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스타] 별처럼 빛나다, 故 강수연
클리셰의 연속, 가학적 신파.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 쏟아지는 혹평이다. 하지만 그 무수한 혹평에도 개의치 않고 떨리는 마음으로 <정이>를 재생하게 하는 힘, 단연 강수연의 힘이다. 자칫 단편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캐릭터는 강수연을 만나 생명력과 설득력을 얻었다.
종말이 닥친 22세기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정이>에서 강수연은 A.I.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 팀장 ‘서현’으로 분해 내전을 끝내기 위한 프로젝트를 이끈다. 극 중 서현이 이끄는 프로젝트는 자신의 어머니이자 영웅으로 추앙받던 ‘정이'(김현주 분) 뇌를 복제하는 것. 끝없는 복제와 계속되는 실험에도 연구에 성과가 없자, 임무를 맡긴 회사는 ‘정이’를 두고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강수연은 회사의 배신을 알고 어머니이자 자신의 연구 대상이었던 ‘정이’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서현을 섬세한 감정선과 특유의 애절함으로 실감 나게 그려냈다. “SF를 가장한 신파극”이라는 혹평도 있지만, 그 강렬한 신파를 완성한 강수연의 연기는 장르의 정체성을 위협할 정도로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25일 현재 <정이>는 [오늘의 OTT 통합 랭킹] 1위 자리에 오르며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은 흔하디흔한 수식어가 되어버린 ‘월드 스타’. 하지만 1980년대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생활화로 당연해진 ‘전 세계 동시 공개’는 꿈도 못 꾸던 그 시절,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해외의 주목을 받을 기회는 국제 영화제가 전부였다. 강수연은 갓 스무 살을 넘겼던 이때, 영화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고 이어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다시 한번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으며 월드 스타로 거듭났다.
그렇다고 해서 강수연이 혜성과 같이 등장한 반짝스타는 아니다. 1969년 네 살의 어린 나이로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TV 브라운관과 극장 스크린을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했고, 남자 배우들로 가득 찬 영화계에서 차분히 연기 경력을 늘리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유독 시대에 희생된 여성상을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던 강수연은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연기한 ‘옥녀’는 명문가에 씨받이로 들어갔다가 주인집 아들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아들 출산 후 쫓겨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인물. 이 작품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강수연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 영화 <연산군>에서 임금의 총애를 발판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는 기생 출신 여인으로, 다시 다음 해에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통해 불계와 속세를 오가며 험난한 삶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로 변신했다.
그녀에게 연기는 아름답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로 녹아드는 것을 의미했다. <씨받이>의 옥녀가 그려낸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인생이 그러했고, <연산군>의 장녹수가 보여준 야망이 그러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도 삭발을 감행하는 것은 물론, 몇 달 동안 촬영지인 지방의 사찰 근처를 떠나지 않으며 한 작품에 몰두하는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에서는 특별출연임에도 불구하고 대체 불가 존재감을 과시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임권택 감독과 함께한 두 작품을 통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강수연은 해외 진출보다는 국내 영화계의 발전에 힘썼다. 먼저 여자 배우들의 처우 개선에 나섰다. 1990년대 이전까지 남자 배우들과 여자 배우들의 출연료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기 때문. 강수연이 영화 <그대안의 블루>로 2억원의 출연료를 받으며 이후 여자 배우들의 억대 출연료 시대가 열렸다. 이후 1년 6개월에 걸친 대하드라마 <여인천하>를 통해 말 그대로 방송계 ‘여인천하’를 일궈냈다.
영화계 전체를 위한 움직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0년에는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부단장을 맡아 각종 집회와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목소리를 냈다. 광고나 행사 등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였지만, 한국 영화와 후배 영화인들을 위한 자리에는 누구보다 앞장섰던 것.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1996년부터 사회자 또는 집행위원으로 해마다 참석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며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한국 영화에 대한 무한 애정을 바탕으로 리더십과 추진력까지 장착한 그는 “배우 활동만 했던 것에 비해 행정 전반에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호평을 들었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소통이 잘 되지 않고 지나치게 독단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을 내놨다. 강수연은 비판의 목소리에 반박하기보다는 겸허히 받아들였다. 당시 그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그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현재 준비 중인 올해 영화제만큼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게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그래야 우리 영화제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라며 쓸쓸한 퇴장을 맞았다.
이후 강수연은 두문불출했다. 2019년에는 2016년에 이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전해지며 화제가 되긴 했지만, 국내 공식 활동은 여전히 전무했다. 이후 2021년 연상호 감독의 신작에 출연 소식이 전해지며 눈길을 끌었고, 연 감독 특유의 상상력이 강수연이라는 배우를 통해 어떤 캐릭터를 빚어낼지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지난해 5월 팬들이 접한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가족들에 의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강수연은 모두의 간절한 희망을 뒤로한 채 향년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결식은 그가 한국 영화계에 남긴 소중한 추억과 유산을 기리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졌다.
넷플릭스는 강수연을 ‘한국 영화계의 개척자였던 빛나는 배우’라고 칭하며 애도를 표했고, 연상호 감독 역시 “한국 영화 그 자체였던 분, 선배님과 함께한 지난 1년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편히 쉬시길”이라며 애통함을 드러냈다. <정이>에서 함께한 배우 김현주 역시 “강수연 선배님과 벽을 사이에 두고 대사를 주고받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감히 선배님을 ‘어떤 배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진짜 영화배우’라는 표현이 가장 좋을 것 같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50년이 넘는 연기 인생에서 강수연은 늘 자신이 빛나기보다 작품을 빛내기 위해 애썼다. 그의 마지막 노력은 <정이>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한국 영화계를 비추고 있다. 전 세계 영화 팬들이 보내는 이 힘찬 박수가 별이 된 그녀에게 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