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하는 작품마다 ‘인생캐’ 경신, 천우희 [인터뷰]

“대형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었는데, 전 세계에서 쉽고 빨리 한국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게 훨씬 큰 매력이라고 느꼈죠.” 배우 천우희가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 글로벌 영화 팬들을 만난 소감을 밝혔다.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평범한 회사원이 자신의 모든 개인 정보가 담긴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후 일상을 위협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천우희는 이번 영화에서 평범한 회사원이자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 ‘나미’로 변신해 또 한 번 ‘인생 캐릭터’를 새로 썼다.

천우희는 이번 영화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은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이야기지 않나. 영화에서처럼 극한의 불안감까지는 아니어도, 민감한 정보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상상은 다들 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핸드폰과 나를 동일화해서 생각하기도 한다. 원작을 각색하면서 한국 정서가 많이 녹아들긴 했지만, 폭넓은 공감대를 가진 소재인 만큼 전 세계 시청자들의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뜨거웠다. 천우희는 “극 중 나미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을 때는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나미’라고 쓰여있었다. 그 평범한 인물이 가해자의 타깃이 되는데, 그걸 해결해 나가는 방식에 끌렸다. 누가 자신을 위협하는지도 몰랐던 평범한 사람이 어느 순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기 위해 애쓴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입체적인 캐릭터 나미를 초반에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생활 연기로, 후반에는 극적인 감정 연기로 생생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몰입을 도왔다.

천우희가 캐릭터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던 데는 작품의 연출을 맡은 김태준 감독의 공이 컸다. 실제 김 감독은 영화 제작보고회 당시 “시나리오를 쓸 때 주인공 캐릭터 잡기가 어려웠다. 그때 천우희 씨의 유튜브에서 일상 브이로그를 봤는데, 거기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당연히 천우희 씨가 나미 역을 해줬으면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천우희는 “감독님이 내 덕질을 했나 싶었다. 실제 내 성격이 나미와 비슷한 점이 많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면이 강한 편인데, 그래서 캐릭터와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이전에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생활 연기를 선보인 적이 있는데 이번 영화로 오랜만에 다시 생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는데 보는 분들도 편안하게 받아들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천우희가 최근 출연한 작품들이 영화 <앵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처럼 강렬한 작품이었던 데다 이번 작품 역시 스릴러 영화라는 소식이 전해진 만큼 팬들 사이에서는 이번 작품에서도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소화할 것이라는 추측이 대부분이었다. 팬들의 반응을 알고 있었기에 캐릭터 분석도 쉽지는 않았다고. 그는 “물론 팬들이 어떤 캐릭터를 예상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미라는 캐릭터에 놀라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잘 보면 나미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굉장히 강단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힘 조절에 많이 공을 들였다. 영화가 공개되고 반응을 보니 ‘천우희는 뭘 해도 세서 다 이길 수 있겠는데?’라는 말이 많아서 재밌었다”고 털어놨다.

처음 함께 출연한 임시완과의 호흡은 어땠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천우희는 “임시완 씨는 현장에서도 가만히 있을 때가 거의 없을 정도로 계속 돌아다니며 확인하는 노력파였다. 실제 성격도 굉장히 스마트한 사람이라 평소 성격이 캐릭터에 잘 묻어난 느낌이었다. 영화 속 준영이라는 인물이 빌런인데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그려진 건 시완 씨 덕이라고 생각한다”며 동료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너무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정말 독특한 포인트가 있다. 평소에도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자체인 것 같더라. 그래서 농담처럼 본인에게 그 얘길 하기도 했다”며 친분을 과시했다. 천우희 역시 처음 대중에 이름을 알린 영화 <써니>를 통해 ‘맑눈광’ 애칭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그는 “저의 맑눈광은 아픔이 있는 광인이었고 나쁜 의도가 있지 않았다”며 임시완이 그려낸 맑눈광 빌런과 철저히 구분 짓는 모습으로 웃음을 안겼다.

하지만 천우희 역시 촬영 중에는 무서울 정도로 몰입해 대선배 김희원도 조심스러워한다고. 같은 날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희원은 “우희 씨도, 시완 씨도 현장에서 ‘예민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한다. 그래서 연기할 때는 내가 말도 잘 안 건다. 특히 화를 내거나 하는 감정적인 씬을 앞두고는 대화를 줄인다”며 후배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드러냈다.

영화 속에서 모든 비극의 발단이 된 스마트폰 분실을 실제 경험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천우희는 “잃어버릴 ‘뻔’한 적은 있는데 실제로 잃어버리진 않았다. 조금 덜렁거리는 성격이라 화장실에 두고 나온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스태프분들이 잘 찾아주셨다”며 웃었다. 그는 “주로 핸드폰은 메신저 이용이 제일 많이 차지하는 것 같다. 요새는 ‘오늘의 명언’ 이런 거 보내주는 동기부여 애플리케이션을 많이 보는데, 너무 신기할 정도로 알고리즘에 내가 찾는 정보들이 알아서 뜨더라. 딱 한 번 검색한 게 연관된 광고로 이어져서 놀랐다”고 말했다.

쉬지 않고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이는 천우희가 동기부여 어플을 보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요즘 체력도 떨어지고 그래서 마음까지 지친 것 같다. 그동안 정신력 하나로 버텼는데, 요즘은 안 먹히더라. 서른네 살이 넘어가며 ‘훅!’ 오더라. 작년에 집에서 무심코 거울을 봤는데 내 모습이 어색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엄마 나 예전 같지 않지?’ 물었다. 그런데 엄마가 ‘집에서 쉬니까 그렇다’고 단숨에 인정하더라. 요즘엔 좋은 거 하나라도 더 챙겨먹으려고 애쓰고 있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영화는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연일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7일 공개와 동시에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로 직행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한국을 비롯해 대만, 싱가포르, 홍콩, 브라질 등 총 34개국에서 TOP 10에 들며 흥행 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천우희 역시 이런 글로벌 흥행을 체감하고 있다고. 그는 “아무래도 SNS 팔로워가 나날이 늘어 가는 게 눈에 보이니까 체감이 된다. 영화를 극장 대형 스크린으로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었는데, 이렇게 전 세계 영화 팬들이 쉽고 빨리 한국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훨씬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며 글로벌 OTT의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배우로서 하나의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을 늘 경계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강박을 가져도 대중은 처음 접한 나의 모습을 이미지로 각인한다는 것을 알고 조금은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저 ‘지금’에 집중하며 맡은 연기를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억지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거나 특정한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은 내려놨다”며 연기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천우희는 차기작인 드라마 <이로운 사기>에서 또 한 번 새로운 캐릭터를 입는다. 촬영이 한창인 이 드라마에서 그는 공감 능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기꾼 ‘이로움’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극 중 로움은 뛰어난 두뇌의 천재적 인물이지만, 내면에 깊은 상처를 품은 입체적인 인물. 천우희가 그려낼 새로운 인물 이로움을 만날 날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