 양사 법률관계의 변경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피어링에 있어서는 전 세계 사례의 99%가 서로 직접적인 대가를 주고받지 않아도 사실상 정산한 것으로 인정하는 관행, 이른바 ‘빌앤킵’ 방식인 점을 들어 이용료를 지불한 필요가 없다는 것.
넷플릭스는 무정산 피어링은 SKB에 이득이었다고 주장했다. 지리적으로 한국에 더 가까운 도쿄를 망 연결지점으로 사용하며 더 적은 비용으로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SKB는 빌앤킵 방식은 인터넷사업자(ISP) 사이에서 행해져 온 관행일 뿐, 콘텐츠 사업자(CP)인 넷플릭스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시장에 미칠 파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두 회사의 분쟁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분쟁에서 SKB와 넷플릭스는 각각 망(네트워크) 사업자와 콘텐츠 제공 사업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SKB가 승리할 경우엔 KT, LG유플러스 등 다른 네트워크 사업자들도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를 청구할 명분을 갖는다. 반면 법원이 넷플릭스의 손을 들어줄 경우엔 지금까지 전용 회선 사용료를 지불해 온 다른 콘텐츠 제공 사업자들 역시 지불할 의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SKB가 승소할 경우 넷플릭스가 지불해야 할 전용 회선 비용은 약 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