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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TSMC 외에 패키징 선택지 없다" 삼성전자 HBM에 대한 언급도 전무 성숙 공정 넘어 반도체 '핵심 경쟁력' 확보해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를 외면했다. TSMC, SK하이닉스 등 삼성전자의 경쟁사를 향해서는 극찬을 쏟아냈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력에 대해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젠슨 황, 삼성전자에 선 그어
21일(이하 현지시간) 황 CEO는 대만 타이베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열린 GTC 타이베이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인공지능(AI) 발전에 있어서 고급 패키징 기술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우리의 칩이 (얼마나 작은지) 이 크기를 보라"며 "한계치를 넘어선 수준을 구현한 방식은 바로 고급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 기술"이라고 밝혔다.
'CoWos'는 웨이퍼 위에 여러 칩을 미세한 간격으로 배치한 뒤 이를 기판에 다시 붙이는 고급 패키징 방식으로, TSMC의 독점 기술이다. CoWos 방식을 사용하면 칩 간 신호 전달 거리가 매우 짧아져 데이터 전송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지고,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보다 가까이 붙일 수 있다.
황 CEO는 'CoWoS 말고 삼성전자의 고급 패키징 기술은 어떤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CoWoS는 현시점에서 굉장히 앞선 기술"이라며 "지금 엔비디아가 CoWoS 외에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가 패키징 방면에서 TSMC를 대체할 수 없다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이어 그는 "AI에서 고급 패키징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무어의 법칙(반도체 칩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24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 사실상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며 "하나의 다이에 효율적으로 넣을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정체 상태에 왔고, 그래서 찾은 해법이 바로 이 칩렛"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HBM 부문서도 SK하이닉스에 밀려
삼성전자는 HBM 부문에서도 황 CEO로부터 외면받았다. 앞서 시장은 황 CEO가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의 5세대 HBM3E 공급 여부에 대해 긍정적 시그널을 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하기 위한 퀄 테스트(품질 검증)를 받은 이후 어언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CEO가 직접적으로 삼성전자를 언급한 것은 지난 19일 기조연설에서 6G 기반 AI 기술 개발 협력사를 소개할 때뿐이었다.
삼성전자로부터 등을 돌린 황 CEO는 SK하이닉스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그는 20일 아시아 최대 IT·컴퓨팅 전시회 ‘컴퓨텍스 2025’에 마련된 SK하이닉스의 전시 부스를 방문해 “HBM4(6세대 제품)를 잘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 부스에 전시된 HBM 제품에 “SK하이닉스 사랑해요”, “원팀” 등 호의적 내용이 담긴 친필 사인을 남기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업계 최초로 엔비디아 등 고객사에 HBM4 샘플을 공급했으며,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HBM4 제품을 양산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빠른 시일 내 엔비디아의 HBM3E 퀄 테스트 통과로 반등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장(부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빠르면 2분기, 늦어도 하반기부터 HBM3E 12단 제품이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공급을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3분기를 약 한 달 앞둔 현재까지도 삼성전자의 퀄 테스트 통과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5·8나노 공정에서만 수요 폭발
다만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완전히 외면받는 것은 아니다. 최근 삼성전자는 5㎚(나노미터·10억분의 1m)·8㎚ 성숙 공정 부문에서 뚜렷이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다.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닌텐도의 야심작 ‘스위치2’에 탑재되는 엔비디아 테그라 시스템온칩(SoC)을 8㎚ 파운드리 공정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당초 닌텐도는 삼성전자의 5㎚ 공정과 8㎚ 공정 사이에서 고민했으나, 단가와 수율을 고려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8㎚ 공정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닌텐도 외에도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삼성전자의 성숙 공정 반도체를 찾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IBM이 지난해 8월 반도체 학회 '핫칩스 2024'에서 공개한 메인프레임 칩셋 '텔럼 2' 프로세서와 '스파이어' 인공지능(AI) 가속기 물량을 수주했다. 이 칩은 차세대 기업용 서버 컴퓨터인 IBM Z 시스템을 구동하기 위해 설계된 칩으로 5㎚ 공정에서 양산된다. 이에 더해 2030년부터는 5㎚ 공정을 활용해 제네시스 등 현대차 프리미엄 자동차에 탑재되는 ADAS(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용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문제는 성숙 공정 매출이 확보된다고 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시장 경쟁력이 제고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반도체 시장 패권을 좌우하는 것은 2㎚ 선단 공정과 AI 칩에 활용되는 HBM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이 성숙 공정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이상, 삼성전자의 5㎚·8㎚ 시장 내 입지도 점차 좁아질 것"이라며 "일단 확보한 성숙 공정 매출로 기초 체력을 기르고, 이를 기반으로 2㎚와 HBM 시장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