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비밀 ‘미샤와 늑대들’ [리뷰]
넷플릭스 다큐 ‘미샤와 늑대들’ 리뷰 충격적인 진실과 반전 “미샤는 피해자이자 악당이죠. 둘 다 맞아요”
‘미샤와 늑대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 시기에 7살이었던 미샤가 숲속에서 늑대 무리와 생활하며 목숨을 건진 이야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의 진실도 함께 파헤치고 있다.
미샤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는 1997년 출판사 ‘마운트 아이비 프레스’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야기는 출판과 동시에 디즈니와 오프라 윈프리의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강렬했고, 서구권의 뜨거운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심지어 지난 2007년 영화 ‘늑대 소녀'(Surviving With Wolves)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썩 좋지만은 않다. 나치의 망령은 수십 년이 지나도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과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에 선 ‘미샤’, 그리고 그를 둘러싼 탐욕이 입을 씁쓸하게 만든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교차해서 나오는데, 정신없는 한편 흥미를 유발하는 데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잘 만들어진 수사물을 보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을 수 있었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인 만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인터넷에 검색해버릴 수도 있지만, 꾹 참고 끝까지 본다면 더 큰 재미를 얻을 수 있음이 분명하다. 이번에 소개할 다큐는 반전의 묘미가 짜릿한 작품이므로 후기 감상에 주의를 요한다.
‘미샤’의 이야기
벨기에에 살던 7살짜리 소녀 미샤는 어느 날 부모님이 벨기에에서 추방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낯선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된다. 미샤는 ‘모니크 드월’이라는 위장 신분을 얻어 목숨은 건졌지만, 불행히도 입양처에서 짐 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미샤는 지도에서 본 벨기에와 독일의 거리는 매우 짧았던 것을 기억하고 결국 부모님을 찾아 집을 나서게 된다.
당연하게도 독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나치가 점령한 국가들을 통해 수천 킬로를 걸어 다녔다. 수년간 걸어 다니며 미샤는 야생을 이해할 수 있었고 공감하게 됐다. 전쟁으로 인해 살육이 난무했던 인간 세상과는 달리 자연은 필요 이상의 살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농장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 들통난 미샤는 정신없이 도망치던 중 어떠한 시선을 느끼게 된다. 바로 ‘늑대’다. 미샤는 늑대에게 먹을 것을 던져줬지만 늑대는 먹지 않았으나, 동행하는 데에 성공한다. 늑대가 먹다 남은 고기 조각을 미샤 곁에 두고 가서 미샤는 배고플 걱정은 없게 됐다.
이야기는 7살이던 미샤가 할머니가 된 후 홀로코스트 피해자 모임에서 털어놓으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홀로코스트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스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한다. 미샤의 이야기를 들은 작은 출판사 사장 제인 대니얼은 이 이야기에 큰 영감을 받아 책으로의 출간을 희망했다. 미샤는 처음에는 출간을 원하지 않았지만, 후대를 위한 일이라는 친구들과 2년 동안 끊임없이 설득하는 제인에게 못 이겨 결국 미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미샤 디폰세카, 의심의 시작
미샤가 논란에 휩싸인 것은 미샤가 제인을 고소하면서 시작된다. 미샤는 디즈니와 오프라 윈프리 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잘나가게 되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미샤는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결국 미샤는 제인에게 인세와 관련한 소송을 제기했고 한화로 약 220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게 된다.
한순간에 쫄딱 망하게 된 제인은 미샤에게 느꼈던 의구심을 본인 블로그에 적어 내려갔다. 시작은 미샤의 성(成)이었다. 회고록에서 부모님의 성을 모른다고 밝혔던 것과는 달리 미샤는 부모님의 성을 따르고 있었고, 법원에서 제출한 각종 서류에는 어머니의 이름이 기재돼있었다. 미샤에 대해 조사하던 중 제인은 뜻밖의 사람에게 연락을 받게 된다. 바로 계보학자 샤론 서전트다.
탐정을 방불케 하는 계보학자의 활약
제인의 의구심은 계보학자 샤론 서전트를 만나며 실체화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학문인 계보학은 말 그대로 집안의 혈통과 역사에 대한 학문으로, 계보학자는 조상을 추적하거나 DNA를 분석하는 등 가문의 뿌리를 알아보고 특정 집단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찾아내고 유추해낸다.
계보학자가 여러 가지 단서들을 토대로 미샤의 실체에 대해 다가가는 것은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마치 셜록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샤론은 미샤가 벨기에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벨기에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며 똑같은 계보학자인 에블린 한델에게 미샤의 추적을 요청한다.
미샤의 과거를 추적하는 모든 장면을 얘기하고 싶지만, 재미가 반감될 수 있으니 일부만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미샤가 보여준 어린 시절 사진이다. 미샤가 7살 무렵이라며 보여준 사진은 계보학자인 샤론의 눈에는 3~4살 무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한 농장을 운영했다던 입양 가정의 조부모님의 손을 확대해보니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어 역시 거짓일 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미샤의 회고록에 나오는 조부모님의 성은 미국판에서는 ‘드월’이지만 프랑스판에서는 ‘발’로 변경된다.
에블린은 이 점을 수상히 여겼고, 미샤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성을 바꾼 이유에 대해 추론해보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에서 ‘드월’이라는 성을 보고 농장에 맡겨졌던 유대인 소녀를 단서로 누구든지 미샤를 추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샤의 실체
알고 보니 미샤는 애초에 유대인도 아니었으며, 가톨릭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따라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는 물론 아니었으며, 늑대와 야생 생활한 적도 없다. 한 기자가 미샤에 대해 더욱 자세히 조사한 결과, 미샤의 아버지는 벨기에 장교 출신으로 애국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인의 밀고로 아내와 함께 고문으로 악명 높은 퀼른 교도소에 수감된 후 아내만이라도 살리고자 레지스탕스 요원들의 정보를 넘겨버렸다. 레지스탕스는 와해했지만 미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석방되지 못했고, 벨기에에서는 반역자로 평가받아 추방당하며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미샤는 배신자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 미샤가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미샤는 아직도 스스로에게 되묻는다고 한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겪지 않았단 말인가? 이게 정말 내 상상에서 일어난 일들이란 말인가?”
미샤는 큰 틀에서 나치의 피해자로 본인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벽을 세웠다. 그렇지만 그 벽은 지나치게 허술하고 연약하여 조금만 두들겨 보아도 산산조각이 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엉성한 벽이 진실하고 견고한 것처럼 만들었을까?
에블린은 미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미샤는 피해자이자 악당이죠. 둘 다 맞아요”
아무도 미샤의 이야기에 칼을 들이밀지 않았다. 누구도 검증하려 들지 않았으며 의구심이 들어도 덮어두고 넘어갔다.
출판사 사장인 제인이 책을 출간하려 할 때 역사학자 데보라 드워크는 반대했다고 한다. 서사에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제인 역시 이 이야기가 거짓임을 어림짐작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제인은 출판을 강행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탐욕’에 잡아 먹힌 것이다.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미샤를 두둔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이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미샤를 추앙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샤의 이야기에 편승해 본인들만의 이익을 추구했다. 충격적인 진실 앞에 입맛이 씁쓸해지는 이유다. 누구도 미샤를 의심하지 않았고, 혹은 의심을 덮어두고 그저 이익만을 위해 미샤를 소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러난 진실은 마냥 추악하지 않았고, 한쪽으로는 전쟁 피해자의 모습을 나타냈다.
데보라는 이렇게 말한다. “다들 그렇게 믿고 싶을 거예요. 미샤 디폰세카가 본인을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 믿었다고요. 다들 우리가 그렇게 순진하다고는 믿고 싶지 않으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믿어서 우리도 믿어줬다는 식이죠. 심지어 이렇게도 믿고 싶겠죠. 이 이야기에는 구원의 의미가 있다고요. 미샤가 어려서 겪은 고통이 상쇄됐을 거란 이유를 들죠.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구원의 의미는 없어요. 우리가 너무 순진했던 거예요. 전부 다 조작이었어요”
다큐에서는 미샤와의 인터뷰를 미샤의 집에서 촬영한다. 그러나 다큐의 끝에 계속 나왔던 미샤는 사실 미샤의 대역이었으며 집 역시 세트장임을 밝힌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일방적인 정보에 취약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무 의심 없이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신뢰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