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명대사, 영화 ‘베테랑’ [리뷰]
영화 ‘베테랑’ 리뷰 “어이가 없네?” 15세 관람가 지친 현실에 통쾌함 안겨준 액션 작품
세상에는 유명한 영화들이 너무도 많다. 어떤 영화들은 문장 하나만 듣고도 영화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대사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05년 미국최대영화 연구기관인 미국영화연구소에서 발표한 ‘100대 명대사’ 중 1위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의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오(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는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의 대사)”이나 “니가 가라 하와이(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의 대사)”, “아직 한 발 남았다(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의 대사)”, “야 4885 너지?(영화 ‘추격자’에서 김윤석의 대사)” 등 한국 영화의 대사들이 더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 밖에도 “살아 있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니 내 누군지 아니?” 등 듣기만 해도 절로 오디오가 들리는 듯한 한국 영화계의 명대사는 끝이 없다. 전 세대를 관통하고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한 한국 영화의 명대사들에는 이상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에 나왔다는 것.
최근 유행한 명대사 “제발 그만 해, 이러다 다 죽어!”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자극적인 콘텐츠가 대중적 관심을 끌어모으기 좋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미성년자들도 시청이 가능한 대중적 관람 등급을 받고도 명대사를 만들어낸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전 국민을 ‘어이없게’ 만든 15세 영화 ‘베테랑’이다.
‘베테랑’(2015)은 ‘아라한 장풍대작전’, ‘부당거래’, ‘베를린’, ‘모가디슈’ 등을 제작한 류승완 감독의 액션 영화다. 배우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등이 출연했고, 배우 장윤주, 김시후, 오대환, 정웅인, 정만식, 송영창, 진경, 유인영, 박소담, 이동휘, 배성우, 천호진 등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베테랑의 주인공은 한 번 꽂히면 무조건 끝을 보는 행동파 서도철(황정민 분) 형사다. 광역수사대 소속 서도철은 오랫동안 쫓던 대형범죄를 해결하고 숨을 돌리던 중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를 만나게 된다.
이후 서도철은 지난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화물차 운전기사 배기사(정웅인 분)가 자살기도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는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배후에 조태오와 그의 충실한 오른팔 최상무(유해진 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태오와 그의 집안은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은폐하려 하고, 서도철과 광역수사대원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부패한 세상에서 조태오가 마땅한 죗값을 치르도록 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한다.
작품은 유아독존 재벌 3세와 베테랑 광역수사대의 대결을 다룬 범죄오락액션 영화로, 사회비판적인 성향을 띠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위트있고 경쾌하다. 청렴한 형사가 부패한 재벌과 싸워 결국 정의를 실현한다는 플롯 자체는 단순하고 익숙하다. 그러나 생생한 캐릭터와 통쾌하고 화려한 액션신 덕분에 영화는 보는 내내 지루함을 느낄 틈 없이 흥미진진하다.
물론 조태오의 “어이가 없네”를 비롯한 맛깔나는 명대사들도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감상 포인트 중 하나다. 비록 ‘어이’나 ‘어처구니’의 어원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널리 퍼뜨렸다는 지적이 있긴 했어도, 입에 착 붙는 대사와 연기로 많은 사람이 조태오의 대사 전문을 술술 외우기도 했다.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알아요? 어이라고 해요. 맷돌을 돌리다가 손잡이가 빠져 그럼 일을 못하죠? 그걸 어이가 없어 해야 할 일을 못한다는 뜻으로 어이가 없다! 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그래, 어이가 없네?”
조태오의 대사가 흥행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베테랑은 “나 여기 아트박스 사장인데…”,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쪽팔리게는 살지 말자!” 등 맛깔나는 대사로 연이어 입에 오르내리며 흥행에 성공해 천만 영화 타이틀을 손에 쥐었다.
잊을만 하면 ‘갑질’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오르내리는 시대, 베테랑의 모티브가 된 실화에 대한 추측도 이어졌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은 2015년 베테랑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며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이 오버랩되는데 혹시 염두에 둔 실화가 있나”라는 질문에 “무엇을 보셨건 사실과 다릅니다”라고 장난스레 답하며 의혹을 일축했다.
이어 “나도 뉴스를 보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실제 사건들의 영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라며 “조태오라는 사람이 보편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사람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류 감독은 “그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시스템이 그를 너무 괴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고 사회비판 의식을 드러냈다.
재벌에게 법의 철퇴를 내리는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이 ‘유전무죄 유전무죄’의 사회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통쾌한 액션 영화를 통한 대리만족이 영화 ‘베테랑’의 인기 비결이 아닐까.
“어이가 없네?”라는 유행어는 들어봤으나 아직 영화 ‘베테랑’은 보지 못했다면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