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로 읽는 한국경제사 – 9.순양자동차 매각과 월드컵 4강 이벤트
드라마 상 진양철 회장의 순양자동차 집착,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비슷 삼성자동차, 이건희 회장의 사재 1조원이 투입된 삼성그룹의 도전적인 프로젝트 IMF구제금융 맞아 결국 정부의 ‘빅딜’ 압력에 해외 매각, 2000년 르노에 인수 자동차 업계 월드컵 4강 이벤트도 현실과 비슷한 점 많아
재벌집 막내아들 12화에는 자동차 산업이 미래의 중심 사업이 될 것이라고 고집을 피우는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의 모습이 나온다.
실제로 컴퓨터와 스마트폰, 타블렛 등의 전자기기를 만드는 애플(Apple Inc.)도, 화성까지 가는 로켓을 만들겠다는 세계 최고 부자 엘론 머스크(Elon Musk)도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의 이름으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간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내연기관자동차의 부품 수는 약 3만여개에 달한다. 제조업 산업의 ‘끝판왕’이라 불릴만할만큼 복잡한 기술력이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사업이고, 매출액도 크다. 반도체라는 첨단기술이 집약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기업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가장 큰 기업은 현대-기아자동차다. 해외에서도 BMW, 벤츠 등을 비롯한 차량 브랜드들이 전세계 기업 순위에 언제나 최상위에 배치되어 있다.
순양자동차 집착, 삼성 이건희 회장과 비슷
같은 비전을 갖고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던 국내 재벌가 인물로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다.
1997년 7월에 출간한 이건희 회장의 에세이에서 “오늘 날 자동차는 부품 가격으로 볼 때 전기전자 제품 비율이 30%를 차지한다. 물론 누구도 자동차를 전자제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가 모호해진다. 그때 가면 아마 전자 기술, 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당시만해도 고인의 발언을 ‘삼성전자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는 것에 대한 핑계’라며 직관적인 예측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자동차=전자제품’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공감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속칭 ‘스마트카’로 불리는 신개념 차량이 등장하면서부터다.
1997년 5월에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을 찾아 시험차량을 탑승하면서는 자돋차가 미래 전자산업의 총아가 될 것이라며 삼성전자와의 시너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1995년에 공장을 지으면서 개인 사재를 통째로 부어 넣기도 했으나,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정부의 압력 끝에 결국 삼성자동차를 포기하게 된다.
드라마 상의 진양철 회장이 순양자동차를 항상 타고 다니는 것과 비슷하게, 삼성 이건희 회장도 삼성자동차가 제작되던 내내 삼성차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심지어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때 평소 타던 벤츠 대신 삼성차 최고급 사양 모델인 SM5 525V를 타고 참석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드라마 상의 진양철 회장은 손자의 도움으로 순양자동차를 매각하지 않아도 됐지만, 이건희 회장은 2000년에 르노에 삼성자동차를 매각한다. 삼성가 임원단에게 삼성자동차에 대해 물어보면 ‘아픈 손가락’이라는 표현을 끝으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이건희 회장에게 뼈아픈 손실이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2002년 당시 자동차 업계의 월드컵 4강 이벤트
드라마에서는 손자 진도준이 할아버지를 도우면서 동시에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고자 순양자동차를 살릴 계획을 세운다.
아폴로라는 명칭의 소형차가 매력이 없는 차량인만큼, 매출을 만들어내기 위해 차량 기술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하는대신, 2002년 월드컵과 연계한 이벤트를 낸다. 한국이 첫 승, 16강, 8강, 4강 진출을 하게 되면 각각 100대, 200대, 400대, 1,000대씩 이벤트를 하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월드컵 첫 승과 달리,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던 16강과 상상조차하지 못한 4강 진출이지만, 비슷한 종류의 이벤트가 실제로 국내 자동차 회사들에서도 있었다.
실제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기적같은 사건이 벌어지자, 월드컵 공식 스폰서인 현대차는 아반떼XD 보증수리 기간을 연장하고 즉석 복권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4강 진출 직후인 2002년 7월 2일부터 출고되는 아반떼XD의 보증기간을 파워트레인ㆍ엔진 등 핵심 부품 기준 3년 6만㎞에서 5년ㆍ10만㎞로 확대했고, 일반부품은 2년ㆍ4만㎞에서 3년ㆍ6만㎞로 연장했다. 그렇게 바뀐 기준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이 늘었기 때문이나, 시작은 월드컵 4강 진출 이벤트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또 월드컵 특별 모델로 생산하던 베르나ㆍ아반떼XDㆍ뉴EF쏘나타ㆍ테라칸ㆍ트라제XGㆍ라비타ㆍ리베로 등 7개 차종의 생산도 2002년 8월 말까지 연장하게 된다.
소형차와 중소형차, 당시 출시 초기였던 SUV들이 이벤트 대상이었던 점이 눈에 띈다.
기아차도 ‘한국 축구 4강 기념 축제’를 열고 7월 한달 동안 출고된 전차종의 구매 고객 4,700여명을 추첨, 네덜란드 여행상품권, 손목시계, 히딩크 사인 볼 등을 제공 했다. 또 ‘바캉스 이벤트’를 통해 리오ㆍ스펙트라 구입고객에는 동강 래프팅, 콘도 예약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는 20만원 상당의 레저회원권도제공했다.
현대-기아차 그룹이 전격적인 이벤트를 진행하자, 경쟁사들도 이벤트 대열에 뛰어들었다.
대우차는 7월 한달 동안 4기통 매그너스, 누비라II 모델에 대해 10% 할인 또는 2년 무이자 할부를 제공했다. 소형차량으로 인기가 높았던 레조 2002년 모델은 3% 할인을 제공해 현대-기아차와의 가격경쟁을 이어간다. 쌍용차도 금융권과 연계해 제공하던 할부 서비스를 7월에 추가 연장하는 등, 월드컵 4강 특수를 맞아 국내 차량 업계가 적극적으로 이벤트를 벌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