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OTT 자율등급제로 본 민-관 협력과 국가경쟁력
지난 7일, OTT 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자율등급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국OTT협의회(티빙, 왓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웨이브, 쿠팡) 관계자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간 해외 OTT업체들은 국내법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영상물에 대해 등급을 지정할 수 있었던 반면, 국내 OTT업체들은 ‘사전등급제’라는 규제로 인해, 영상물 시청 가능 연령대를 정부 관계부서에 먼저 승인을 받아야했다.
민관 협력? 관(官)의 민간 방해?
해외 기업들은 ‘허가제’ 시스템 아래 규제 없이 사업을 영위하는데 반해, 위와 같이 국내 기업들은 ‘심사제’ 시스템 아래 역차별을 받는 경우는 비단 OTT 업계에 국한된 사안은 아니다. 때로는 스크린쿼터제가 한국 영화 업계를 살렸던 것처럼 국내 기업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나, 소비자 선택에 제한이 없는 상태에서 생산자 규제만 있는 OTT의 사례와 유사한 경우에는 한국 산업 발전의 독으로 작용한다.
이번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이하 영비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 밟은 절차도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2017년부터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올리고 있던 무렵부터 한국 OTT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심사제’를 ‘허가제’로 바꿔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다 2020년이 되어서야 정부는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자율등급제 도입을 ‘계획’했다. 심지어 담당 부서도 한 곳이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정부부처와 국회까지 이어졌다.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으로 OTT 자체 생산 콘텐츠까지 도전하는 왓챠의 사례를 볼 때, 국내 OTT기업이 글로벌 최상위권 회사들과 글로벌 시장도 아니고 한국 시장에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년 동안 정부에 ‘로비’아닌 로비를 해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정부 기관이 하나로 통일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수십군데 사무실을 돌아다녀야 한다.
민간과 관가의 협력은 한편으로는 부패로 흘러갈 수 있어 조심해야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OTT업계 상황과 같이 국내 대부분의 정부 규제는 민간 기업의 발전을 옥죄는 장애물로 작동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국가경쟁력을 관(官)이 길러주나? 민간 자생은 불가능한가?
국내 OTT업체들은 그간 해외 OTT플랫폼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도전을 해 왔다. 자율등급제는 수 많은 규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당장 세제 혜택만 봐도, 글로벌 OTT업체들은 콘텐츠 생산에 들어간 비용에 대해 자국에서 30-40%의 세제 혜택을 받고 있는 반면, 국내는 대기업 3%, 중소기업은 최대 10%에 불과하다. 확대해달라는 OTT업체들의 요청에도 즉각적인 대응은 못하고 내년으로 논의를 넘긴 상태다.
그렇다고 정부가 한국 기업들의 성장을 위해 엄청난 지원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예전처럼 스크린쿼터제로 영화업계에 유치산업보호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넷플릭스, 디즈니+ 등의 글로벌 업체의 국내 활동에 제약은 없는 상태다. 국내 인력들은 웨이브, 티빙, 왓챠보다 넷플릭스의 한국 사무실에 채용되는 것에 더 환호한다.
영상물의 등급을 정부가 판단하지 않다가 청소년들이 유해 매체에 노출될 수 있다는 주장에 틀린 부분은 없다. 그러나, 정부가 부모님이 아닌 것과 같은 맥락에서, 민간이 그런 판단을 할 자정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의 모임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디즈니+가 성인 콘텐츠를 편성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부분을 어기자, 전미학부모협의회에서 즉각 비난 성명을 냈다. 가족 단위 시청이 잦은 OTT플랫폼들이라면, 아예 성인 콘텐츠를 안 올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서비스를 시작한 탓에 가족 단위 시청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OTT플랫폼이라면, 가입자를 잃을 각오를 하고 무리하게 성인 콘텐츠를 추가할까? 시민사회의 비난으로 이미지가 엉망이 되는건 어떻게 할까? 아예 성인 콘텐츠 보려고 특정 OTT 플랫폼을 구독하고 있다는 이미지가 찍히면 그 OTT플랫폼은 영업이 가능할까?
시민사회 역량을 키우기위해 시민단체들에 서울시에서만 박원순 시장 재임기간 5년간 7,000억원의 지원을 해줬었다. 시민단체들의 역량을 키워 민간이 민간을 감시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어내면 굳이 ‘사전등급제’ 하나를 위해 5년을 끌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