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극복을 위해 돌연변이가 되어야 할까, 영화 ‘화이트 타이거’ [리뷰]

영화 ‘화이트 타이거(The White Tiger)’ 리뷰 인도의 카스트제도 비판, 경제적 양극화 고찰

사진=작품 스틸컷

예로부터 흰색 털을 가진 동물은 상서로운 ‘영물’로 취급됐다. 특히 백호는 동양에서 청룡, 주작, 현무 등 상상의 동물과 함께 사신(四神)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신비로움’, ‘강인함’, ‘백수의 왕’…백호에서 연상되는 단어들은 모두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백호는 앞의 단어들과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다.

흰 털을 가진 호랑이 ‘백호’는 기본적으로 돌연변이다. 태어나기도 힘들지만, 몸이 흰빛을 띠고 있어 사냥감에게 들키기 쉬우므로 자연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개체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유전적 질병을 귀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유전형질을 보존하기 위해 근친교배를 강행하기도 한다.

인간들은 이처럼 백호를 호랑이들 중에서도 귀한 존재로 여긴다. 그런데 호랑이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귀하고 멋진 존재일까, 과연 호랑이는 ‘백호’가 되길 원할까?

오늘 소개할 영화 ‘화이트 타이거’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양극화를 비판하는 영화로, 영화의 주인공 발람은 최하층 카스트 출신이다. 그는 인도 하층 계급의 삶을 닭장 속의 닭에 비유하며 닭이 아니라 맹수 ‘백호’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둔 영화 ‘화이트 타이거’는 2020년 인도에서 제작되었다. 화이트 타이거는 OTT 서비스를 통해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라스트 홈’, ‘화씨 451’ 등을 제작한 라민 바흐러니 감독의 범죄, 드라마 장르 영화다. 배우 아르다시 구라브, 프리양카 초프라, 라지쿠마르 야다브 등이 주연으로 참여했다.

영화는 성공한 사업가 발람(아르다시 구라브)이 인도를 방문할 예정인 중국 후진타오 전 주석에게 보낼 이메일을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주인공 발람의 회상에 기대어 액자 형식으로 그의 성공 과정을 펼쳐 보인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발람은 인도 사회를 이렇게 표현한다. “인도는 두 나라로 구성된다. 빛의 인도와 어둠의 인도이다. 그리고 두 개의 계층이 존재한다. 배부른 인도와 배고파 죽어가는 인도다.” 발람의 이 대사는 영화의 전체적 주제를 완벽하게 축약한 문장이다.

세계 경제 대국으로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는 아직까지도 신분제가 남아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인도 정부는 1950년 카스트 제도를 공식적으로 철폐했으나 여전히 인도 사회에는 뿌리깊은 신분 질서가 남아 있다. 눈부시게 빛나는 인도의 성장 뒤에는 어둠의 인도가 남아 있다.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인도의 전체 GDP는 세계 5위지만, 1인당 GDP는 세계 116위에 그친다.

인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발람은 ‘배고파 죽어가는 인도’로, 하층 계급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영민함을 타고났다. 발람은 타고난 영리함 덕분에 델리로 유학을 갈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그의 집안은 노동력인 발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지주에게 착취당하던 아버지가 결핵으로 죽고, 발람은 학업을 포기한다.

사진=작품 스틸컷

발람은 이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하며, 운전면허를 따고 지주 막내아들 아쇽(라지쿠마르 야다브)의 운전기사가 된다. 가족들에게는 매달 월급을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델리로 상경한다. 가난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영화 중반까지는 자신의 계급에 대해서는 그리 고민하지 않는다. 발람은 운전기사가 되면서 조금은 나아진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주인’을 모신다. 맹목적인 복종이 외부인의 시선에서 볼 때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발람이 모시는 지주의 아들 아쇽과 그의 부인 핑키(프리양카 초프라)는 미국에서 살다 온 이들로, 카스트를 뛰어넘어 결합한 진보적 인물들이다. 그들은 발람을 노예처럼 대하는 이들을 비판하며 발람을 인간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카스트 제도의 상류층이며 발람을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여기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발람 또한 아쇽 부부를 통해 불합리한 계급 사회를 눈치채기 시작한다. 이후 핑키가 음주운전 사고로 아이를 치어 숨지게 하고, 아쇽의 가족이 그 죄를 발람에게 뒤집어 씌우려 하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발람은 마침내 누군가의 하인을 벗어나 ‘화이트 타이거’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발람이 자신의 계급을 탈피하는 방법은 결코 영웅적이거나 떳떳하지 않다. 호랑이는 포식자다. 즉, 다른 이를 해치고 잡아먹어 군림하는 존재다. 실제로 발람은 맹수의 방법으로 ‘백호’의 자리를 얻어낸다.

발람은 지배받는 존재에서 사장이 됨으로써 지배하는 계급으로 올라선다. 그가 이번에 이용하는 계급은 돈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계급이다. 발람은 사회의 돌연변이 백호가 됨으로써 ‘배부른 인도’ 사회에 편입된다. 닭으로 태어난 발람은 닭장을 벗어나기 위해 호랑이, 그것도 백호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날 때부터 포식자인 호랑이로 태어난 핑키와 아쇽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돌연변이가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발람이 영화 내내 갈망하는 존재 ‘백호’의 첫 스크린 등장은 동물원에서 우리에 갇힌 모습이다. 발람은 정글을 달리는 맹수가 되고 싶었을 것이나, 결국 발람이 달성한 백호의 지위도 사회라는 우리 속에 갇혀 있다. 진정으로 닭장이나 우리를 벗어나길 원한다면, 우리는 사회의 돌연변이를 추앙할 것이 아니라 닭과 호랑이가 뒤섞여 동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야 하지 않을까?

영화 ‘화이트 타이거’는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비판하는 영화지만, 동시에 인도 사회의 빈부격차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평하고 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타국의 문화를 알게 되는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된다.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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