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필 감독 세계관의 시작, 지금이 ‘겟 아웃’을 볼 최적의 타이밍 [리뷰]

조던 필-다니엘 칼루야 첫 호흡 ‘겟 아웃’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일상 속 만연한 차별

사진=유니버설스튜디오

영화계 만큼 팬데믹의 종료를 기다렸던 곳이 또 있을까? 폭염과 폭우를 오가는 날씨 탓에 야외 대신 극장을 찾은 영화 팬들은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아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당초 7월 20일 국내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 ‘놉’이 8월로 개봉을 연기하며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안기기도 했다.

‘놉’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은 만큼, 감독의 전작인 ‘겟 아웃’, ‘어스’ 등이 IPTV와 OTT에서 큰 인기다. 특히 ‘겟 아웃’은 ‘놉’에서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조던 필 감독과 주연 다니엘 칼루야가 처음 함께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겟 아웃’은 11일 기준 웨이브 인기 순위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사실 코미디 배우로 유명한 조던 필이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에 아무도 ‘겟 아웃’의 흥행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는 흥행은 물론, 아카데미상 각본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특히 미국 사회 내 흑인을 향한 차별을 비판적이지만 담담한 시각으로 잘 담아냈다는 평을 들으며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8%라는 높은 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작품은 흑인 사진작가 ‘크리스’(다니엘 칼루야 분)가 백인 여자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암스 분)의 집에 초대받아 ‘아미티지 저택’을 방문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로즈는 설렘보다 우려가 큰 크리스를 안심시키려 하지만 크리스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한다. 숲길을 지나던 도중 자동차에 사슴이 뛰어들어 죽자 불길한 예감은 더 커진다. 그러나 우려와는 다르게 로즈의 부모님은 크리스를 따뜻하게 반겨준다. 자신을 적대시하는 듯한 흑인 하인들이 거슬리긴 하지만 크리스는 조금씩 마음을 놓는다. 

사진=유니버설스튜디오

그날 밤, 크리스는 담배 생각이 간절해 잠깐의 외출 후 로즈의 어머니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눈다. 어머니의 사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는 뜻하지 않게 그녀의 최면에 걸린다. 하지만 그 불쾌함이 꿈인지 현실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로즈도 잊고 있었지만 크리스가 방문한 때는 아미티지 저택에서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할아버지가 계실 때부터 이어져 온 연례행사다. 파티에 참석한 할아버지의 손님들을 가장 반갑게 맞이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흑인 집사 월터다. 단 한 명, 로건을 제외한 모든 손님이 백인인 이 불편한 자리에서 더는 있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 크리스. 결국 그는 로즈와 함께 늦은 밤 저택을 떠나기로 하지만 로즈의 동생 제레미와 부모님이 이들을 막아선다. 이후, 영화는 진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초 한국에선 개봉 예정조차 없었던 ‘겟 아웃’은 국내에서 20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했다. 그만큼 작품에 촘촘하게 녹아있는 복선에 대한 해석도 많다. 하지만 복선이나 스포일러를 알고 봐도 재밌는 영화임은 분명하니 오늘은 ‘알고 보면 더 재밌을’ 영화의 포인트 세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사진=유니버설스튜디오

#1. 색은 보이는 것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크리스는 뛰어난 심미안을 가진 사진작가로 나온다. 그가 찍는 사진은 흑백 사진이며, 파티 참석을 위해 아미티지 저택을 방문한 백인들이 타고 온 차는 하나같이 검정색이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성은 흑과 백 외에도 빨강과 파랑으로 구분된다. 대부분 옷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낸 가운데, 더 작은 소품 또는 물질로도 드러낸 장면들이 많으니 이를 발견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특정한 컬러의 소품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동하거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장면들은 단 몇 초의 장면으로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2. 제목 ‘겟 아웃’이 가지는 두 가지 의미 

크리스 외에 파티에 참석한 유일한 흑인 로건은 한 순간 폭력적인 모습으로 돌변한다. 그는 크리스를 향해 달려들며 “당장 여기서 나가(Get out)”라고 외친다. 파티는 정원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그가 크리스를 향해 여기서 도망치라고 경고하는 상황이라면 “Get out”보다는 “Run”이라고 외쳤을 것. 과연 로건이 당장 ‘나가라’고 말한 상대는 누구일지, 영화를 보고 나면 한 사람이 더 떠오를 수 있다.

사진=유니버설스튜디오

#3. 자칫 허술해 보이는 침잠을 그려낸 묘사 

영화는 작품성과 더불어 투자 대비 높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미티지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며 특수효과 등이 사용된 장면이 거의 없다. 특히 크리스가 침잠에 빠지는 장면은 자칫 실소를 터뜨릴 수도 있을 만큼 허술하다. 하지만 정작 우울증 등으로 침잠의 상태를 경험해 본 이들은 이 장면이 실제 무력에 빠진 상태를 더없이 잘 나타냈다고 입을 모았다. 눈앞의 형상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장면으로 느껴지는 점과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극한의 무력을 이보다 잘 표현해 낼 수 없다는 것. 영화에서 침잠은 곧 가장 중요한 걸 잃는 것과 같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 상태를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극중 크리스가 느꼈을 무력감에 공감한다면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외에도 크리스를 둘러싼 백인들이 그의 피지컬을 찬양하는 듯한 장면은 차별의 또 다른 형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흑인 내에서의 차별, 여성 경찰에게 반복적으로 “Ma’am”(여사님, 부인)이라고 부르는 인물을 통해 젠더 차별 역시 가볍게 훑고 지나간다. 이렇게 일상에 만연한 차별을 소름끼치는 음모론 곳곳에 덧붙인 덕분에, 영화는 차별에 무뎌진 우리 눈앞에 손가락을 튕겨 침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러시아 작가 체호프는 “1화에서 총을 보여줬다면 2화나 3화에선 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불필요한 설정을 과도하게 배치하는 것은 보는 이들의 피로감을 더할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물론 이는 소설 창작에 대한 이론이었지만 한정된 범위 내에서 이야기를 펼쳐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조던 필 감독은 이런 면에서 빛나는 ‘떡밥 수거 능력’을 자랑했다. 104분의 길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불필요한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감독은 ‘겟 아웃’ 다음 작품인 ‘어스’에서 작품의 무대를 조금 더 넓혀 세계관을 확장했다. 그리고 오는 8월 17일 개봉하는 ‘놉’은 훨씬 더 광범위한 초자연적 현상을 다룰 것으로 예고되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에선 ‘조동필’이라는 애칭까지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조던 필 감독.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팬들에겐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작품으로, 아직 접해보지 않았다면 그의 첫 작품으로 이 영화를 추천한다. 점점 더 확대되는 그의 세계관에 들어서는 관문으로 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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