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 카르텔’ 저격한 尹 정부, 문체부도 칼 빼 들었다 “문화예술계의 ‘선택과 집중'”
예산 '적재적소' 배치하겠단 정부, "심사기능 강화가 그 시발점" 중복 사업 통합 개편도 시행, "사업 효율성 높인다" 尹 정부식 '잔가지 쳐내기'에 비판론도, "기준 마련 논의 소홀"
문화체육관광부가 산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자체 감사를 예고했다.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예산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도모하겠단 취지다. 문화 예술인과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앞서 과학기술계 ‘이권 카르텔’ 잡기에 나선 바 있는 윤석열 정부가 문화예술계에서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성하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인촌 “문체부 산하 기관 감사 시행”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30일 열린 취임 간담회에서 문화 정책의 개혁 계획을 전했다. 유 장관은 “문체부 산하 기관에 대한 철저한 감사를 다시 한번 할 것”이라며 “이번 국정감사에 지적된 사항이고 결국 예산 문제가 중심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에 시작해 철저하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앞선 국정감사에선 문체부 산하 기관의 도덕·기강해이 사례들이 차례로 지적된 바 있다. 이에 문체부는 이미 한국관광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영화진흥위원회, 그랜드코리아레저(GKL) 등에 자체 사무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감사 진행 중 예산 나눠 먹기 등 문제가 발견될 경우 문체부 감사실 차원에서 감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유 장관은 밝혔다.
유 장관은 10년 전 MB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역임했던 시절의 문화계와 현재를 비교하며 “후퇴했다고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더 나아진 것도 없다”고 일침을 날렸다. 영상산업계의 달라진 생태를 언급하며 “영진위 지원 형태는 20년, 30년 전과 똑같다. 새로운 환경에 맞춰 영상 산업의 지원 형태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콘텐츠 지원 패러다임에 변혁이 있어야 한다는 기조 아래 유 장관은 주요 정책 방향으로 4가지를 제시했다. △국민 삶 속에 문화예술이 있도록 새로운 지원체계 조성 △영상과 만화·웹툰, 게임, 음악 등 콘텐츠 장르별 정책 연내 발표 △온 국민이 즐기는 생활체육 활성화 △지역관광의 패러다임 변화 및 외래객 2,000만 명 시대 도래 등이 바로 그것이다.
효율성 제고 나선 문체부, “불필요한 예산 쳐낼 것”
유 장관이 언급한 사안들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현장에 알맞은 예산 책정을 이룸으로써 예산 효율성을 제고하겠단 고심이 묻어난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유 장관은 “그동안에는 생계 보전 차원에서 적은 액수를 나누면서 효과도 별로 없었다”면서 “앞으로는 엄격히 선별하고 이에 대해 확실하게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세간에서 “정부가 문화예술계 지원을 ‘균등 분배’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바꾸려 한다”는 언급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문화예술계 개혁을 위해 유 장관이 강조한 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사기능 강화다. 유 장관은 “지원 대상에겐 1회가 아닌 단계적·다단계 지원을 강화하며 또 공간지원 외에 법률·홍보·마케팅 등 간접지원도 확대할 것”이라며 “중앙과 지방의 역할을 구분해 지자체는 개인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국가는 사업단위의 지원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외부 심사위원 도입이 아닌 자체 심사제를 운영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유 장관은 “모든 지원 사업에서 외부 심사가 이뤄지는데 예술위는 1,000명, 콘진원은 600명 정도일 것”이라며 “기관들은 전문가들이 심사하니 ‘우리는 모른다’며 항상 거리를 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체 심사로의 전환, 심사기능 강화 등은 책임성 강화와 더불어 블랙리스트 예방에 큰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와 함께 문화지원 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역문화진흥원, 국제문화교류진흥원 등의 기능·사업 중복을 제거하는 통합 개편도 강조했다. 복잡하게 흩어져 있는 사업들을 한데 모아 효율성 높은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골자다. 문화사업의 초점은 ‘글로벌화’에 맞췄다. 유 장관은 “정부가 지원하는 문화정책은 가능하면 글로벌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세계무대에 K-콘텐츠가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선별된 작품들은 확실하게 지원할 것”이라며 “법률, 홍보, 마케팅, 인적 지원까지 해서 확실하게 해당 작품의 가치가 드높아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덧붙였다.
성과주의 좋지만, “기준 마련에 소홀해선 안 돼”
다만 일각에선 윤 정부의 선택과 집중 전략에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과학기술계의 이권 카르텔 척결 및 R&D 예산 삭감이 큰 반발에 부딪혔던 것처럼, 문체부의 문화예술계 변혁 의지도 도마에 오른 것이다. 이들은 문체부가 사실상 ‘표적 감사’를 시사한 것 아니냐는 비판론을 제기한다. 문체부 산하 기관이 부당한 이권 나누기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 관련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되지만, 정작 유 장관의 발언에서 그러한 혐의가 적시된 바는 없다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문체부가 크게 문제 삼지 않던 부분을 이 시점에 구태여 제기한 배경이 궁금할 지경”이라며 “윤석열 정부 문체부가 산하 기관을 옥죈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윤 정부가 문제 삼은 기관은 모두 전임 정부 시절 임명된 기관장이 있는 곳이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성과주의 예산제도 도입 시도 자체는 좋지만, 정작 이와 관련한 ‘기준’ 마련엔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성과를 기준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겠다는 게 유 장관의 주된 주장인데, 유 장관은 아직 성과주의 예산제도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할 만한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대해선 따로 언급한 바가 없다. 기준 설정은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업무 측정 단위가 잘못 설정될 경우 예산 편성 및 예산 사용기관의 활동 자체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예술계의 경우 사업이 수량화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A 사업이나 콘텐츠가 왜 B 사업이나 콘텐츠보다 더 필요한 사업인지 실질적으로 갈라놓기 어렵다는 뜻이다. 기준이 엉망이면 오히려 배분이 꼬여 효율성이 더 떨어질 수 있는 만큼 기준 마련에 대한 논의가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