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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첫 순방지로 사우디·카타르·UAE 방문 아부다비에 거대 AI 데이터 센터 건설 합의 2,000억 달러 규모의 AI·무기 계약도 체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 3개국(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 순방을 통해 총 2조 달러(약 2,800조원) 규모의 경제·안보 협력을 이끌어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에서는 2,000억 달러(약 280조원) 규모의 인공지능(AI) 협력과 데이터센터 건설, 14억 달러(약 1조9,600억원) 상당의 무기 거래, 보잉·GE와의 항공기 수출 등을 비롯해, 향후 10년간 1조4,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의 투자 약속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UAE에 대한 AI 반도체 수출 규제 완화
15일(현지시각)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3개국 순방의 마지막 방문국인 UAE를 찾아 AI 협력을 포함하는 2,000억 달러 규모의 상업 거래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 상무부는 "양국은 UAE 아부다비에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며 "해당 데이터센터는 UAE 기업 G42가 건설하며 다수의 미국 기업이 시설 부문에서 협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설 면적은 16㎢, 용량은 5기가와트로 미국 외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AI 캠퍼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미국 기업의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젠슨 황(엔비디아)·샘 올트먼(오픈AI)·지투 파텔(시스코) 등 주요 글로벌 IT·AI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동행하거나 현지에서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CNBC에 따르면 오픈AI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엔비디아, 시스코, 오라클 등이 하드웨어·인프라 공급 등에 참여한다. 또한 퀄컴은 UAE 수도 아부다비에 AI·데이터센터·산업용 사물인터넷(IoT)에 초점을 둔 글로벌 엔지니어링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어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장기적으로는 1조 달러(약 1,400조원)가 넘는 대규모 투자 계획도 추진된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은 "UAE는 향후 10년간 미국에 1조4,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AI, 에너지 등 핵심 산업 분야에 걸쳐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투자를 포함해 현재 UAE가 계획한 대미 투자 규모가 10조 달러에 이르렀다"면서 "그동안 나와 무함마드 대통령은 좋은 친구로 지내왔으며, 향후 미국과 UAE의 관계가 강화할 것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화답했다.
방산 분야에서도 미·중동 간 협력 강화
이번 대규모 투자의 대가로 UAE는 미국의 수출 규제 문제에서도 돌파구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UAE가 올해부터 엔비디아로부터 최첨단 AI 반도체를 연간 최대 50만 개를 수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1월 퇴임 일주일을 앞둔 조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산 AI 칩이 중동과 동남아시아를 통해 중국으로 우회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신규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는데 이를 해제한 것이다. 다만 백악관은 "이번 합의에는 미국 기술의 전용 방지를 위한 노력을 포함해 UAE의 국가 안보 규정을 강화한다는 약속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무기 판매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앞둔 지난 12일 UAE에 14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UAE는 이번 거래로 CH-47F 치누크 헬리콥터 6대, 기타 장비, F-16 전투기 부품 등을 인수한다. 국무부는 "UAE는 중동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위한 중요한 파트너로서 이번에 수출되는 무기들은 수색 및 구조, 재난 구호, 인도적 지원, 대테러 작전 등에 사용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 연방의회가 무기 판매를 차단할 권한을 갖고 있으나, 공화당이 다수당인 만큼 제동을 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중동 순방에서는 UAE뿐 아니라 사우디, 카타르와의 방위산업 협력도 대폭 강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UAE에 앞서 방문한 사우디에서는 1,420억 달러 규모의 방위 장비 판매 계약을 체결됐다. 해당 계약은 미국 방산기업 10곳 이상이 참여해 사우디에 첨단 무기 체계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사우디 군대의 현대화와 발전을 위한 협정도 포함됐다. 카타르에서는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경제·방산 패키지에 합의했고, 드론 방어 시스템·무인 군용기 등 첨단 무기 수출 계약도 함께 체결됐다.

중동 순방으로 2조 달러 규모 계약 체결
중동에서 체결한 일련의 계약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선물을 챙겼다. 이를 두고 국제사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 순방국으로 중동을 택한 것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부풀리기 논란에도 거액의 외자 유치 성과를 부각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상징성이 큰 첫 방문지로 국경을 맞댄 이웃 국가나 자유 진영 동맹국을 택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과 캐나다·이스라엘을 방문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첫 순방으로 아랍의 맹주 사우디와 동맹 이스라엘을 찾았다.
집권 2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UAE,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로부터 대규모 투자 약속을 이끌어내며 실리를 챙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귀국 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이번 순방을 통해 무역과 투자 등에서 2조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는 기사를 공유하며 오일머니 유치 실적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계약의 실현 가능성을 두고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상당수의 계약이 구체적인 사항이나 시점이 공개되지 않았다"며 "대부분이 상징적인 제스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럼에도 이번 중동 방문은 집권 2기의 중동 정책 기조를 가늠하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방문 중 중동 정책의 대전환을 공식화하며 기존의 강경 개입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자국 이익 중심의 실용주의 노선으로 전환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실제로 지난 14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아흐마드 알 샤라 시리아 임시 대통령과 회동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대통령과 만나 "과거 적대적 관계였던 시리아·이란과의 갈등을 청산하고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