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탐구생활] ‘더 글로리’의 영향력① ‘학폭’ 수면 위로

사진=넷플릭스

국내외 OTT 랭킹 1위를 휩쓴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와 콘텐츠 화제성을 넘어 사회적 이슈를 생산하며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문제들을 끄집어냈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연출 안길호, 극본 김은숙)는 유년 시절 학교 폭력(이하 학폭)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문동은(송혜교 분)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다

“내가 누군가를 때리고 오는 것과 맞고 오는 것 어떨 때 더 슬플 것 같냐?”는 고2 딸의 질문에 작품을 준비하게 되었다는 김은숙 작가는 “학폭 피해자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사명처럼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극에 담긴 메시지를 설명했다.

극 중 학폭 피해자인 동은은 법의 도움으로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사적 영역에서 복수를 준비하고 실행한다. 그 과정에는 불법, 위법인 행위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김 작가는 본인은 사적 복수를 옹호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밝히며 해당 묘사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판단력 있는 성인들이 보고 바른 판단을 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작품은 10대 청소년기 학폭을 당하는 동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화장실 청소를 대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작된 괴롭힘은 손발로 때리는 폭력을 넘어 고데기와 다리미로 화상을 입히고, 빗속에 세워두고 속살이 비치게 하거나 강제로 키스를 퍼붓는 성추행으로 번지는 등 충격적인 수준이다. 더 놀라운 건 작품 속 끔찍한 학폭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

사진=넷플릭스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 거야. 막을 수도, 없앨 수도 없을 거야.
나는, 너의 아주 오랜된 소문이 될 거거든.”

학교에서 폭력 사건이 벌어졌지만 선생님들은 오히려 괴롭힘당하는 동은을 탓하며 귀찮은 듯 무시했다. 경찰에 신고해도 뾰족한 수는 없었고, 학교는 돈이 많은 가해자들을 오히려 보호했다. 동은은 부모, 선생, 학교, 경찰 등 어른들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절벽 끝까지 밀려난 동은은 죽기를 결심했지만, 마침 화상을 식혀줄 눈이 내리며 ‘복수’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가해자들이 부모로부터 부를 상속받으며 화가, 승무원, 현모양처를 꿈꾸는 동안, 동은은 가해자 리더인 박연진(임지연 분)을 꿈으로 정했다. 그렇게 18년 동안 칼을 갈 듯 치밀하고 처절하게 복수를 준비했고, 드디어 가해자들 앞에 나타나 용서도 영광도 없는 단죄를 시작했다.

<더 글로리>는 지난 12월 30일 첫 공개 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총 8부작인 파트1을 앉은 자리에서 완주하고, 파트2 빠른 공개를 재촉하게 만들었다. “역시 송혜교, 역시 김은숙”이라는 극찬과 더불어 ‘학폭’과 극 중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학폭’ 논란의 불씨는 한국이 아닌 태국에서 먼저 점화됐다. <더 글로리>를 통해 학교폭력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유명 연예인들의 학폭이 공론화됐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더글로리타이(#TheGloryThai)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학폭 피해 사실 폭로 릴레이가 이어진 것. 과거 사진, 영상 등도 함께 게재됐다.

중학교 시절 자폐 학생을 괴롭힌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태국의 유명배우 옴 파왓(23)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파문을 불러왔다. 한국 드라마를 통한 새로운 사회현상에 태국은 놀라워하면서도 “학폭, 이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경각심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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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 너네 주님 개빡쳤어.
너 지옥행이래.”

지난 2021년 한국 연예계는 연이은 학폭 폭로로 뜨거웠다. 10대 아이돌(가수)부터 40대 배우까지 장르도 연령도 다양하게 의혹이 제기됐다. 루머나 허위사실 유포로 진위가 밝혀진 사례도 있지만, 여러 정황과 구체적인 증언으로 가해 사실을 인정한 스타들도 많았다.

그 가운데 학폭 의혹을 받은 배우 지수가 사실을 인정하며 방영 중이던 드라마 <달이 뜨는 강> 송출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지수는 하차했고, 주인공을 교체해 재촬영을 하며 작품(제작사)은 큰 피해를 봤다. 지수는 소속사 결별 후 배우 활동을 중단했다.

지수의 사건으로 ‘학폭’이 배우뿐만 아니라 작품에도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작사에는 비상이 걸렸다. 학폭 논란에 휩싸인 라이징 스타 조병규, 박혜수 등은 캐스팅된 작품에서 하차하거나, 촬영을 마치고도 드라마 공개를 미뤄야 했다. 조병규는 지난해 티빙에서 공개된 <전체관람가+: 숏버스터> 중 곽경택 감독의 단편영화 <스쿨카스트>로 얼굴을 비췄지만,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가 자숙 중 학교 폭력을 다룬 작품에 출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냉대를 받았다.

박혜수는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와 첨예한 다툼을 벌이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촬영을 마친 드라마 <디어엠> 편성 취소 및 예정된 방송 취소로 연예 활동을 접어야 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며 약 1년 8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조병규와 형제로 출연했던 김동희도 학폭 의혹으로 기세를 잃었다. 낮은 유명세를 방패 삼아 활동을 이어갔지만, <더 글로리>가 화제가 되며 다시 한번 조명받고 있다.

그 밖에도 스트레이키즈 현진은 학폭을 인정하고도 그룹 활동을 지속했고, ITZY(있지) 리아 또한 학폭 의혹에 애매한 입장을 표명하며 자숙 없이 활동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같은 JYP 소속이다. 하이브 산하 쏘스뮤직이 야심차게 내놓은 걸그룹 르세라핌은 데뷔 전부터 ‘학폭’ 의혹 멤버 김가람으로 화제가 됐다. 팬들의 하차 요구를 무시한 기획사는 인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뒤늦게 계약을 해지했다. 또 배우 서예지, 손석구, 진해성 등 학창 시절과 먼 배우, 가수들도 학폭 의혹에 자유롭지 못했다.

사진=넷플릭스

난 니가 시들어가는 이 순간이 아주 길었으면 좋겠거든.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 보자, 연진아.”

학폭 가해자로 지목돼 자숙하던 배우들은 2년이면 반성의 시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지, 올해 본격적으로 복귀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조병규는 tv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시즌2에 출연을 확정했다. 김동희는 오는 18일 개봉을 앞둔 영화 <유령>에 출연했으며, 최근 새로운 프로필 사진을 게재하며 활동을 예고했다.

그들이 대중 앞에 설 준비를 하는 동안 <더 글로리>가 등장했다. 작품을 통해 ‘학폭’의 잔인함과 무서움을 알게 된 대중들은 이제 가해자에 관대할 수 없다. “어리니까 할 수 있는 실수”도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폭력의 가해자가 잘못을 잊고 대중들의 사랑 받으며 빛나는 인생을 사는 동안, 피해자는 그 기억을 안고 살아왔다. TV를 틀면, 영화관에 가면 마주하는 가해자의 얼굴을 힘들게 외면하며 고통받아 왔다.

가해자는 자신의 ‘백야’가 시작되며 가장 빛날 때 터진 폭로로 발목 잡혔다는 생각에 원망스럽겠지만, 피해자는 동은처럼 가장 찬란한 나이에 이미 폭력으로 영혼의 한구석이 망가져 ‘극복해야만’ 하는 ‘극야’의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깊이 묻어둔 폭행 피해 사실을 이제 와 꺼내 놓은 것이 그 증거다. 이것이 보복을 위한 폭로였다고 해도, 김은숙 작가의 말처럼 피해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힘을 멋대로 휘두르고 남 위에 군림하려 한 자기의 과오이다. 실수 아닌 명백한 잘못.

대중들은 “멋지다 현진아” “조병규는 이거 보며 무슨 생각 했을까?” 등의 글을 올리며 ‘학폭’ 연예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제 ‘학폭’은 소위 ‘큰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족쇄처럼 작용할 것이다.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일수록 더욱 그렇다. 학폭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피해자에게는 현재이며 미래까지 이어지는 상처다.

<더 글로리>는 드라마 픽션을 넘어 현실까지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 다소 자극적인 방법이었더라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할 곳에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쯤이면 됐겠지’ 생각하며 주섬주섬 컴백을 준비하던 ‘학폭’ 가해자들은 발걸음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향한 차가운 눈빛이 아프게 느껴지더라도 피해자가 느꼈을 아픔보다 덜 할 것이다. 그들이 느낀 폭력은 찰나가 아닌 영겁의 공통이라는 걸 깨닫고 거듭 반성해야 한다. 더불어 학폭 의혹 연예인을 기용하는 제작사 또한 작품 속 동은을 외면하던 선생, 어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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