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로 읽는 한국경제사 – 3.우리가 아는 DMC의 숨겨진 역사

서울 DMC, 1990년대까지만해도 쓰레기 매립장 ‘난지도’의 일부 개발 시작은 월드컵 유치 덕분, 일본에 밀리기 싫은 한국인 자존심의 발로 IMF구제금융으로 개발 계획 발표는 2000년, 첫 삽은 2001년에 뜬 사업 불과 10년만에 대규모 IT/미디어 전문 신도시로 발돋움하는 기적이 일어난 곳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출처=서울시청

1990년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일대는 쓰레기 매립지였다. 과거 ‘난지도’로 불린 곳이기도 하다. 한 때 제2의 여의도를 꿈꿨던 곳인데, 1990년대 후반까지도 이 곳은 쓰레기가 가득한 폐허 같은 곳이었다. 실제 개발이 시작된 것은 상암동에 월드컵경기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첫 삽을 떴던 1999년 말이다. 심지어 월드컵 경기장이 지어지고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던 2002년까지도 일부 지역에서는 완전히 쓰레기를 제거하지 못한 상태였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쓰레기 매립지를 잘 표현한 영화 중에는 <김씨 표류기>가 있다. 어쩌다 한강물에 휩쓸려 내려온 한 남자가 외부와 고립된 상황이라 구출 받는 것을 포기하고 있던 중에 쓰레기 더미에서 짜파게티 포장지를 보고 짜파게티를 먹고자 스프를 찾는 장면이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남태평양 한 가운데의 섬이 아니라 서울시내에서도 외부와 고립되었다는 상정이 가능할만큼 상암동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이미지는 ‘외딴 지역’이었다.

출처=김씨표류기

상암동 개발, 사실 정몽준 회장의 월드컵 유치 덕분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진도준(송중기 분)이 상암동 개발 사정을 미리 알고 정부 프로젝트에 뛰어드는 모습이 나온다. 2022년인 지금이야 분당, 일산, 판교, 마곡 등등의 대규모 베드타운 덕분에 정부의 도시개발계획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상암동 개발 계획이 구체화되던 1994년만해도 분당, 일산 개발도 제대로 삽을 뜨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상암동 개발에 전력투구하는 진도준이 당황스러워야 하는 존재다. 드라마에서는 개발 사업에 확신을 가진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정부 프로젝트를 따야한다고 몰아세운다. 미래의 지식을 가진 뻐꾸기 같은 아들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정말 대단하신 분들 같다.

실제로 상담동 개발 계획이 본격화 된 것은, 월드컵에 손님들이 찾아오는데 쓰레기 매립지인 난지도 바로 옆에 있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이 볼품 없어 보일 것이라는 연이은 신문보도에 정부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당시만해도 1997년 말에 불어닥친 IMF구제금융 위기로 공적자금으로 100조원이 넘는 부채를 찍어낸 정부 입장에서 대규모 사업을 벌리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4월에 서울시가 ‘상암 새천년신도시 조성계획’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덕분이다. 일본에게 지기 싫어하는 한국인의 심리 덕분에 도쿄의 국립 카스미가오카 경기장에 비해 초라하게 보일 수는 없다는 맹렬한 자존심이 초단기 건설공사를 일궈내게 된다.

IMF구제금융 위기 극복이 어려워 일본 단독으로 월드컵 개최를 변경하자는 이야기도 돌았던 그 시절, 만약 극중 세상에서 진도준이 바꾼 미래 때문에 월드컵 유치가 취소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1990년대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 일대를 살펴보는 장면 /출처=JTBC

2000년 당시 발표된 상암 새천년신도시 조성계획안

당시 계획안에 따르면, 서울 북쪽 17만1,000평 부지에 소프트웨어, 멀티미디어 분야의 국내외 유수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디지털미디어 시티(Digital Media City, DMC)’를 조성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첨단과학 훈련센터를 입점시킨다는 계획이었다. 한강변에 맞닿은 남쪽 부지에는 대형 밀레니엄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북쪽의 업무 지구와 남쪽의 공원 부지 사이에는 7,000여 세대에 달하는 아파트 단지를 환경친화적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DMC를 직장과 주거가 결합된, 이른바 ‘직-주 지구’로 계획한 것이다.

월드컵을 불과 1년 앞 둔 2001년에 상암월드컵경기장에 삽을 뜨고 불과 1년만인 이듬해 5월에 월드컵 공원이 개장했다. 월드컵 개최가 6월이었으니 정말 엄청난 속도전이었던 것이다. 이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상암월드컵파크 아파트 총 12단지가 연이어 들어섰다. 작년까지 지속적으로 아파트 가격이 인상된 덕분에 84㎡가 14억원대에 거래되면서 판교, 분당 못지않은 신도시 지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대규모 업무지구에는 사기업 이전이 드물어 공공기관들이 입점했고, 방송국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체들로 공간을 채웠다. 현재 MBC, SBS, YTN, JTBC, CJ E&M 등의 주요 미디어 기업이 자리하고 있고, 각종 언론사들도 종로, 여의도, 강남 일대의 고가 월세와 낙후된 건물을 피해 DMC에 입점해 있다.

그러나 1994년 처음 계획안이 나왔던 시점에는 20년도 지나지 않아 DMC가 종로, 여의도, 강남, 판교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심 업무 지구가 될 것이라는 정부 계획에 공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쓰레기 매립이 수십년간 지속된 탓에 흙이 완전히 오염된 상태라 아파트를 지을 경우 심각한 하자가 발생한다는 보도가 잇따랐고, 쓰레기 악취 때문에 주거 환경이 갖춰지기 힘들 것이라는 악성루머도 많았다. 무엇보다 한경변의 밀레니엄 공원 계획 안이 수십년간 토지 속에 스며진 쓰레기 오·폐수를 그대로 방출하는 계획이라는 환경단체의 비난도 있었다.

‘재벌집 막내아들’ /출처=JTBC

인천 송도 버리고 서울 상암을 택했던 정부

상암동 개발이 성공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정부가 인천송도지역에서 추진되던 미디어밸리 사업을 상암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당초 미디어 밸리 사업은 한국정보산업연합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관련 생산, 연구, 교육기능을 집적하여 세계적인 클러스터 조성 구상으로 인천송도지역을 최종입지로 선정했으나, 입지상의 제약과 사업주체간의 갈등으로 사업추진이 불투명해진데다, 갑자기 상암지역 개발 속도가 빨라지자 미디어 밸리 사업 자체를 수정한다.

미래형 신도시 속의 미디어 관련 특화도시 비전이 친환경도시, 관문도시를 내세운 상암 개발 계획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당시 송도 지역에 투자했던 많은 부동산 투자자들이 아파트 한 채당 2억원씩의 프리미엄을 요구하다 순식간에 가격이 폭락한 반면, DMC 일대의 상암월드컵파크에 2억원 이상의 프리미엄이 추가로 붙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DMC는 현재도 개발이 진행 중인 신도시다. 원래 계획이었던 ‘테헤란밸리 대체지역’이라는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받을만큼 IT기업들의 이주가 드문 가운데,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사무실 월세도 동일 면적과 유사 조건대비 서울 강남 지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전히 많은 IT스타트업들은 ‘테헤란로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강남의 역삼역-선릉역-삼성역 일대에 사무실을 찾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언젠가 DMC에 IT스타트업들이 대규모로 몰리는 시점이 와야 2000년 4월의 서울 상암 개발 계획이 진정한 목표를 달성한 셈이 될 것이다.

진도준은 이런 수 많은 정책적, 거시경제적 사건의 연속이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상암 개발에 뛰어든 셈이다. 내가 바꾼 과거로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는 엄청난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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