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 “봉준호에 비하면 내 작품은 불완전” [인터뷰]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재방한 인터뷰 ‘스즈메의 문단속’ 인기 “韓 팬들 감사” “후속작은 재해 아닌 다른 테마 도전”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지난 3월 내한 이후 한달 만이다.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 300만 관객 돌파시 다시 한국을 방문하겠다”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홍보를 목적으로 왔던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 한국 방문은 마치 친구 집에 놀러 오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5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스즈메의 문단속>은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소녀 스즈메가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는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지난 3월 8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약 한 달간 정상을 지켰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스즈메의 문단속>의 한국 흥행에 대해 “저도 신기하다. 이유를 아는 분이 있다면 좀 알려달라”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정치적 상황과 상관없이 2004년 이후 신작 공개 때마다 한국을 찾았고, 한국 관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왔다. 오랜 시간이 쌓여 이런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저항이 없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관객이 제 영화와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많이 봐주시는 건, 단순히 일본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다. 문화적인 장벽이 많이 없어졌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2002년 단편 영화 <벌의 목소리>로 데뷔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20년간 애니메이션 제작에 힘을 쏟았다.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는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합쳐 ‘재난 3부작’으로 불린다. ‘일본의 재난’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기란 쉽지 않다. 그는 “작품이 지닌 보편적 메시지가 통했다고 생각한다. 재해를 입고 상처를 회복해 가는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본다”면서도 “봉준호 감독 작품에 비하면 제 작품은 인물, 완성도가 많이 부족하다. 그런 작품을 사랑해 주는 한국 관객의 다정함 덕분”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많은 애니메이션이 만화 원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다양한 소재와 상상력 넘치는 세계관이 존재하지만, 실제 일어난 재난을 소재로 한 작품은 드물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12년 전 겪은 동일본 대지진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고 밝히며 “옛날이야기 같은 애니, 신화 같은 이야기로 방향성을 잡았다. 그림을 통해 다음 세대에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실제 재난을 애니로 만들며 그는 ‘직접적인 묘사’를 피했다. 쓰나미와 대지진 장면은 직접 그리지 않았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재난 사망자와의 재회 에피소드를 만들지 않았다. 극 중 지진경보나 지진 묘사 등이 누군가에게 상처나 충격을 안길 수 있기에 미리 공지하며 여러 안전장치도 준비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생각하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실제 배우가 없어도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해 그는 “내리막이 아닌 성장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일본 작품은 해외에도 널리 퍼져있다. 제 작품의 영향은 미미하지만, 만화잡지의 원작이 널리 퍼져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만화 산업은 잡지-영화사-국내외배급망 등이 잘 연결되어 있고, 10년이 넘게 노력해 왔다. 물론 여러 숙제가 남아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거의 본 적 없다”고 밝힌 그는 “일본에서 상영되는 한국 작품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부산행> <엑시트> 등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연출과 영상적인 면에서 뛰어났고, 각본도 강력했다. 이런 각본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히트작일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왜 한국에서는 글로벌 히트 애니메이션 제작이 이뤄지지 않을까 의문”이라고 솔직한 견해를 밝혔다.
‘인간 배우’에게 큰 흥미가 없다는 그는 “최근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노래는 아이브(IVE)의 ‘I AM(아이엠)’이다. 일주일 정도 매일 들었다. 멤버들 이름은 모르지만, 아름답고 파워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팬심을 드러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 감독으로 우뚝 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라이벌은 무엇일까. 그는 “애니메이션의 라이벌은 숏츠 동영상, 틱톡 같은 SNS다. 애니보다 전개가 빠르고 젊은 분들이 좋아한다”면서 “템포가 빠른 인터넷 콘텐츠에 지지 않을 정도로 정보량이 많은 애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이야기했다.
약 9년 동안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제작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다음 작품도 재해를 소재로 하면 관객들이 질릴 것 같다. 다른 테마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후속작에 대해 귀띔했다.
지난 20일까지 <스즈메의 문단속> 글로벌 누적 관객수는 3,000만명, 수익은 약 2,245억원이다. 한국에서는 올해 극장 개봉작 가운데 최다 관객 동원 및 역대 국내 개봉 일본 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세웠다. 기세에 힘입어 오는 5월 한국어 더빙판이 개봉한다. 주인공 스즈메의 목소리 연기는 장예나, 재난을 부르는 문을 닫기 위해 여행하는 청년 소타 역에는 정주원이 낙점됐다.
한편, 다시 한국을 찾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오는 29일까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한다. 서울, 부산, 제주 등에서 국내 관객을 만나고, 29일 방송되는 JTBC <뉴스룸>에도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