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의 특별함,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리뷰]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리뷰 평범함은 굉장하다, 어중간함의 특별함
‘가정식’이라는 단어를 보면 정갈하고 담백한 식사가 떠오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푸근하고 담백한 무언가를 봤을 때 ‘집밥 같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사람, 장소, 물건…’집밥 같다’는 표현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물론 콘텐츠 중에도 이런 집밥 같은 영화가 존재한다. 숨 가쁘게 흘러가는 속도감이나 박진감 넘치는 액션, 그리고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함 없이도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는 영화 말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화면 속 이야기를 바라보다 보면, 어쩐지 마음 속까지 따듯하게 위로 받곤 한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龜は意外と速く泳ぐ)는 이런 집밥 같은 영화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2005년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로 2006년 10월 19일 국내 개봉했다. ‘인 더 풀’, ‘텐텐’, ‘아타미의 수사관’ 등의 영화를 제작한 미키 사토시 감독의 코미디 장르 영화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배우 우에노 주리, 아오이 유우 등이 출연했다.
주인공 스즈메(우에노 주리)는 평범하다 못해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는 주부다. 출장을 떠난 스즈메의 남편은 전화를 걸 때마다 거북이 밥은 줬냐고 물어보는 것이 전부다. 무서울 정도로 단순한 일상에 질린 스즈메는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미용실에 가지만, 파마도 망하고 만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스즈메에겐 쿠자쿠(아오이 유우)라는 특별한 친구가 있다. 꿈은 에펠탑이 보이는 집에서 프랑스 남자와 사는 것, 길을 걷다 호피무늬 확성기를 줍기도 하고, 버스 대신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한다. 학생 때 가방을 꾸미기 위해 스티커를 붙여봐도 쿠자쿠와 스즈메의 센스 차이는 그야말로 공작(쿠자쿠, くじゃく)과 참새(스즈메, スズメ)다.
어느날 계단을 오르던 스즈메의 위에서 사과가 쏟아져 내려온다. 그녀는 사과를 피하기 위해 계단에 엎드리고, 그때 손톱만한 스파이 광고를 발견한다. 평범한 일상을 탈출하고 싶었던 스즈메는 스파이 모집 광고에 연락을 넣고, ‘어느 나라의’ 스파이라는 부부를 만나게 된다. 부부는 스즈메처럼 평범한 사람이야말로 스파이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활동자금 500만엔을 건넨다.
부부 스파이는 스파이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너무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며, 스즈메를 훌륭한 스파이로 키우기 위한 훈련을 시작한다. 평범하면 된다니, 굉장히 쉬운 일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려니 쉽지가 않다. 이불은 어떻게 널어야 평범할까? 장 볼때는 어떤 것들을 사야 평범하게 보일까? 거북이 밥을 평범하게 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니 일상이 다르게 보인다. 스파이 활동이라고 생각하니 집안일까지 두근거린다. 일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온 스즈메는 자신의 평범함이 어쩌면 ‘특별함’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즈메는 스파이 활동을 이어가며 동네의 ‘맛이 있지도, 맛이 없지도 않은 어중간한 라멘 가게’ 사장님이 사실 그녀와 같은 스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는 맛있는 라멘을 만들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 많은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매번 어중간한 맛의 라멘을 내놓는다. 라멘 가게 사장님은 어중간한 라멘을 내놓는 것이 맛있는 라멘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몇 년 째 노력해서 만들어낸 ‘어중간함’이라니, 어쩌면 ‘어중간함’에도 나름의 특별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스즈메가 항상 동경하던 친구 쿠자쿠는 영화 중 스즈메에게 부러움을 드러낸다. 그녀는 어망끌기 같은 평범한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스즈메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스즈메가 부러워, 지금 그런 생각이 드네. 스즈메에 비하면 내 인생은 시시한 것 같아. 이것저것 하다 보면 살아가는 의미를 알 수 없게 돼 버려.” 쿠자쿠의 입장에서 보면 스즈메의 삶이야말로 ‘특별함’이었던 것.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다 보면 주인공 스즈메처럼 내 삶이 너무 평범하게 느껴져 자괴감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각자의 삶에는 각기 다른 개성이 있고, 당신의 삶은 생각보다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 거북이가 의외로 빨리 헤엄치듯, 평범함은 의외로 특별하다.
영화의 흐름은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코미디 장르의 영화라지만 폭소를 터뜨릴 만한 장면은 거의 없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나 어처구니없는 이벤트에 피식 웃음이 새 나오는 정도다. 재미있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재미가 없다고 하기도 애매한 B급 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다.
어중간함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영화의 메시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다른 영화 틈에 있으면 아쉬울 만큼 평범하게 보이다가도, 그 평범함이 관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주인공 스즈메를 쏙 빼닮은 영화다.
오늘은 어중간한 삶을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어중간한 웃음과 훌륭한 교훈을 전하는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