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거래소 사장의 죽음과 음모론 [리뷰]
‘아무도 믿지 마라: 암호화폐 제왕을 추적하다’ 리뷰 가상화폐 거래소 사장의 죽음과 음모론 다룬 작품 진실은 무엇인가? 추적 과정이 재미
‘가상화폐’는 주식보다 불안정하지만,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처럼 수익률이 높아 코인 투자자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싱가포르 기반 가상화폐 지갑 서비스 업체 ‘트리플에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구의 3.79%, 194만 명이 코인 투자를 하고 있으며, 전체의 16위를 기록하고 있다.
가상화폐 자체는 등장한 지 오래됐지만, 그간 시장의 주목을 받지 않아 관련 규제가 상당히 미흡하다. 아직도 시장이 안정되지 않아 가격의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고 있어 투자 실패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투자 성공으로 몇백 억대 자산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한 주식보다 ‘한몫’ 챙길 확률이 높아 투자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관련 규제가 미비하고 정립된 체계가 없어 대규모 투자사기 등의 위험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지난 5월, ‘김치 코인’이라고 불리던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테라’는 -99.99%의 폭락을 맞이하며 거래가 중단됐다. 루나 코인 개발자인 권도형 테라 폼랩스 대표는 당초 ‘신’으로 추앙받는 존재였다. 상장 초기 100원대였던 루나 코인을 몇 년 만에 12만원으로 끌어올려 500% 수익을 보여줬고, 전 세계 암호화폐 가치 10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일론 머스크’였던 그는 루나 코인의 예견된 폭락을 방치했다는 명목으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했고, 여전히 큰 비판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아무도 믿지 마라: 암호화폐 제왕을 추적하다'(Trust No One: The Hunt for the Crypto King)는 대규모 비트코인 피해 사건과 그 진실을 파헤친다. 비트코인 거래소 사장의 죽음과 그로 인해 전 재산을 날리게 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제기하는 여러 음모론에 대해 조명하며 진실에 대해 다룬다.
비트코인 거래소 사장의 사망, 전 재산을 잃은 투자자
제럴드 코튼(제리)은 캐나다 거대 비트코인 거래소 ‘쿼드리가CX’의 사장으로, 2018년 12월 고아원 설립을 위해 방문한 인도에서 사망한다. 문제는 그 혼자만 거래소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는 데에서 시작한다. 거래소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고객의 돈을 돌려주지 못했고, 투자자들은 순식간에 전 재산에 달하는 돈을 잃게 된다. 당시 해당 거래소를 이용하던 고객은 11만명이었는데, 그들의 계좌 잔고와 비트코인은 약 2억5천만달러로 한화 3천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중국계 캐나다인 통 조우는 이 사건 때문에 말 그대로 전 재산을 잃게 된 피해자다. 외화 반출 시 붙는 2%의 송금수수료가 아까웠던 그는 비트코인 구매 후 해외 계좌로 이체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그러나 쿼트리가 거래소에 문제가 발생하며 은행에서 지출을 거부했고, 그렇게 전 재산을 잃게 됐다.
갑작스럽게 전 재산에 달하는 돈을 잃게 된 피해자들은 제리의 사망을 믿지 못한다. 이 사건에는 어떠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여러 가설을 세우고 검증 절차를 거치며 진실을 파헤치고 나선다.
끝없이 이어지는 음모론과 진실
피해자들은 제리의 사망을 인정하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피해자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설을 세우고, 제리와 관련된 여러 정보를 공유하며 진실을 파헤친다. 제리의 사망원인인 크론병은 사망률이 3% 미만이었으며, 사망진단서에는 오타가 발견됐고 무엇보다 인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이 피해자들을 불신으로 밀어 넣었다. 또한, 제리의 사망 발표는 사망 직후가 아닌 사망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였다. 이러한 상황들은 거대한 음모론을 제기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제리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인도의 병원에 방문한 결과, 제리의 사망은 확실했다. 반론의 여지가 없이 살아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이에 피해자들은 또 다른 가설을 제시한다. 바로 제리의 부인 제니퍼 로버트슨의 범행이다. 제니퍼는 제리가 사망했던 인도 여행의 유일한 동행인이며, 제리의 시신을 본 유일한 사람이다. 또한 제리의 사망 2주 전, 제니퍼에게 현금은 물론 현물 등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또한 제리는 부검을 받지 않았고, 장례식장에서 관을 열어놓지 않아 제니퍼가 모든 일을 꾸몄다는 루머가 확산한 것이다.
이외에도 쿼드리가 설립 초기 동업자인 마이클 패트릭이 범행이라던가 제리가 성형수술 후 잠적한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음모론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들이 파헤치는 진실은 사실이 아닌 그들의 원하는 것이다. ‘젤리는 죽었다’는 진실은 외면하고, ‘젤리는 살아있다’에 초점을 맞춰 그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수집하고 있어 오히려 더 진실에서 멀어지고 고통받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음모론은 언론과 전문가가 나서 실체적 진실을 제공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여러 가설을 세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제리는 처음부터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증권위원회(OCS)의 수사 결과 제리는 이미 사기 범죄 이력이 있었으며, 거래소로 들어오는 모든 돈을 해외 거래소로 이체하고 있었다. 심지어 해외거래소에 투자한 금액은 모두 손실을 기록해 고객에게 돌려줄 수 있는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제리의 죽음이 한 달 후 발표된 이유도 당시 가상화폐 급락으로 투자자들이 자금 회수에 나섰으나 거래소 내에 자금이 없어 고객에게 돌려주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사망 발표를 터트린 것이다. 즉, 쿼드리가 거래소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 등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방식인 거대한 다단계 금융사기였던 것이다.
인터넷 투자에 대한 경종, 음모론의 허망함
이 사태는 인터넷 투자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일은 코인 시장의 불안정성에서 시작한다. 코인 투자 금액을 이용자 모르게 손실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애초에 사장이었던 제리는 사기 전과가 있었다. 그의 죽음이 납득하지 못할만한 상황인 것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의 죽음이 낳은 결과는 충분히 방지가 가능했었다. 가상화폐는 여전히 제도적 불안정성을 갖고 있다. 지난 루나 사태처럼 갑작스럽게 코인이 폭락하기도 하고, 쿼드리가 사태처럼 이용자들 모르게 투자 금액이 손실되기도 한다.
인터넷 투자가 활성화되는 만큼 투자자들은 그 위험성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 국가들 역시 신속한 규제와 대응이 필요해진다. 현금 사용이 줄어들면서 대부분의 돈은 실물이 아닌 전자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보이는 것과 실제 보유하고 있는 것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점을 이용해서 투자사기를 벌이는 일당도 존재한다.
또한, 음모론을 꾸준히 제기하는 자들은 모두 피해자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피해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남아있는 자들이 어떻게든 책임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끝없는 음모론 제기는 언젠가 진실을 파헤칠 수도 있지만, 이미 명확한 사실에 대한 음모론은 본인의 인생까지 갉아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