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하는 사랑은 하나를 변화시킨다 ‘이터널 선샤인’ [리뷰]
세기의 명작 리뷰, 영화 ‘이터널 선샤인’ 헤어진 연인과의 기억을 송두리째 지울 수 있다면? 사랑, 영원한 햇빛처럼..
누구나 학교나 직장에서 낮 시간을 보내고 밤 시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쯤 낮의 부끄러웠던 기억을 떠올리곤 ‘흑역사’ 라며 마구 이불을 발로 차곤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번 벌어진 일, 시간을 되돌려 없었던 일로는 할 수 없으니 빨리 이 기억이 없어지길 바라기도 했을 거다. 하물며 헤어진 연인과의 기억은 어떠할까.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헤어진 연인과의 기억을 송두리째 지울 수 있다면?’ 이라는 깜찍한 가정에서 시작한다.
‘이터널 선샤인’ 은 미셸 공드리 감독의 2004년작 영화로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일라이저 우드 등이 출연했다. 원제는 알렉산더 포프의 시에 등장하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 이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제 77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여우주연상 후보작으로 오르기도 했다.
영화는 출근길 충동적으로 직장 대신 문토크(Muntock)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 조엘 바리시(짐 캐리) 를 비춰주며 시작한다. 2월의 문토크에는 아무도 없다. 그러다 파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클레멘타인이라는 우스운 이름을 지닌 여자(케이트 윈슬렛) 을 우연히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발렌타인 데이 선물을 들고 클렘(클레멘타인을 부르는 애칭)이 일하는 서점을 방문한 조엘을 비춰주는데 파란 머리가 아닌 붉은 머리를 한 클렘은 그를 전혀 모른다는 듯 행동하며 옆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와 키스를 나누기 까지 한다.
알고보니 조엘과 클렘은 며칠 전 헤어졌으며 조엘과 사랑했던 기억이 고통스러웠던 클렘은 그 기억을 회사 Lacuna에 지워버렸던 것이다. 이에 조엘도 화가 나 Lacuna에서 기억을 지우고자 한다. 조엘이 머리에 장치를 뒤집어쓰고 잠들자 프로그램이 기억을 지우기 시작하는데, 기억 속 가상현실이 조엘을 비춰주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조엘은 클렘과 함께 했던 기억이 서서히 지워지자 곧 후회한다. 기억 삭제를 멈춰 달라고 애원하지만 가상 현실 속의 부르짖음은 기술자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Please let me keep this memory. Just this one (제발 이 기억만큼은 남겨 주세요. 이것만큼은…)
그러자 가상현실 속 클렘은 기술자들이 사용하는 기억지도에서 벗어나 자신과 상관없는 기억 속으로 숨겨 달라고 말한다. 쪽팔렸던 기억, 아주 어릴 적 기억으로 클렘을 데려간다. 도망치는 데에 성공한 듯 했지만 결국 지워 지고만 클렘에 대한 기억.
한편 현실 세계에서도 일은 녹록치 않게 흘러간다. 한밤중 Lacuna의 하워드 박사는 자꾸 기억 지도를 이탈하는 조엘의 문제를 해결하려 조엘의 집을 찾는다. 집에는 이미 박사의 부하 연구자와 접수원 메리 스베보가 있었다. 메리 스베보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알렉산더 포프의 시를 인용하며 하워드 박사를 유혹한다.
흠 없는 처녀 사제의 운명은 얼마나 행복한가!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세상은 그녀를 잊고, 그녀는 세상을 잊어가네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 (Ete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그러나 반전이 시작된다. 이 둘은 처음 이런 관계 (하워드는 유부남이다)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과거 메리와 하워드는 사랑했던 사이였지만 하워드의 가정문제로 인해 결국 메리의 기억을 지우기로 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메리는 화가 나 Lacuna에서 기억 삭제 시술을 받았던 의뢰인들에게, 의뢰인들이 기억지도를 만들기 위해 녹음했던 상대 연인들에 대한 음성 파일을 발송해버린다.
영화는 다시 조엘과 클렘을 비춘다. 다시 보니 뭔가 이상하다. 클렘의 머리는 중간중간 색이 달라긴 했지만 오렌지 색이었는데 이제 보니 영화 첫 장면에서 처럼 머리가 파랗다. 사실 영화 첫 장면은 기억이 모두 지워진 조엘과 클렘이 다시 사랑에 빠진 장면이었던 것이다. 제일 처음 그들이 사랑에 빠진 곳 역시 문토크였지만 그때는 오렌지색 머리에 오렌지색 후드를 입은 클렘이 다른사람과 함께 휴가를 왔지만 어울리지 못하는 조엘에게 먼저 말을 걸며 사랑이 싹텄다. 그러나 그들은 헤어지고 서로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다시 사랑에 빠졌고, 서로를 험담하는 음성 파일을 받아들고는 망연자실해 한다.
클렘은 두려워한다. 조엘이 지금은 자신이 단점을 보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과거 그랬던 것 터럼 클렘의 애정결핍적 행동에 진저리를 내며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조엘은 말한다. “Okay (알아, 그래도 상관없어).” 영화는 서로 마주보고, 울다가 결국 웃으면서 끝난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도 굉장히 유명하지만 그 평론 멘트로서도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칼럼니스트 이동진은 “지금 사랑 영화가 내게 줄 수 있는 모든 것” 라고 평했으며 네이버 영화 평점 “속는셈치고 다시 사랑을 믿어볼까 했던 영화” 는 sns에서 굉장히 유명한 평점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굉장히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경험 속에서 슬퍼하고, 아파하며 때로는 행복한 추억도 만든다. 그런 경험들 속에서 사람은 변화하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상징적인 두 장면이 있다. 시간적으로 가장 처음, 문토크에서 오렌지색 머리를 한 클렘이 조엘에게 말을 거는 장면 속에서의 조엘은 아주 고지식하며, 충동적인 행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클렘은 그에 반해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술을 마실만큼 충동적인 여자다. 그러나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관객들은 가장 먼저 출근하려다 말고 느닷없이 문토크 행 기차에 올라타는 조엘을 마주하게 된다. 아주 충동적인 모습이다. 클렘에 대한 기억은 송두리 째 사라진 지 오래지만, 클렘과의 연애를 통해 조엘은 변화하고 일정 부분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이뤄내는 것이고, 그 사랑의 기억은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보다 성장 시킨다는 점에서도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며 때론 아파하고,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삶 속에서 그 기억을 계속 껴안고 살아가며 스스로를 더욱 성장 시키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영원한 햇빛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