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하나만 보고 달린다, ‘극한직업’ [리뷰]

영화 ‘극한직업’ 리뷰 코믹 장르로 천만 돌파! 감동-신파-교훈 걷어내니 통하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는 이유는 다양하다. 로맨스 영화를 보며 설렘을 느끼고 싶어서, 액션 영화를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어서, 다큐 영화를 보며 그간 몰랐던 사실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싶어서… 하지만 본질은 결국 즐거움이다. 더없이 행복한 순간에 그 기분을 망치기 위해 영화를 보는 사람은 없다. 현실이 지칠 때, 우리는 이야기로 위안을 받으려 영화를 본다. 그리고 이 ‘즐거움과 위안’이라는 목적에 코미디만큼 적합한 장르는 없다. 오늘 소개할 영화 <극한직업>은 작정하고 ‘웃기기 위해’ 만든 영화가 분명하다. 

2019년 설 명절을 앞두고 개봉한 <극한직업>은 15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1,600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명량>에 이어 역대 국내 영화 2위에 올랐다. 이전까지 천만 관객을 넘은 코미디 영화는 <7번방의 선물>이 유일했다. <7번방의 선물>이 2013년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2010년대 후반 국내 영화계에서 코미디 영화는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코미디 영화계의 부진 속에서도 1,600만 명이 극장을 찾게 한, <극한직업>의 매력을 들여다보자.

이름부터 거창한 마약반, 하지만 실적은 바닥이다. 사고라도 안 치면 다행이건만, 그마저 쉽지 않다. 결국 마약반은 해체 위기에 몰린다. 마약반 고 반장(류승룡 분)보다 후배인 강력반 최 반장은 실적도 평판도 한 수 위다. 최 반장이 먼저 과장으로 승진해 쏘는 회식 자리에 따라가서 먹는 소고기는, 안 넘어갈 줄 알았지만 맛만 좋다. 최 반장은 고 반장에게 마약계 거물을 검거하기 위한 공조를 제안하고, 마약반은 명예 회복에 나선다. 

마약조직의 아지트 근처에서 그들의 동향을 엿보던 마약반은 잠복근무에도 한계를 느낀다. 그들의 아지트로 쉽게 들어가는 배달부를 본 마약반은 덜컥 치킨 집을 인수하게 되고, 그렇게 그들의 고난은 본격 시작된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장소를 쓰기 위해 치킨 집을 인수했을 뿐인데, 없다던 손님이 몰려온다. 마약반은 결국 치킨을 팔기로 한다. ‘어쩌다’ 인수한 치킨 집에 ‘어쩌다’ 만든 레시피는 초대박이 났다. 몰려드는 손님에 마약반은 이제 그들의 본분이 형사인지 요식업자인지도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마약조직 아지트에서 배달주문이 들어온다. 그들 안의 형사 DNA도 깨어난다. 

하지만 비장하게 배달 간 그곳에 마약 조직원들은 없었다. 이미 이사 간 뒤였던 것. 이제 마약반의 앞날엔 해체만이 남아 있다. 여기에 음식 고발 프로그램의 표적이 되어 방송까지 타자, 아예 정직까지 당해버린다. 그런 그들의 앞에 다가온 프랜차이즈 사업의 기회. 처음엔 거액의 돈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원왕갈비통닭’의 분점들이 수상하다. 마약반은 ‘어쩌다’ 시작한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이번엔 ‘어쩌다’ 마약 조직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분점 관리에 나선 마 형사(진선규 분)는 영업시간에 마작을 하는 직원들을 발견하고는 분노하는가 싶더니 마작 판에 앉아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알아들은 죄로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 시간 장 형사(이하늬 분)은 커플 앱을 이용해 동료들과 마 형사를 찾아 나선다. 위기에서 벗어난 마 형사는 마약조직의 접선 장소로 따라간다. 동료들 역시 마 형사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반쯤 ‘어쩌다’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부둣가로 향한다.

이처럼 영화는 마약반 팀원들을 영웅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허술하고 빈틈 많은 인물로 그려 ‘어쩌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의 후반부 최 반장의 입을 빌려 마약반 팀원들이 사실은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잠시 언급하긴 하지만, 그건 그저 범인들과의 몸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명분을 심어주기 위함일 뿐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유일하게 고 반장의 가족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역시 감동이나 신파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고 반장의 ‘짠한’ 면모를 부각시켜 웃음을 선사한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주연과 조연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연기 구멍’이 없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마약반 팀원 5인은 물론, 많지 않은 비중이지만 등장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뽐낸 신하균과 오정세를 비롯해 치킨 집 사장님, 고 반장의 가족들, 마약 조직원들까지 모두 관객들의 웃음을 위해 연기력을 불태웠다. 실제 영화 속 “오우, 아메리칸 스타일!”, “됐어, 됐어, 들어가. 얘 싸움 XX 못해”, “근데 창 씨가 아닌데 왜 테드 창이야?” 등 명대사는 대부분 조연들의 입에서 나왔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광고계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당시 국내 치킨 집 매출이 30% 가량 증가할 정도로 영화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당연히 주연 배우를 모셔가기 위한 치킨 업계의 배팅은 엄청났다고. 하지만 배우들은 몰려드는 러브콜을 모두 거절했다. 이들은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부터 브랜드를 홍보하는 CF는 찍지 않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바로 그들 자신이 소상공인을 대표한다는 마음에서다. 

영화의 막바지, 이무배(신하균 분)와 몸싸움을 벌이던 고 반장이 “네가 소상공인 모르나 본데, 우린 다 목숨 걸고 해!”라는 대사는 감동과 교훈을 최대한 덜어낸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묵직한 한 방을 선사한다. 어쩌면 영화는 이 단 한 마디를 위해 두 시간을 웃음으로 달려왔는지 모른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간 한국 코미디 영화의 발목을 잡는 주범으로 지목 당했던 감동, 신파, 교훈을 전부 걷어낸 결과, <극한직업>은 IMDb 7.0, 로튼 토마토 신선도 82%, 왓챠피디아 5점 만점에 4.2의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관객들은 “코미디만큼은 확실히 잡았다”, “관객들을 웃기겠다는 목적을 가졌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등 코미디 영화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평가들을 쏟아냈다. 

지나친 액션이 가져올 수 있는 가학성, 자칫 불쾌감만 안길 수 있는 성적 유머코드, 가족들을 내세운 억지 신파 등 온갖 유혹에 한눈팔지 않고 ‘웃음’만을 위해 충실했던 이병헌 감독의 뚝심은 <극한직업>에서 제대로 통했다. 코미디라는 장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존재의 이유를 믿지 못한 다른 실패작들을 답습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극한직업>이 명절을 겨냥해 개봉했던 것 처럼, 이제는 명절이 휴식을 위한 시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여전히 먼 길을 달려 고향을 찾긴 하지만, 예전처럼 상다리 부러지게 차례상을 준비하기 보다는 그저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함께 먹는 정도로도 충분한 게 진짜 휴식이다. 매번 후라이드를 시킬까 양념을 시킬까 고민했다면, 이번 명절에는 온 식구가 있는 기회를 빌려 둘 다 시켜보자. 그리고 누구와 봐도 즐거울 만한 영화, <극한직업>을 보는 건 어떨까. 우리에게 휴식만큼 필요한 건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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