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새로운 글로벌 취향 되다

K-드라마, 장르 다양화로 글로벌 시청자 매료 과거 한류 중심은 로맨스, 이제는 장르물+시즌제 K-콘텐츠 게임체인저는 글로벌 OTT, 기대와 우려 사이

사진=웨이브, SBS, KBS

“기존 한류를 좋아하던 팬들은 로맨스 장르와 스타 캐스팅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제는 K-드라마 인지도 상승과 함께 다양한 장르물에 대한 소비가 늘고 있다.”

11일 글로벌 OTT 플랫폼 라쿠텐 비키(Rakuten Viki) 관계자는 한국 드라마를 소비하는 글로벌 시청자의 취향이 다변화·다양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미주와 유럽, 오세아니아 및 중동·인도 등에서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영웅 Class1>(이하 약한영웅)과 티빙 오리지널 <방과 후 전쟁활동>, KBS2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의 비(非) 로맨스 장르를 비롯해 SBS <모범택시>, SBS <낭만닥터 김사부> 등 시즌제에 대한 K-콘텐츠 소비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것.

비로맨스 장르인 <약한영웅>, <모범택시2>, <방과 후 전쟁활동>은 북미와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라쿠텐 비키 TOP10(시청 유저수 기준) 차트인에 성공했다. 시즌제 작품 <모범택시>,<낭만닥터 김사부>, 티빙 <유미의 세포들>, tvN <구미호뎐> 등은 새로운 시즌이 발표되는 시점에 맞춰 이전 시즌에 대한 관심이 함께 높아지며 순위 상승으로 이어졌다.

홍재희 라쿠텐 비키 콘텐츠 총괄 이사는 “시즌제 제작이 늘어난 K-드라마가 자체 타이틀 인지도와 팬덤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시즌 방영과 함께 이전 시즌이 소환되면서 시청 순위가 역주행하는 현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전 세계 시청자를 매료한 K-드라마의 매력은?

K-드라마의 글로벌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다. 16억 시간 이상의 누적 시청 시간 기록으로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TV(비영어) 쇼 부문 1위를 차지했고, 골든 글로브, 미국 배우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에미상 등 유수의 해외 시상식에서 배우, 연출, 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앞서 ‘한류’를 이끈 드라마 <겨울연가>,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이 있지만, 아시아 지역(일본, 중국,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한정된 유행에 가까웠다. 당시 한류의 중심은 작품이 아닌 배우였다. 배용준을 시작으로 최지우, 이민호, 송중기, 김수현 등이 한류스타로 자리 잡으며 몸값이 치솟았다.

이 시기 한류를 통해 증명한 사실은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공식이다. 드라마가 지닌 한국적 정서가 국경을 넘어 세계 시청자에게도 통했다. 그 배경에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깔려있다. 한류 드라마의 특징은 ‘사랑’이었다. 과거 한국 드라마는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하는 전개로 빈축을 샀다. 로맨스 장르 외 형사물, 추적극, 복수극, 의학물, 스릴러, 공포물 등 어떤 장르물이라도 끝은 사랑을 향해 달려가 뻔한 엔딩을 맞이하고는 했다. 이러한 내용은 문화적 정서가 비슷한 아시아권 시청자의 마음을 자극했고 인기를 끌 수 있었다.

팬데믹 이후의 K-드라마는 다르다. 글로벌 대히트작 <오징어 게임>은 456명 참가자들이 456억 상금을 두고 벌이는 서바이벌 데스 게임을 담았다. 이후 글로벌 흥행한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주동근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10대 좀비 스럴러, 송혜교 주연작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에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인의 인생을 건 복수기를 그렸다. 더 이상 로맨스는 한류의 성공 공식이 아니다. ‘로맨스=한류 성공’ 공식은 깨졌다. 대신 한국적 정서를 담은 K-드라마만의 감각과 표현이 세계 시장을 뚫는 열쇠가 됐다.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 배급된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변호사의 이야기로 국내외 큰 인기를 누렸다. 지난해 넷플릭스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작품 중 하나로 꼽힐 정도의 영향력이었다. 휴먼 드라마 장르인 <우영우>의 흥행은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에 밀집되어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권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했다. 학폭 소재를 다룬 <더 글로리>도 아시아 국가 흥행에 쏠린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공감대 형성 실패다.

<우영우>의 경우 장애를 지닌 변호사가 마주하는 차별과 불합리한 처사 등을 나타냈는데, 장애 인권이 보장된 일부 국가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공감하지 못했다. <더 글로리> 또한 학창 시절 괴롭힘으로 18년 동안 복수를 준비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총으로 쏘고 끝내면 된다” 등의 반응으로 의아함을 드러냈다. 문화적 공감대가 통하지 않으면 콘텐츠는 힘을 잃는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K-콘텐츠의 흥행 키 ‘보편적 정서’란 정확하게 무엇일까.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은 아시아 지역은 물론 서구권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인류 보편적 정신’이다. 넷플릭스 보유국이자 ‘할리우드’로 전 세계 영화 시장을 아우르는 미국의 콘텐츠의 특징은 세계인이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이는 주제, 테마, 소재의 선택이다. 미국 역대 영화 흥행 순위에 이름을 올린 영화 <아바타>, <타이타닉>, <스타워즈>, <쥬라기 월드> 및 <어벤져스> 등 마블 시리즈, 디즈니 시리즈 등을 살펴보면 여러 장르를 통해 인간의 삶을 그려낸다. 시대와 현실성을 뛰어넘어 사랑, 가족, 전쟁, 자유, 평화, 정의, 갈등, 공포 등을 소재로 활용하여 다른 언어와 풍경의 낯선 기분을 떨쳐버리고 스토리에 집중을 유도한다.

해외 평론가들은 <오징어 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의 흥행 요소로 ‘폭력성’을 꼽았다. 작품 속 많은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죽는다. ‘생존 게임’은 서구권 콘텐츠의 인기 요소이며, 그 안에 담긴 긴장감, 궁금증, 희열, 기쁨, 슬픔 등이 보편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에는 늘 좋은 영화와 드라마가 있었다. 단지 세계가 갑자기 우리를 주목했을 뿐.”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은 위와 같이 말했다. 전 세계의 시선이 한국으로 모일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글로벌 OTT 플랫폼이다. K-드라마의 해외 배급 통로인 미국의 넷플릭스와 디즈니+가 게임 체인저의 역할을 한 것.

드라마를 비롯한 영화, 예능 등 K-콘텐츠의 해외 진출 및 글로벌 흥행은 반가운 소식이나, 글로벌 OTT에 의존하는 환경은 장기적으로 독이다. 현재 OTT 시장은 국내 업계 1위 넷플릭스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까지 넷플릭스의 덕을 보기 위해 기획서를 들도 줄을 서 있을 정도다. 최근 일부 지상파 PD들은 OTT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 가운데 MBC 출신 장호기 PD가 기획한 <피지컬: 100>은 넷플릭스 한국 예능 첫 히트작이다. 100명의 신체 최강자들이 3억 상금을 두고 경쟁을 펼치는 서바이벌로 국내는 물론 해외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았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우리가 본 <피지컬: 100>은 장 PD가 제안한 기획 초안과 많이 다르다. 제작 투자를 진행하는 넷플릭스의 입김에 밀착 다큐 취재에서 ‘콜로세움 검투사’ 같은 서바이벌 대결로 변경된 것. 미국 콘텐츠에 익숙한 관계자들은 하나의 소재만 보고도 콘텐츠를 글로벌화하는 데 익숙했다. 대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IP(지식재산권)는 넷플릭스의 소유다. 장 PD는 MBC를 퇴사했다. 화려한 1위 콘텐츠의 어두운 이면이다.

해외 OTT의 강점은 분명하다. 자본력(투자 제작), 자율성 보장, 그리고 자동 해외 진출이다. 그에 비해 토종 OTT 플랫폼은 적자 폭만 늘리며 황새를 쫓고 있다. 한국인이 만든 미국 콘텐츠. 우리가 K-콘텐츠라 부르는 흥행 드라마, 영화, 예능의 실체다. 지금의 달콤한 결실은 전적으로 넷플릭스에 의존한 성과다. 물주가 ‘가성비 좋은 콘텐츠 기지’를 떠나면 콘텐츠 시장에 무엇이 남을까.

K-콘텐츠의 역량과 가능성은 입증됐다. 특정 문화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정서에 한국적 색을 녹여 우리의 것을 잘 만들어 냈다. 국경을 넘은 문화 콘텐츠의 힘은 강하다. 문화 감수성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까닭도 ‘글로벌화’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새로운 글로벌 취향으로 자리 잡은 K-콘텐츠가 해외 OTT로부터 독립하여 이룬 성적표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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