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 정경호 “이렇게 하찮아도 될까? 생각했다” [인터뷰]
‘일타 스캔들’ 정경호 종영 인터뷰 수학 일타 강사 최치열 완벽 소화 “병약미 남주 캐릭터, 조금 걱정도”
현실에 이런 선생님이 있다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절반은 줄어들지 않을까?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중하다. 배우 정경호가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완성한 수학 일타강사 ‘최치열’이다.
<일타 스캔들>은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등 스타 강사와 반찬가게 사장의 달콤 쌉싸름한 스캔들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드라마는 두 주인공의 결혼으로 꽉 닫힌 해피엔딩을 맞은 마지막 회에서 무려 17.0%의 눈부신 TV 시청률로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방영 내내 공개 중인 OTT 플랫폼 넷플릭스와 티빙 차트의 최상단을 굳건히 지킨 것은 물론이다.
모두의 박수 속에 막을 내렸지만, 처음부터 작품이 주목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 1월 첫 방송만 해도 4.0%의 시청률로 ‘다소 미지근한’ 출발을 알린 것. TV와 OTT를 통해 쏟아지는 신작들과 해외 방영작까지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콘텐츠 소비 환경을 떠올리면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는 MZ 세대에게 익숙한 직업인 ‘일타 강사’와 40대 이상 시청자들에게 솔깃한 주제인 사교육을 등장시켜 시청자들의 이목 끌기에 나섰다. 아무리 솔깃한 주제와 매력적인 캐릭터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겉돌기 마련이지만, 정경호는 일타 강사 최치열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극 중 치열은 넘치는 돈과 유명세에 점점 예민하고 까칠하게 변해버린 인물이다. 불규칙한 식사와 만성 스트레스는 섭식장애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정경호는 이번 작품에서 유난히 밀쳐지고, 쓰러지고, 때론 가볍게 들어 올려지며 이른바 ‘병약미’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정경호는 “‘일타 강사’라는 직업이 생소했다. 조금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 제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하찮은 몸짓을 추가하면 친숙할 것 같아서 대본에 충실하되, 저의 실제 모습도 많이 살렸다. 1~4부 후시 녹음에서 유난히 넘어지는 호흡이 많아서 그때야 ‘이렇게 하찮아도 괜찮을까?’ 생각이 들더라”며 웃었다.
그의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극 중 치열은 종이인형처럼 팔랑거리는 몸짓으로 여주인공 행선(전도연 분)은 물론 시청자들의 보호본능까지 자극하며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병약미 뿜뿜 남주’ 캐릭터를 완성했다. 정경호 역시 “살아 있는 캐릭터들이 이야기에 잘 드러나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병약미로 인간적인 모습을 살리는 동시에 수학 일타 강사라는 직업을 연기위한 노력도 빼놓지 않았다고. 그는 “역할을 익히기 위해서 실제 일타 강사분들의 강의도 보기도 했고, 안가람 선생님의 실제 도움도 받았다. 이해하는 건 무리가 있으니 강의 장면에 나오는 공식 같은 것들을 다 외웠다. 제일 힘들고 어려웠던 건 판서였다. 집에 칠판을 사두고 선생님을 초대해 술도 한 잔 하면서 문제 풀이와 베끼는 과정을 반복했다”며 피나는 노력에 대해 털어놨다.
처음 함께 호흡을 맞춘 전도연에 대한 소감에 대해서는 “정말 좋았다. 함께 작품을 하면서 느낀 점은 선배님이 거짓 없는 분이라는 거다. 그 정도 자리에 오르면 편하게 연기할 법도 한데, 늘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고 설레하신다. 우리가 연기를 하면 캐릭터에 대해 조금씩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선배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행선’ 그 자체였다. 나도 현장에 최소 30분은 빨리 도착해 스태프들과 인사도 나누고 농담도 건네는 편인데, 선배님은 늘 나보다 일찍 도착해서 현장을 즐기고 계셨다. 대본을 들고 있지 않아도 완벽하게 대사를 구사하는 점도 놀라웠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정경호는 연인 최수영과 어느것 11년 째 연애를 이어 오며 연예계 대표 장수 커플로 꼽힌다. 가수로 데뷔해 어느덧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수영이기에 연인 정경호의 이번 작품에 대한 반응 역시 남달랐을 터. 정경호는 “재밌게 봤다더라. 나에 대해 잘 알아서 그런지, ‘오빠답네’라고 하더라. 물론 실제로 치열이처럼 달달한 사랑꾼은 아니지만. 여자친구와 일 얘기를 잘 안 하는 편이다. 물론 상대방의 작품은 다 보지만, 구체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 편인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답변으로 연인을 배려했다.
아버지 정을영 PD 역시 아들의 연기에는 냉철한 평가를 내놓지 않는 편이라고. 정경호는 “가족일수록 일 이야기는 많이 안하는 것 같다. 그냥 맛있는 거 사주시면서 ‘열심히 하라’고 하는 정도다. <일타 스캔들> 연출한 유제원 감독님이랑 같이 일하신 적도 있고 해서 잘 챙겨보신 것 같다”고 말했다.
정경호는 “1월 중순에 우리 드라마가 시작했는데, 찍으면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시청자분들한테 따뜻한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감사하게 많은 사랑을 받아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며 <일타 스캔들>을 기억했다. 그의 가뿐한 종영 소감에도 드라마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오늘(6일) [데일리 OTT 랭킹] 티빙 1위, 넷플릭스 2위로 뜨거운 흥행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 특히 넷플릭스에서는 2월 마지막주 집계된 글로벌 TOP 차트에서 비영어 시리즈 부문 4위를 지키며 전 세계 시청자의 사랑까지 누리고 있다. TV 종영 후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이야기를 몰아서 보는 시청자가 많은 OTT의 특성상 작품의 흥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차기작인 영화 <보스>의 크랭크인을 앞둔 정경호는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로 “일단 이번 영화 끝내고 쉼표를 가지고 싶은데, 대본이 들어온다면 벌크업 캐릭터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며 크게 웃었다. 이어 “4월 말부터 휴식이 예정돼 있는데, 많이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할 생각이다. 사실 쉬지 않고 작품을 했던 것 같은데, 먼저 내가 단단하고 내면에 가진 게 많아야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며 연기에 대한 철학을 드러냈다.
그의 말처럼 쉬지 않고 달려오는 사이 정경호는 어느덧 21년 차 베테랑 배우가 됐다.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던 20대를 ‘제멋에 취해 연기했던 때’라고 회상한 그는 “군대 다녀오고 30대부터 조금 책임감을 가지고 연기를 한 것 같다. 마흔이 되어서는 ‘기대되는 배우, 기대되는 사람’으로 기억이 되고 싶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말이다”라며 겸손한 바람을 전했다. 앞으로의 20년 역시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빛날 그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