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작가 “OTT, 아직 탐험되지 않은 영역” [2022 콘텐츠 인사이트]

‘2022 콘텐츠 인사이트’ 27일 개최 ‘작은 아씨들’-‘헤어질 결심’ 정서경 작가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지금 창작을 시작하는 예비 창작자들은, 영화보다 드라마, OTT에 더 궁금한 점이 많을 거다. 아직 탐험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

올 하반기 OTT 랭킹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이 있다. 바로 드라마 <작은 아씨들>과 영화 <헤어질 결심>의 작가 정서경이다.

tvN <작은 아씨들>은 방영 기간 동안 동시 공개된 티빙과 넷플릭스에서 최상위권을 지켰고, 글로벌 흥행까지 기록했다. 제75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시작으로 춘사국제영화제, 부일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 여러 영화제에서 감독상, 남녀주연상 등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 <헤어질 결심>은 OTT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후 단번에 통합 랭킹 1위에 오르며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27일 오전 서울 동대문 홍릉 콘텐츠 인재 캠퍼스에서 열린 「2022 콘텐츠 인사이트」에 참석한 정서경 작가는 모더레이터 주성철 영화평론가와 함께 ‘IP: 세계관의 탄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고찰과 작품과 창작에 대한 궁금증에 답했다.

최근 드라마 <작은 아가씨> 레이스를 마친 정서경 작가는 “매주 반응 보느라 긴장했는데, 고요한 주말이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새 작품을 쓰고 있다”는 근황도 공개했다.

정 작가가 <작은 아씨들>을 쓰게 된 계기는 달라진 시선 때문이다. 예전에는 못돼 보이던 작은 아씨들이 이제보니 착하게 느껴져 다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더불어 소설 『작은 아씨들』 중 좋아하는 장면으로 조가 머리를 자르고 나타난 장면, 에이미가 조가 쓴 원고를 태우는 장면, 그리고 조와 매그가 무도회에 간 장면을 꼽았다.

그는 “자매들이 조금씩 무언가를 위반하는 장면이 좋았다. 조가 ‘내 성격이 나쁘다’며 엄마에게 호소하자 엄마가 ‘나도 성격이 나쁘지만 날마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착하지 않아도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프란츠 카프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는 정서경 작가는 “셰익스피어는 20대 초반에 읽었다. 사람을 형성하는 건 20대 초반까지인 것 같다. 이야기를 만들 때 도움 되는 문법 구조 같은 이야기는 12세 이전 같다. 안데르센 그림동화 등 마음을 떠나지 않는 모티브가 있잖냐”면서 영화 <승리호>와 <외계+인 1부> 등을 통해 느낀 동심과 취향에 관해 이야기했다.

드라마를 시작하며 바빠진 탓에 책에 손을 대지 못했다는 그는 “전에 읽은 책으로 근근이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다. 영화를 쓰면서 문학 작품은 잘 안 읽게 됐다. 과학책이나 자서전, 정치, 역사 위주로 본다. 문학이 머리에 들어오진 않더라”며 “필사는 해본 적 없지만, 중요한 부분은 틀리지 않게 인용할 수 있도록 노트에 적어둔다”고 밝혔다.

영화는 물론 드라마, OTT 등 장르와 무관하게 통하는 정서경의 글. 그는 글쓰기에 앞서 “마음 상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잘 쓰고 싶지만, 그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 냉철할 만큼 현실적인 판단. 그는 “항상 1번씬이 가장 어렵다. 무한대 가능성이 있어 선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대치를 낮추며 하루 이틀 두고 보다가 삼일 째가 되는 날 쓰게 된다. 그럼 30% 불확실성이 제거된 거다. 중간쯤 되면 선택한 장면을 쓰면 되고, 결말로 가면 선택지가 한두 개밖에 없어서 편하다”고 털어놨다.

“글 쓰는 건 힘든게 정상이다.” 정 작가는 “생각하는 것보다 잘 쓰지 못한다는 걸 받아들이면 잘 쓸 수 있다”면서 기상 후, 점심 식사 후 한 시간 동안 누워서 소재를 생각하는 자신의 일과와 함께 조금씩 대본을 채워가며 완성하는 글쓰기 스타일을 공개했다.

작가에게 꼭 필요한 건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정서경 작가. 아무리 바빠도 주 3일만 보조작가를 부른다는 그는 “대화를 하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이야기의 30% 이상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혼란, 불확실성을 가진 상태로 혼자 있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며 작가가 가져야 할 자신만의 세계에 대해 말했다.

영화 <아가씨>부터 드라마 <마더> <작은 아씨들> 등 정 작가의 이야기에는 여성이 전면에 배치된다. “여성들이 그리는 이야기가 남성들이 그려내는 이야기와 어떻게 종류가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진 그는 여성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거나 기능적으로 쓰이는 영화 <한산> <남산의 부장들>을 언급하며 ‘역사적 순간에 여성들의 역할’과 ‘기록자가 여성이었다면?’이라는 화두를 통해 색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부터 박찬욱 감독과 다섯 작품으로 호흡을 맞춰온 정 작가는 하나의 모니터와 두 벌의 키보드를 두고 공동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를 망치러 온(정서경) 구원자(박찬욱)” “희망을 버려(정서경) 힘내(박찬욱)” 같은 명대사를 탄생시킨 가장 큰 힘이기도 한 두 사람의 합동 작업. 이에 대해 정 작가는 “시나리오 초고가 있기 때문에 협업을 할 수 있는 거다. 뒤에 어떤 문장이 올지 모르면 할 수 없다”면서 “쓸데없는 논쟁보다 조용히 수정 작업을 한다”고 밝혔다.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정 작가가 그리던 <작은 아씨들>의 결말은 인해가 돈을 가지고 나눠주는 것이었지만, PD의 반대에 부딪혔다. “tvN에서 주인공이 범죄에 휘말리는 일은 안된다”는 이유였다. 변호사에게 합법적 방법을 문의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횡령당한 곳으로 돈이 돌아간다는 말에 돈의 역사를 세세하게 보여주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더불어 상아가 죽는 과정에 대한 대립도 있었다고 밝혔다.

시나리오 혹은 극본을 두고 회의 중 의견 대립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까? 정 작가는 “시나리오 쓸 때 가장 어려운 순간은 1씬을 쓸 때, 그리고 초고를 써서 감독한테 보내고 피드백을 보낸 후 24시간이다. 그때 가장 기분이 안 좋다. 부정적 반응을 예상하고 이미 화가 나 있다”면서 신뢰하는 PD, 연출과 일 할 때는 자신의 의견을 설득하려 들기 보다 그들이 제시한 관점을 곱씹으며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들의 뜻에 맞춰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찾는 방향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제작 환경에 차이가 존재한다. 영화는 시나리오가 100% 완성된 후 작업을 시작하지만, 기존 드라마의 경우 촬영과 동시에 극본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OTT 콘텐츠가 확장되면서 사전제작이 가능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변화는 진행 중이다.

두 작업을 모두 해 본 정 작가는 “16부작 드라마라면 촬영 전 12부는 완성해 둔다. 4부작 남은 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사실 드라마 1~4부는 캐스팅 때문에 열심히 쓰게 된다. 영화처럼 모든 스토리가 완성된 후 제작 전 수정 작업을 하면 의미를 알고 하기 때문에 드라마의 퀄리티가 좋아질 거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든 영화든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글을 쓴다는 게 힘들다. 강제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촬영을 시작하면 무조건 써야 하잖냐. 그런 힘으로 쓰는 분도 계셔서 관행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객석에서는 영화보다 OTT, 드라마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쏟아졌다. 정서경 작가는 “아마도 지금 창작 작업을 시작하시는 분들은 영화보다는 드라마, 또 OTT 위주로 많이 생각할 것 같다. 아직 탐험되지 않은 영역이 많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많으실 거 같다”면서 “참고로 저도 아직 안 써 봐서 지금이 처음”는 말로 창작자가 생각하는 OTT 플랫폼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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