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션] 참담한 현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넷플 ‘나는 신이다’
다큐 ‘나는 신이다’ 6일 넷플 차트 1위 ‘피해자 배려 부족’에 대한 열띤 토론 불러와 주제 확대-다양한 전달 방식, 시사·다큐 인기 견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공개와 동시에 광풍을 몰고 왔다. 작품의 소재가 된 사이비 종교에 대한 강한 반감은 물론,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제작진을 향한 비판이 쏟아지면서다.
지난 3일 공개된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은 스스로를 예언자라고 천명한 네 명의 메시아와 그들의 추악한 단면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작품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만민교회 등 충격적인 사이비 종교를 집중 조명하며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다큐멘터리라는 상대적 비인기 장르인 이 작품이 공개 전부터 뜨거운 화제를 모은 데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소식에 ‘발끈’한 JMS 측의 반응이 한몫을 했다. 그들은 “현재 재판 중인 사안을 다큐멘터리에 담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며, 종교의 자유를 해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MS 측의 날 선 반응 뒤에는 이 끔찍한 이야기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는 데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있었다. 법원은 “해당 작품은 다수의 자료를 수집해 교차 검증을 거치는 등 거짓이라고 볼 수 없으며, 공공의 이익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로 넷플릭스의 손을 들어줬다.
공개 직후 시청자들은 JMS 측이 그토록 이 이야기를 덮고자 했던 이유는 물론, 넷플릭스가 법원의 판결도 나오기 전부터 “일정대로 작품을 공개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인 이유를 모두 알게 됐다. 차마 글로 옮길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내용의 녹취와 피해자의 눈물로 시작한 이야기가 갈수록 수위를 높이며 정명석 JMS 총재의 만행을 낱낱이 드러내면서다. 그의 만행은 중간중간 ‘일시 정지’나 ‘건너뛰기’를 누르게 할 만큼 끔찍하다.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나선 피해자들의 용기에 많은 시청자가 함께 분노했으며, 이례적으로 검찰총장까지 나서 해당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6일 이원석 검찰총장은 정명석의 공판 진행 상황을 보고받은 후 “피해자들에 대한 세심한 지원과 보호는 물론, 피고인에게는 범행에 상응하는 엄정한 형벌이 집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말했다.
물론 검찰총장의 한마디가 재판의 향방이나 형의 경중을 좌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콘텐츠가 단순히 ‘시청’이라는 소비 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져 거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종국에는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서 의미를 가진다.
작품은 JMS 외에도 오대양,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등 종교와 신의 이름을 빌려 신도들의 성(性)과 재산을 강탈하고 인생을 짓밟은 이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범죄를 다룬 대다수의 다큐멘터리가 그랬듯, <나는 신이다> 역시 시청자가 원하는 ‘권선징악’의 결말은 만날 수 없다. 32명 집단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말을 맞은 오대양 사건을 제외하면 여전히 그들의 악행은 계속되고 있다. 정명석 JMS 총재와 이재록 만민중앙교회 교주는 법의 심판을 받으면서도 무죄를 주장 중이며, 김기순 아가동산 교주는 대형 음반사를 통한 막대한 수익으로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콘텐츠를 통한 사회적 경각심과 다양한 논의가 지금에 그쳐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다.
연출을 맡은 조성현 PD는 이번 작품을 공개하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그는 JMS 탈퇴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카메라 앞에서 ‘내부자’로서 말을 해 준 분들의 책임감 덕분에 JMS는 끝을 바라보고 있다. 이분들이 바로 바위를 깬 계란”이라고 말하며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이들에 대한 각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침묵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외면하면 10년 후에도 똑같은 삶이 될 거다. 많은 사람이 소송에 동참하고 있다”며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극복하기 위한 방안 모색에 함께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렇게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작품임에도 <나는 신이다>에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는다. 지상파를 떠나 OTT라는 무대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은 <나는 신이다>는 성추행 및 성폭행 묘사 장면에서 모자이크를 걷어낸 것은 물론 지상파 방송이었다면 ‘삐-‘처리되었을 비속어까지 그대로 전달한다. 이 때문에 사건의 끔찍함과 역겨움은 더 생생히 전달된다. 하지만 용기를 내 카메라 앞에 선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에는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다.
작품은 피해자 인터뷰를 비롯한 상황 재현에 집중하며 범죄자의 악행을 강조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부 장면은 “성인비디오인 줄 알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적나라하다. 이미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지만,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이 우려되어 떨리는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카메라 앞에 선 피해자들은 다큐멘터리가 재연하는 트라우마를, 과거의 무력했던 자신을 다시 한번 마주해야 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런 적나라함이 없었다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을 테니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옹호론도 나온다.
사건이나 현상의 철저한 고발이라는 다큐멘터리의 본분과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하나의 상품으로서 추구해야 할 경제적 가치. <나는 신이다>는 그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콘텐츠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더불어 최근에는 각종 시사 프로그램의 ‘범죄 전시’가 유사 범죄의 발생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며 프로그램을 둘러싼 치열한 논의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공개 3일 차를 맞이한 <나는 신이다>는 오늘 [데일리 OTT 랭킹] 넷플릭스 1위에 올라서며 뜨거운 화제성을 입증하고 있다. 같은 날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 역시 웨이브 차트 8위에 오르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넷플릭스 7위를 기록한 E채널 <용감한 형사들>, 각각 웨이브 차트 7위와 10위에 오른 SBS <그것이 알고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역시 지상파 본방송 후 꾸준히 OTT 차트를 지키고 있다.
뉴스로 대표되며 ‘전달’ 기능에 집중했던 과거의 시사 프로그램은 다양해진 시청자들의 취향에 맞춰 새로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과는 달리 ‘웃음’과는 거리가 멀고 주로 학술적인 면을 다루기에 특정 마니아층에서만 소비되던 옛날과 달리 그 주제의 폭과 표현 방식을 달리하며 다양한 시청자를 공략하고 있는 것.
<그것이 알고싶다>는 최근 방송에서 ‘학교 폭력’에 대한 과거 사건을 재조명하는 등 대중의 공분을 사는 사회적 이슈의 구체적인 사례를 시의성 있게 다루며 눈길을 끌었다.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익숙한 배우와 코미디언이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스토리 텔링의 형식으로 딱딱한 주제를 쉽게 풀어내 꾸준히 화제를 모으고 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에서 다룬 오대양 사건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한 차례 다뤄진 바 있다.
각종 범죄의 피해자들이 숨지 않고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 증언할 수 있게 바뀐 사회적 분위기도 다큐·시사 프로그램의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들이 털어놓는 피해 사례는 나 역시 범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깨우며 다소 무거운 주제에도 눈과 귀를 기울이게 한다. 사건에 대한 심층 취재와 고찰만큼이나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시청자들이 그만큼 피해자의 입장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속 시원한 결말은커녕 암울한 현실을 되짚는 작품들이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다. 이런 관심이 있었기에 시간에 밀려 잊힐 뻔한 끔찍한 범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하고, 그 전달 방식에 대한 열띤 토론 덕분에 피해자는 숨을 사람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존재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들이 전하는 무거운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