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스타] ‘믿고 보는 배우’로는 부족하다, 김남길
티빙 ‘아일랜드’ 속 반인반요 ‘반’ 役 김남길 엇갈린 평가 불구, “김남길 열연 빛나”에는 이견 없어 연기→사회적 공헌 활동 ‘선한 영향력’ 실천
사극이면 사극, 코미디면 코미디, 판타지도 무리 없다. 대체 배우 김남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신비의 섬 제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액션 <아일랜드>에서 김남길은 반은 인간, 반은 요괴인 ‘반’으로 분해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에 맞서 싸우는 가혹한 운명을 섬세한 감정으로 그려냈다. 비록 작품은 원작 만화를 영상화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장르물적 매력을 잃었다는 일부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다소 아쉬운 각색을 배우들의 완벽한 비주얼 케미와 열연으로 만회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원작 만화 속 반이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색무취 그 자체였다면, 드라마 속 반은 강인함 속 깊은 상처와 후회를 품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캐릭터다. 김남길을 만나 재해석된 반은 수천 년 동안 많은 목숨을 빼앗은 살인마인데도 불구하고 처연한 표정, 절절한 눈빛 탓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공감과 이해를 얻기에 충분했다. 이번 작품으로 첫 판타지 액션에 도전한 김남길은 제작발표회 당시 “쉽지 않은 장르지만, 결국 판타지도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는 데서 똑같다고 생각했다”던 자신의 말을 또 한 번 입증했다.
17일 김남길은 소속사 자체 콘텐츠 ‘길크루 관찰일기’를 통해 “반으로 살면서 나름 열심히 했었던 것 같은데 <아일랜드>는 아쉬움과 서운함, 미안함이 남는 작품인 것 같다. 아마 보는 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지켜보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끝까지 우리 작품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에도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작품, 좋은 연기로 인사드리겠다”며 시원섭섭한 감정을 털어놨다. 원작 팬들 사이에서 각색에 대한 아쉬움과 반의 비중이 줄어든 데 아쉬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음에 대한 공감과 미안함이 묻어나는 종영 소감이다.
아쉬움이 남는다는 그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원작에서 다뤄지지 않은 캐릭터의 서사까지 직접 채워 넣은 김남길의 노력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로 전해졌다. <아일랜드>는 티빙과 동시에 글로벌 OTT 아마존 프라임비디오를 통해 해외 팬들을 만났으며, 모든 에피소드를 공개한 직후인 지난 12일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필리핀 등 4개국 1위를 비롯해 전 세계 26개국에서 TOP 10 차트에 들며 눈부신 유종의 미를 거뒀다.
1999년 KBS2 드라마 <학교>를 통해 데뷔한 김남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은 단연 2009년 방영된 MBC <선덕여왕>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함정에 빠져 연모했던 여인이자 여왕인 덕만(이요원 분)에게 반란을 꿈꾸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비담’을 선악이 공존하는 미묘한 인물로 그려내며 드라마의 대성공을 이끌었다. 장장 62부작에 달하는 대작인 만큼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한 사람은 많지 않지만, 신들린 연기력으로 완성한 극 중 비담의 죽음 장면만큼은 잊은 이가 없을 정도. 이전까지 단역과 조연을 오가며 10년 넘게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판 김남길은 이 작품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듬해 출연한 SBS <나쁜남자>에서는 복수를 위해 재벌가에 잠입한 ‘심건욱’역을 맡아 진짜 나쁜 남자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김남길이 곧 작품의 정체성이기도 했던 이 드라마는 당시 월드컵 결방과 조기종영이라는 변수를 맞이했다. 다소 아쉬운 드라마의 성적과는 별개로 김남길은 전작에서의 대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며 ‘믿고 보는 배우’의 수식어를 단단히 새겼다.
군 복무로 약 2년의 공백기를 가진 김남길은 전역 후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으로 연기 변신에 나섰다. 그동안 주로 무겁고 가슴 한켠에 상처를 간직한 비운의 주인공을 연기한 그였기에 팬들의 우려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남길은 이 작품에서 ‘송악산 미친 호랑이’로 불리는 산적 두목 ‘장사정’ 역을 맡아 능글맞지만 강단있는 캐릭터로 영화의 흥행을 이끌었다. <해적>은 대한민국 영화 사상 최대 관객 수를 기록한 <명량>과 같은 시기 개봉했음에도 860만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그의 영화 대표작이 됐다.
2019년 방영된 SBS <열혈사제>에서는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출신의 신부 ‘김해일’로 분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난폭한 사제를 탄생시키며 국내 시청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장르였던 블랙코미디의 붐을 일으켰다. 그해 SBS 연기대상은 단연 김남길의 차지였다.
늘 바삐 돌아가는 각종 영화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김남길은 때로는 무거운 분위기를 한껏 밝게 끌어올리기도, 지나치게 들뜬 산만함을 차분히 가라앉히기도 하며 카메라 안팎에서 작품의 중심을 잡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와 함께 연기한 배우들은 입을 모아 그를 “대상의 품격에 걸맞은 배우”라고 평가한다.
이후 김남길은 2021년부터 2022년에 걸쳐 방영된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로 다시 한번 연기 대상 트로피를 품에 안으며 동료들의 극찬이 괜한 것이 아님을 증명했고, 워낙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하는 탓에 우스갯소리로 돌던 ‘김남길 드라마 4년 주기설’을 깨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예능과 다큐멘터리 내레이션까지 영역을 넓힌 그를 향해 팬들은 “외모는 치정멜로, 생각은 교육방송, 행동은 어린이 만화, 목소리는 다큐멘터리”라는 애정어린 농담을 건넨다.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선한 영향력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김남길이다. 보여주기식 봉사활동이나 기부에 대해 부정적인 그였지만, 어쩔 수 없이 촬영팀과 함께한 해외 봉사활동이 기대보다 큰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지자 생각이 달라졌다고. 이후 그는 공익 활동과 문화 예술 콘텐츠를 창작하는 재능기부, 각종 봉사활동 및 기부를 통해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를 설립해 다양한 문화 예술 캠페인을 통해 사회 공헌 활동에 앞장서며 언행일치를 실천 중이다. 배우로서의 김남길만큼이나 인간 김남길의 행보에도 눈길이 가는 이유다.
빛나는 연기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된 김남길은 코미디와 예능에서 보여준 소탈한 매력으로 ‘믿고 즐기는 배우’, 다큐멘터리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며 ‘믿고 듣는 배우’까지 꿰찼다. 선한 영향력을 몸소 전파하며 ‘믿고 따르는 배우’에도 무리가 없으니, 이제 그에게 걸맞은 수식어는 ‘믿는 배우’로도 충분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