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OTT육성, 정부는 면피, 해외기업은 투자
내년 (2023년) 예산안에 OTT 업계 진흥을 위한 지원금이 합계 2,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문화제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합계 6조 7,076억 원 예산안 중 방송영상콘텐츠산업 육성 예산을 총 1,228억 원 편성했다. 올 2022년 767억 원 대비 147.2% 증가한 비용이다. 제작사의 콘텐츠 기획 및 개발, 특수시각효과, 색보정, 디지털 믹싱 및 마스터링, 번역, 더빙, 자막 등의 다국어화 관련 지원, 지식재산권 보호 등을 위해 배정된다. 특히, ‘위풍당당 콘텐츠코리아펀드’ 6종은 <오징어 게임>에서 봤듯,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다. 그 외 예술인 지원에 합계 9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마련됐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2,555억원의 예산 중 OTT 및 콘텐츠 관련 예산으로 713억원을 배정했다. KBS의 대외방송 프로그램, EBS의 교육 프로그램 등 공익 목적의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비 지원이 콘텐츠 지원의 주를 이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합계 18조8천억원에 달하는 예산 중 64억원을 편성해 국내 OTT 플랫폼의 해외 진출을 도울 계획이다.
OTT 관련 부처의 콘텐츠 및 해외 진출 관련 예산 합계액은 약 2,005억원으로 OTT업계에 배정된 예산안 중 역대 최대치다.
왜 이제서야 지원?
그간 OTT 업계는 ‘자율등급제’, ‘세제 혜택’ 등의 이슈로 정부에 규제 완화 및 직·간접적인 지원을 줄기차게 요청해왔다. 그러나, 예산 부족, 담당 인력의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논의를 미뤄오다가, 글로벌 자금 경색으로 왓챠의 경영이 흔들리고, 시즌(seezn)이 티빙에 사업을 넘겨주는 등, 이른바 구조조정 기간이 되서 지원에 나서는 것에 대해 환영과 함께 불편한 기색을 함께 내보이고 있다.
좀 더 일찍 선제적으로 지원에 나섰더라면 <오징어 게임>처럼 자금 부족으로 해외에 판권을 일괄 양도하는 계약을 맺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왓챠도 지금보다 훨씬 더 탄탄한 재무상태에서 경영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 주요 골자다.
마치 ‘숟가락 얹기’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니냐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정작 필요한 지원안은 없어
지원안의 상세 내용을 보면, 여전히 충무로 일대에 잠자고 있는 수 많은 시나리오이 빛을 보는데 쓰일 예산은 없어 보인다.
현재 잘 나가고 있는 서비스에 특정 기능을 더 추가하는데 예산 일부를 지원해주겠다는 정도여서 ‘숟가락 얹기’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이후 무려 1년이 지난 만큼, 국내 콘텐츠 제작 업계도 넷플릭스 등의 글로벌 OTT업체들 대비 협상력이 증가된 상태고, 경험치도 많이 쌓여있다. 뒤늦게 지적재산권 보호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도 역시 ‘생색내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고, 잘 되어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것이 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나리오 대본 작가는, “생계를 위해 N사 웹소설을 쓰고 산 지 벌써 3년”이라면서, “국내 영화, 드라마 업계 구조상 대규모 자본을 갖춘 기업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독립 영화 제작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봤듯이, 진정한 K-콘텐츠 업계 지원은 그렇게 잠자고 있는 수 많은 시나리오가 배우와 스태프를 만나고 스크린에 상영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인데, 이런 도전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결국 넷플릭스, 디즈니+ 등의 해외 업체 관계자들밖에 채널이 없다는 것이다.
정작 이익은 해외 OTT에게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정부 지원 예산안은 돈을 빼먹으려고 하는 기업들에게 특혜로 돌아갈 뿐, 실제로 묵묵히 경쟁력을 쌓아 올리고 있는 기업들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돌아가지 않는다”며, 이번 OTT업계 지원안에 대해서도, ‘눈 가리고 아웅’ 수준이라는 혹평을 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으로 K-콘텐츠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문재인 정부의 과오를 씻겠다면, 2023년 예산안처럼 ‘생색내기’ 예산 편성 대신, ‘생계를 위해 N사 웹소설 쓴지 3년’인 분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가능한 펀드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영화 프로젝트 실패를 두려워하는 공무원들이 ‘면피’를 위해 ‘이미 잘 되는 사업’에 ‘얹혀가는’ 예산만 편성해놓고 있으면, 똑같은 2,000억원을 들인 넷플릭스와 디즈니+가 한국 시장의 인력을 이용해 수십 배의 이익을 남기는 동안 정부는 또다시 ‘무능한 공무원’이라는 비난에만 직면하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