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교양국 PD가 OTT 오리지널 ‘피지컬: 100’을 만든 이유 [현장]

넷플릭스 ‘피지컬: 100’ 기자간담회 장호기 PD “지상파 위기, 돌파가 필요한 시점” 출연자 향한 비난에는 짙은 안타까움

사진=넷플릭스

“‘지상파 위기’라는 말 많이 나옵니다. 돌파가 필요해요. 시청자들은 OTT 보고 있는데 우리가 ‘MBC 와서 보세요’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선 <피지컬: 100> 장호기 PD가 프로그램 안팎을 둘러싼 다양한 궁금증에 답했다.

7일 오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 100>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기획과 연출을 맡은 장호기 PD가 참석해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피지컬: 100> 최강의 피지컬을 자부하는 100인의 참가자가 ‘최고의 몸’을 찾기 위해 다양한 퀘스트를 수행하며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들은 성별과 나이, 체급을 떠나 오로지 ‘몸’을 무기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추성훈, 윤성빈, 양학선, 에이전트H, 호주 타잔 등 유명 운동선수와 유튜버 등이 총출동해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프로그램은 지난달 24일 첫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비영어 시리즈 부문) 7위로 직행했고, 각종 화제성 조사에서 1위를 휩쓸며 흥행을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넷플릭스 최대 인기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연상된다며 ‘근징어 게임’, ‘갑오징어 게임’ 등의 별칭을 붙이며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장호기 PD는 <오징어 게임>을 보긴 했지만, 그 전에 먼저 <피지컬: 100>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MBC 교양국 소속인 그는 <오징어 게임>이 한창 글로벌 인기를 구가하던 2021년 10월 넷플릭스 예능팀에 기획안 메일을 보냈다고. 장 PD는 “그때 그 메일이 스팸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이전까지 교양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지만, 요즘은 장르 구분이 의미가 없다. PD를 하게 된 건 어떤 형태로든 인간을 주제로 다루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인간을 다루는 새로운 접근을 하고 싶었다. 넷플릭스는 연출자로서 정말 큰 무대고, 기왕 하는 거 높은 곳에 도전해보고 싶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지상파 방송국을 보유한 MBC의 내부 조직원인 장 PD가 자사의 채널이 아닌 글로벌 OTT 플랫폼을 찾은 배경은 뭘까? 그는 “요즘 ‘지상파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업계 종사자로서 항상 돌파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MBC 프로그램이라고 꼭 지상파 송출만 하고, 교양 PD라고 시사교양 프로그램만 만드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시청자들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데 우리가 ‘이거 만들었으니 MBC 와서 보세요’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지상파 방송을 무시하는 게 절대 아니라, 시간에 쫓겨 소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분명히 있다. 반면 넷플릭스는 ‘최상의 퀄리티’만을 요구하면서 든든한 지원을 해주고 시간을 줬다. 노력으로 따지면 훨씬 더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사진=넷플릭스

프로그램은 지난달 24일 첫 공개 후 현재 4개의 에피소드를 공개한 상태다. 이제 겨우 두 번째 퀘스트를 시작했을 뿐인데 이변이 속출하며 예측 불가 서바이벌의 묘미를 마음껏 펼치고 있다. 장 PD는 예상보다 빨리 떨어진 참가자 중 에이전트H의 탈락에 크게 아쉬워했다. 그는 “저는 ‘방송쟁이’니까 화제를 모으는 인물이 탈락했다는 게 아깝더라. 하지만 그의 탈락이 우리 프로가 정말 각본 없이 진행된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씁쓸한 마음을 달랬다.

프로그램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는 만큼 부담도 적지 않았다고. 장 PD는 “‘지구 반대편 시청자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사실은 공개될 때까지 너무 초조하고 불안했다. 다행히도 많이들 봐주셨다”이라며 글로벌 팬들의 관심에 감사를 전했다. 이어 “BTS 멤버 정국 씨가 개인 라이브 방송에서 우리 프로그램을 봤다. 근데 그때 동시 접속자가 천만 명이었다. 자랑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건 참을 수가 없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한국 시청자들이 인정하면 세계에서도 반응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획자 입장에서 일단 한국에서 시작했으니 다음엔 대륙별로 도전해보고 싶다. 또 그다음에는 전 세계에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지역과 문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콘텐츠 환경을 실감케 했다.

장 PD가 이번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모든 사람이 직관적으로 출연자들의 경쟁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점이다. 그는 “어느 국가에 사는 누가 보더라도 불편하거나 따라가기 어려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촬영 기법에 있어서는 특수 카메라를 많이 활용한 편인데, 단순히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근육의 움직임 등을 그림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시각적인 정보가 자막으로 전달될 경우에는 받아들이는 방식이 모두 다를 수 있어 깊이 고민한 결과다.

<PD 수첩>,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등 교양프로그램만 만들었던 장 PD가 서바이벌 예능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프로그램을 향한 시선은 “새로운 예능이 탄생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예능도 다큐도 아닌 어정쩡한 프로그램 나오겠지”라는 비판이 공존했다. 넷플릭스와 장 PD 역시 이런 의심의 눈초리를 모르지 않았다. 장 PD는 “특별히 다큐나 예능을 따라가면서 만들진 않았다. 스포츠 경기에 특별한 연출이 있어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 아닌 것처럼 ‘현장의 치열한 경쟁을 최대한 담백하게 담는 게 차별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마음 같아서야 100인의 참가자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시청자들은 아니지 않나. 참가자들이 퀘스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몸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하니 우린 그걸 꾸미지 않고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사진=넷플릭스 티저 캡처

<피지컬: 100>은 ‘성별에 무관하게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을 펼친다’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게 남녀 간의 맞대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남자 격투기선수 박형근이 여자 보디빌더 김춘리와의 일대일 데스매치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가슴 부위 명치를 무릎으로 누르는 장면이 지적된 것. 장 PD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떤 구분도 없이 완벽한 피지컬을 찾는 게 기획 의도인 만큼 모든 참가자에게 그 부분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다. 언제든 경기를 떠날 수 있으니 편견 없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더 큰 우려를 나타낸 부분은 프로그램을 향한 비판보다 출연자를 향한 도 넘은 비방이었다. 전날 밤늦게 김춘리가 자신의 SNS를 통해 악성 게시글 및 댓글에 대한 법적 대응을 시사하면서다. 그가 첨부한 사진에는 김춘리의 신체 부위를 확대해 평가하는 내용이 담겼다. 장 PD는 크게 안타까워하며 “춘리씨가 여러 목소리에 시달리고 있는데 자제해야 한다. 프로그램을 떠나 젠더 갈등을 부추기거나 타인의 신체를 함부로 평가하는 등 악플을 다는 건 문제가 된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외에도 격투기나 레슬링 선수들이 경쟁 과정에서 일반인 참가자를 상대로 각종 기술을 사용하는 점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 참가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찾아와 악성 댓글을 남기는 네티즌을 향해 “가던 길 가시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고, 경쟁에서 패해 탈락이 확정된 출연자들은 “정당하게 경기했으니 비난을 멈춰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장 PD는 “출연자들의 반응이나 표정 등은 100% 리얼이다. 모두들 최선을 다했고, 경기가 끝날 때마다 승패와 상관없이 박수와 포옹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서바이벌이 자극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정당한 승부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비판 대신 응원의 눈으로 남은 이야기를 즐겨줄 것을 당부했다.

끝으로 그는 “지금까지 개인전에 초점이 있었다면, 5회부터는 예상을 뒤엎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질 예정이니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들로 관심을 돌려도 재밌을 것”이라며 이날 기자간담회를 마쳤다.

지난 1월 24일 첫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100>은 2주에 걸쳐 4회까지 방영된 상태이며, 오늘(7일) 5회와 6회 공개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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