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로 읽는 한국경제사 – 10.사망 앞둔 왕회장의 청문회 출두와 섬망 증세
왕자의 난, 그룹 주요 계열사 부도 위기, 회장의 죽을 병, 2000년 현대그룹과 유사 섬망 증세 앓은 재벌가는 알려진 바 없어, 치매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도 앓아 한화 김승연 회장이 치매를 이유로 형 집행정지를 받은 적은 있어
재벌집 막내아들 12회, 13회에 걸쳐 순양자동차가 논란이 되면서, 부실경영으로 책임을 지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회 청문회 소환을 해야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른바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으로 대기업 회장의 독단으로 기업이 위기에 빠지며 한국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줬으니 국민 앞에 나서서 사과해라는 것이다.
그 와중에 청문회 출석을 요구받는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은 섬망 증세를 앓으며 뇌출혈로 언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는 모습이 대비된다. 평생 키운 사업 중 일부가 부도 위기에 빠진 가운데, 자신의 삶을 화려하게 불태운 생명의 불꽃도 차츰 꺼져가는 것이다.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의 병과 청문회 출두
국내에서 비슷한 사례를 꼽으라면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1999년~2001년을 고를 수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생을 쏟아부어 키운 현대건설이 부도 위기에 몰렸고, 결국 부도가 나면서 채권단에게 현대건설이 넘어간다. 당시 현대그룹은 이른바 ‘왕자의 난’을 겪으며 둘째 아들인 정몽구 회장과 다섯째 아들인 정몽헌 회장 사이의 그룹 장악을 위한 권력 암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고, 1999년에 ‘대박’이 났던 현대증권의 ‘바이 코리아 펀드’ 자금을 그룹 내부의 자금 위기를 해결하는데 썼다는 시민사회의 압박에 정주영 명예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차이점이 있다면 드라마 상의 순양자동차가 현실에서는 현대건설이었다는 점, 건강 악화에 시름하던 회장님의 병이 뇌출혈에 따른 섬망 증세와 폐렴으로 인한 급성 호흡부전증이라는 점이 다르다. 왕자의 난의 구도도 좀 달랐지만, 근본적으로 그룹 회장의 병과 내부의 자중지란, 연이은 경영위기가 닥친 점에서 유사한 구도를 찾을 수 있다.
두 회장님들 모두 청문회 출두에 대한 정치권의 요구만 있었을 뿐, 실제로 출석하지 않은 점도 같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당시 와병을 이유로 들었고, 실제로 청문회도 유야무야됐다.
실제로 정주영 명예회장이 청문회에 출석한 것은 1988년 11월의 5공특위 청문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국민적인 대스타로 만들어준 그 청문회의 마지막 증인으로 참석한 정주영 명예회장은 “돈 안 주면 재미없을 것 같아 줬습니다”, “나는 시류에 따라 삽니다”라는 증언으로 너무 쉽게 국회의원들이 바라는 대답을 줘버렸다. 특히 노무현 당시 초선 국회의원이 강제성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계속된 추가 질문을 쏟아내자, “우리는 그러한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답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섬망 증세, 치매와는 다른 증상
극 중 진양철 회장은 자동차 사고 후유증으로 섬망 증세를 앓는다. 언뜻보면 치매와 비슷해보이지만, 특별한 외부 자극이 없는 가운데 갑자기 혼란 상태가 지속되고, 집중력이 낮아지며 생각이 분산되는 모습을 보인다. 의학에서 정의하는 증상은 갑자기 나타나고 금방 회복이 됐다가, 의식이 돌아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증상을 말한다. 치매는 천천히 증상이 악화되며 회복이 안 되는 점이 다르다. 의학적으로는 치매가 섬망 증상의 주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치매와 증상이 비슷하게 나타나는만큼 주변 간호 인원에게 치매와 같은 관점으로 환자에게 접근해야한다고 주의한다.
국내 근현대 경제사의 주요 인물 중 섬망을 겪은 사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치매는 일부 알려져 있다. 부끄러운 질환인만큼, 드라마 상에서 손자 진도준이 할아버지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일괄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사안이라 외부에 공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치매가 일반인 사이에서 드물지 않은만큼 기업인들도 피해가지 못한 사례가 일부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다만 김우중 회장과 드라마와 다른 점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나고 난 다음에 치매를 앓았다는 점이다.
좀 더 가까운 사례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다. 실제로 치매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지난 2013년 1월 구속집행정지를 받은 김 회장이 받았던 진단서에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라는 소견이 담겨있었다.
앞서 김 회장은 2012년 8월에 횡령 및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받고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됐다. 다음달인 9월부터 여러차례 외래 병원 보라매병원에서 특진을 이유로 통원 치료를 받다가, 12월에는 입원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요청한다. 이듬해 1월에는 서울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신경정신과 A교수로 부터 ‘알츠하이머성 치매’ 소견을 받는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도 정정한만큼, 김 회장이 당시 받은 알츠하이머성 치매 소견의 정확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