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랑의 시작은 나 자신으로부터, 뮤지컬 영화 ‘헤드윅’

‘사랑’이란 참 어려운 단어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올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추상적이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도 애타게 사랑을 소망하고, 이른바 ‘자신의 반쪽’을 찾길 원한다.

간혹 ‘사랑’만이 자신의 목표인 것처럼 맹목적으로 사랑을 좇는 사람을 발견할 때가 있다. 보통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상대에게 헌신하거나, 연인의 삶이 자신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듯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이들은 연인 없는 자신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듯 불안감을 드러낸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반쪽’이라고 부르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런 행동도 이해가 간다. 사랑이 나의 ‘반쪽’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결국 나 자신은 반쪽짜리 불완전한 존재라는 의미가 아닌가?

오늘 소개할 영화 헤드윅의 OST ‘The Origin Of Love’에서는 사랑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태초의 인간은 두 쌍의 팔과 두 쌍의 다리, 하나의 머리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존재였는데, 신이 인간의 힘을 경계해 하나의 몸을 두 개로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태초의 완전함을 찾기 위해 끝없이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존재라는 것.

뮤지컬 영화 ‘헤드윅’은 노래의 가사대로 애타게 사랑을 좇는 록 밴드의 보컬 헤드윅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 <헤드윅> 스틸 이미지

<헤드윅(Headwig And The Angry Inch)>

어디서 볼까? 왓챠

‘헤드윅’은 동명의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2001년 미국에서 제작되었으며 2002년 8월 9일 국내 개봉했다. 이후 15년이 지난 2017년 재개봉을 하는 등 꾸준한 인기를 유지했다. ‘숏버스’, ‘래빗 홀’ 등의 영화를 제작한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드라마, 코미디, 뮤지컬 장르 영화다.

출연진으로는 감독인 존 카메론 미첼이 주연으로 참여했으며, 미리암 쇼어, 마이클 피트, 스티븐 트래스크, 로브 캠벨, 테오도르 리스신스키, 마이클 아르노브, 안드리아 마틴, 알버타 왓슨, 벤 메이어-굿맨, 진 파이즈 등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네이버 관람객 평점은 9.46(평가자 324명), 네티즌 평점은 9.19(평가자 2,232명)이며 영화 평점 사이트 왓챠피디아에서는 5점 만점에 4점(평가자 14만명)을 기록했다. 러닝타임은 91분이다.

주인공인 헤드윅(존 카메론 미첼), 소년 한셀의 이야기는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어 있던 시절에서 시작한다. 한셀은 아버지를 포함한 남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한다. 이를 알게 된 한셀의 모친은 남편을 쫓아내고 홀로 아이를 키운다. 한셀은 미군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록 음악을 들으며 자유를 그린다.

대학에서 쫓겨난 한셀은 미군 루터를 만난다. 루터는 한셀과 관계를 맺고, 한셀이 여자가 되면 미국에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한다. 한셀은 자유로운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받게 되지만, 싸구려 수술 탓에 성기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한셀은 어머니의 이름인 ‘헤드윅’으로 개명하고 미국으로 떠나지만, 루터에게 버림받는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동독의 동 베를린에서 태어나 미국의 록 음악을 들으며 자란 헤드윅은 날 때부터 동과 서, 속박과 자유의 경계에 선 사람이다. 실패한 성전환 수술은 이러한 헤드윅의 ‘경계성’을 심화한다.

영화 <헤드윅> 스틸 이미지

 

남자도 여자도 아닌 헤드윅은 ‘앵그리 인치(Angry Inch)’라는 락 밴드를 결성해 여장을 하고 공연을 다닌다. 앵그리 인치는 자신의 다리 사이에 남아있는 1인치의 성기를 표현한 것으로, 헤드윅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사랑과 자유를 쫓아 미국에 왔지만 자신의 사랑이었던 루터에게 버림받은 헤드윅은 계속해서 자신의 반쪽을 찾아다닌다. 헤드윅의 행동은 앞서 말했던 노래 ‘The Origin of Love’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헤드윅은 사랑에 배신당하고, 사랑에 매달리고, 사랑을 속박하고 통제하려 하며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한다. 완전해지고자 하는 헤드윅의 갈망은 영화 내에서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흥겹고, 때로는 폭발적인 음색의 OST로 표현된다.

영화의 결말에서 헤드윅은 결국 완전함을 찾는다. 그러나 그 해결은 ‘자신의 반쪽’을 찾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의 OST ‘Midnight Radio’를 부르며 헤드윅은 가발을 벗고, 화장을 지우고 여장을 벗어던진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헤드윅은 자신이 하나로서 온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결핍에서 벗어난다. 본인의 불완전함을 해소하는 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불완전한 상태에서 다른 이의 사랑으로 완전함을 얻으려 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헤드윅의 ‘반쪽 찾기’가 반복적인 실패로 돌아갔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다른 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지만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의 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이 필요하다.

OST ‘The Origin of Love’의 간주 부분에서 화면에 이런 문장이 나타난다. ‘deny Me and be doomed(나를 부정하면 파멸하리라)’ 결국 사랑의 기원(The Origin of Love)은 사실 반쪽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긍정하는 데 있는 것이다.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로 느껴질 때, 뮤지컬 영화 ‘헤드윅’을 통해 나는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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