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션] 배우들의 열연만이 영광으로 남았다, ‘더 글로리’

10일 넷플릭스 ‘더 글로리’ 파트2 공개 공감 부족 작가-학폭 과거 감독, 치명적 리스크 “피해자는 아무런 잘못 없어” 진정성에 의문

사진=넷플릭스

안팎으로 혼란하다. 안으로는 진짜 악인이 누구인지 모호해졌으며, 밖으로는 이 잔혹한 복수극을 전 세계인이 주목할 수밖에 없게 빚어낸 작가와 감독의 진정성에 의문이 따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 이야기다.

<더 글로리>는 학창 시절 당한 폭력으로 영혼까지 망가진 동은(송혜교 분)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멜로 퀸 송혜교의 연기 변신으로 기대를 모은 이 작품은 지난해 12월 파트1을 공개하며 단숨에 전 세계 시청자의 이목을 끌었고, 이후 5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비영어 드라마 10위권을 지키며 열풍을 이었다. 파트2 공개 5일 차인 오늘(14일) 작품은 [오늘의 OTT 통합 랭킹] 최상위를 지키며 다시 한번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넷플릭스는 파트2를 향한 뜨거운 성원에 이례적으로 팬 시사와 GV(영화·드라마 공개 전후 감독 및 배우들이 관객들을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관객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무대)를 기획하며 화답했다. 이 자리에서 김은숙 작가는 “우리 딸이 학폭 피해자가 된다고 하면, 나에게는 가해자들을 지옥 끝까지 몰아붙일 돈이 있다. 그래서 차라리 맞고 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의 피해자들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지 않나. 돈 있는 부모, 세심한 가정 환경을 만나지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분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현실이 암울하니까 드라마 속 복수는 최대한 성공하는 쪽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간과했다. 그는 ‘피해자는 어떠할 것’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스스로 이야기꾼으로서의 공감대 역시 그 안에 가두고 말았다. 누구는 가난해서, 반대로 누구는 돈이 많아서, 누구는 예뻐서, 누구는 키가 작아서. 그것도 아니면 너무 커서. 끔찍한 괴롭힘과 폭력의 이유에 끝이 없는 것처럼 그 부당한 폭력을 받아들이는 피해자와 가족들 역시 모두 다르다. 내 곁을 든든히 지키는 가족이 있어도 한 인생을 망치는 것이 학폭이라는 점을 김 작가는 알지 못했던 것일까?

사진=넷플릭스

창작자의 공감 부족에서 탄생한 주인공의 엄마는 딸의 아픔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극심한 알콜중독자인 동은의 엄마 미희(박지아 분)는 딸의 인생을 망친 가해자와 손을 잡는다. 이유는 단순히 돈이다. 미희의 욕심은 동은이 불명예스럽게 직장을 떠나게 만들고, 불을 두려워하는 트라우마를 이용해 목숨까지 위협한다. 그런 엄마를 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동은의 모습은 복수보다는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심한 알콜중독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가족의 의무에 가까운 이성적 행동일 뿐이다. 반면 그런 딸에게 쏟아지는 엄마의 욕설은 “너 같은 애들은 가족이 가장 큰 가해자”라는 연진(임지연 분)의 말에 힘을 실어주고 만다.

다른 피해자인 소희(이소이 분)의 가족 역시 몸이 불편한 홀어머니로 그려졌다. 다행히도 소희의 엄마는 동은의 엄마와 달리 딸의 죽음에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며 딸을 향한 애정과 그리움을 나타내지만, 그가 가진 신체장애와 불우한 환경은 가해자들과 맞서 싸우기에 다소 무력하게 비쳐진다.

드라마를 통해 “피해자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김 작가. 하지만 그는 피해자들의 가족을 가해자에 버금가는 악인 또는 무력한 존재로 그려내며 피해자의 불행이 가족의 방관 또는 무능력에 의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나에게는 가해자들을 지옥에 보낼 돈이 있지만, 현실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아니지 않나”는 발언은 학폭을 경험한 이들에게도, 그들의 가족에게도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사진=넷플릭스

드라마는 파트2를 공개한 지난 10일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안길호 감독의 학폭 논란이 불거진 것. 27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안 감독을 비롯한 가해자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이 주장은 “기억 없다”는 안 감독의 말과 드라마가 그려낸 속 시원한 복수 덕에 묻히는 것 같았다. 이틀 뒤 안 감독은 법률 대리인을 앞세워 “상처받은 피해자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으로 학폭 사실을 인정했지만, 드라마는 다시 한번 뜨겁게 흥행을 시작한 후였다.

<더 글로리>는 파트1에서 그려내지 못했던 가해자 무리의 처참한 최후를 파트2에 유감없이 쏟아냈다. 명오(김건우 분)는 두 명의 가해자로부터 당한 공격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명오의 죽음에 연루된 연진은 법의 심판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처참히 외면당하는 것은 덤이다. 재준(박성훈 분)은 눈을 잃은 것도 모자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마약에 찌든 사라(김히어라 분)는 자기 손으로 친구 혜정(차주영 분)을 공격한다. 결론은 파국이다.

영광을 빼앗긴 건 극 중 가해자 무리뿐이 아니다. 드라마 공개와 동시에 제기된 감독의 학폭 논란은 ‘학폭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큰 상처이며, 피해자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작품의 메시지를 크게 훼손했다. 더불어 재력을 운운하며 자신과 피해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은 작가의 실언 역시 작품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드라마가 그려낸 처절한 복수 끝에 주인공이 마주한 것이 허무뿐이라는 점은 속 시원한 장르물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 대신 ‘무언가 얹힌 듯한 답답함’을 선사하며 장르의 정체성까지 위협했다. 파트1에서 한껏 부풀려놓은 기대감과 성공에 취한 제작진의 빠른 축배가 독이 된 셈이다. 끝까지 빛난 건 배우들의 열연뿐인 가운데, <더 글로리>가 파트1의 영광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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