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정이’, 故 강수연 [인터뷰]

넷플릭스 ‘정이’ 연상호 감독 인터뷰 故 강수연을 향한 그리움, “정이=강수연” “예술가의 재능 없지만, 지금에 만족”

사진=넷플릭스

연상호 감독의 <정이>는 故 강수연이다. 완성된 영화는 마치 강수연의 이야기를 닮았다. 그에게 <정이>는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특별한 운명’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정이>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감현주 분)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사이버 펑크 장르 특유의 디스토피아와 최첨단의 기술이 공존하는 세계관을 한국적인 이름 ‘정이’로 표현한 연 감독은 “영화를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흔히 우리가 ‘신파’라고 말하는 한국의 고전적 멜로와 SF가 결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SF 속에 숨겨진 ‘엄마와 딸’의 이야기. 딸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 정이와 그런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딸 서현(강수연 분)의 관계는 이질감과 함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다. 그러나 모든 건 연 감독의 계획이었다. SF 장르에 낯선 한국 관객을 위해 보편적 주제를 심어 놓은 것.

아이콘으로만 존재했던 영웅 ‘정이’를 모든 것에서 해방시키고, ‘전투 기능이 극대화된 A.I.가 한 인간의 기억까지 복제해 갖게 된다면?’이라는 질문으로 ‘인간성이 과연 인간만의 것인지?’ 묻는다. 결국 연 감독이 펼쳐놓은 상상력은 현실과 맞닿는다.

사람 냄새가 나는 SF <정이> 탄생의 가장 큰 동력은 배우 강수연이었다. 연 감독은 <정이> 대본을 쓸 때만 해도 당장 영화화를 고려하지 않았지만, 서현 역이 강수연이라면 가능할 거라 판단하고 넷플릭스에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강수연의 고전적이고 우아한 톤 연기가 연상호표 ‘고전적 멜로’와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캐릭터 간의 감정을 많이 다루는 게 멜로 감수성이라 생각한다. 딸 서현과 지옥에 갇힌 엄마 정이의 관계가 감정을 불러오기 좋은 관계라 생각했다. 그 감정이 영화의 출발이다. 정이가 지옥에 갇힌 건 ‘모성’이라는 사랑의 마음이었다. 그게 곧 멜로 감정이라 봤고, 단순히 슬픔 외에 여러 결을 품을 수 있는 감정이다”라고 자신만의 ‘멜로’를 정의했다.

사진=넷플릭스

연상호 감독은 지난 5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강수연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멋진 세트를 더 노출하기 위해 메이킹 인터뷰 등을 모두 촬영 중 진행하면서 후기 녹음이 강수연과의 마지막 작업이 됐다. 팬데믹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조촐한 모임도 갖지 못한 것이 아쉬워 “추진해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연 감독은 작품을 완성하고 간 강수연을 떠올리며 “평소 주변에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선배의 성격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 중 서현이 로봇 정이에게 하는 ‘자유롭게 살아요’라는 대사도 공교롭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4살 어린 나이에 데뷔한 강수연은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고, 이를 아쉬워했다. 연 감독은 서현의 대사가 꼭 강수연 본인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남은 여성들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강수연은 현장에서 의지가 되는 선배이자 좋은 동료였다. SF 촬영 현장이 낯설 만도 한데 ‘어른’으로서 현장을 잘 지탱하며 후배들에게 든든한 존재가 됐다. 연 감독뿐만 아니라 함께 연기한 김현주와 류경수 또한 <정이> 제작발표회에서 눈물을 보이며 그리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영화 <부산행>과 <반도>로 ‘한국형 좀비 장르물’의 이정표를 세운 연 감독은 초자연적인 현상과 사후 세계에 대한 인간의 공포와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 합해진 넷플릭스 <지옥>으로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을 확장했다.

감독이자 각본가,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쉬지 않고 작업에 열중한 그는 “주변 사람과 소통하며 작업하고, 창작물을 만들어가는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라며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연 감독은 “대중과 완벽하게 호흡하는 건 예술가로서 거의 축복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 재능을 바라지만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지금까지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이상을 원한다면 욕심인 것 같다. 지금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편, 故 강수연의 유작이 된 영화 <정이>는 오늘(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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