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K-콘텐츠 흥행 가뭄, 막대한 투자금 다 어디로 흘러갔나
‘차익 대박’ 기대에 급증한 콘텐츠 투자, 제2의 ‘오징어게임’은 없었다 적자 누적에 투자 줄이겠다는 토종 OTT, 문제는 투자 확대 아닌 ‘투자금 활용’ ‘유명 배우’ 기용에 뒷전으로 밀린 인력·마케팅, ‘입소문’만으론 콘텐츠 경쟁력 확보 어려워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흥행으로 활기를 띠었던 국내 콘텐츠 시장이 한계에 부딪혔다. 일단 투자만 하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쏟아낼 것이라는 안일한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토종 OTT의 작품별 투자 금액은 껑충 뛰었지만, 그에 걸맞은 흥행은 따라오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막대한 콘텐츠 투자금의 활용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흥행작이 안 나오니 투자금을 줄인다’는 단편적인 전략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유명 배우 기용’을 넘어 거액의 투자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국내 콘텐츠 시장에 쏟아진 투자에도 흥행작 全無
국내 자본시장이 콘텐츠 투자에 뛰어든 이유는 ‘흥행하면 대박’이라는 일종의 공식 때문이었다. 넷플릭스는 9부작인 <오징어게임>에 200억~250억원 수준의 제작비를 투입해 9억 달러(약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제2의 오징어게임’을 만들면 수십 배에 달하는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가 일파만파 확산했고, 투자자들은 콘텐츠 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토종 OTT들 역시 적자를 감수하면서 콘텐츠 투자를 늘려왔다. 티빙의 지난해 콘텐츠 원가는 약 1,167억원으로 전년(707억원)보다 46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웨이브도 45.4% 늘어난 2,111억원을 콘텐츠 원가로 지출했다. 콘텐츠 원가는 제작·수급 등 콘텐츠에 쓴 비용으로, 제작투자비 및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 대한 콘텐츠 정산비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정부 역시 유망 콘텐츠를 위한 300억원 규모의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 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 콘텐츠 투자 경쟁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시장이 기대하던 ‘대박 작품’이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적자를 떠안은 티빙과 웨이브는 기대만큼 가입자를 확대하지 못했고, 국내 OTT 시장은 빠르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불어나는 적자, ‘투자 축소’가 답일까
지난해 국내 토종 OTT 3사(티빙·웨이브·왓챠)의 연간 영업손실 합계는 2,964억원에 달한다. 2021년 영업손실(1,568억원) 규모의 2배 가까이 불어난 수준이다. 각각 티빙이 1,192억원, 웨이브가 1,217억원, 왓챠가 555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토종 OTT 업체들은 콘텐츠 투자를 줄이고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용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실적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당장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투자를 멈추면 양질의 콘텐츠 확보가 어려워지고, 결국 채널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제는 투자 확대 자체가 아니라 확대된 제작비의 ‘활용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것은 배우의 출연료 지출이다. 업계에서는 콘텐츠 제작 역량을 다지는 데 투입돼야 할 비용이 유명 배우의 출연료로 모두 새어 나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올 초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프리한 닥터>에 따르면 배우 송중기의 2021년 tvN 드라마 <빈센조> 출연료는 회당 2억원 수준이었고, 최근 인기를 끌었던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의 출연료는 회당 3억+α였다. 실제 지난달 28일 노 개런티로 출연한 영화 <화란>으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송중기는 “내가 출연료를 받으면 내 출연료 때문에 너무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화일보 기자 겸 유튜버 안진용은 지상파·종편에서 송중기, 이종석, 지창욱, 김수현, 이민호 등의 배우가 회당 출연료 3억원 이상을 받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16부작 기준 48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출연료를 받고 있는 셈이다. 여배우는 남배우보다 몸값이 다소 낮게 책정되는 편이나 전지현, 송혜교 등 인기 배우의 경우 회당 2억원에 달하는 높은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제작 ‘기초 역량’ 키워야
결국 배우 출연료에 거금을 투자하면 제작 인력 확보, 마케팅 등 콘텐츠 ‘기초 역량’에 투자할 여유가 부족해 진다. 국내 OTT 업체들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낼 기반을 다지는 대신 유명 배우 기용을 통한 ‘입소문’에 사활을 걸고 있는 셈이다. 양질의 콘텐츠로 승부하는 해외 ‘공룡 OTT’에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인 콘텐츠가 양산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웨이브·카카오TV 등 국내 OTT의 콘텐츠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방송학보에 따르면 웨이브의 오리지널 콘텐츠 중 80%(17개)는 비독점 제공되고 있으며, 웨이브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콘텐츠는 5개에 그쳤다. 반면 넷플릭스는 모든 오리지널 콘텐츠를 독점 제공해 이용자를 유인하고 있으며, IP(지식재산권)를 확보해 부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국내 사업자들의 외주 제작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자체 제작 역량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자체 제작 역량이 떨어지면 오리지널 콘텐츠의 IP를 확보하기 어렵고, IP 없이는 부가 수익을 창출하지 못해 투자 대비 저조한 수익을 올리게 된다. 큰돈을 들여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구조적인 개선 없이 <오징어게임>과 같은 흥행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업계 전반의 침체만 가속할 뿐이다. 차후 OTT 업계가 콘텐츠 시장으로 유입되는 막대한 투자금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충분히 고려하고, ‘대박’을 안겨줄 콘텐츠 제작을 위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