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주먹” 사적 복수 열풍, 과몰입은 어디까지? [빅데이터 LAB]

OTT 랭킹 빅데이터 분석 ‘빅데이터 LAB’ 복수극 열풍 향한 우려와 환영의 목소리 “사적 제재 미화 안 돼” VS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사진=넷플릭스

송혜교의 복수가 전 세계를 물들였다. <더 글로리>를 보지 않고는 일상적인 대화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미디어가 사적 제재를 미화하는 것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시청자들의 ‘과몰입’은 드라마가 그리는 복수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있을까?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에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와 욕구가 담겨있다. 최근 콘텐츠계에 가장 뜨거운 유행 키워드는 단연 ‘복수’다.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어버린 넷플릭스 <더 글로리>와 시즌2를 거듭하며 흥행 질주 중인 SBS <모범택시>가 가장 대표적인 예다. 이들 두 작품 모두 공개 또는 방영 이후 줄곧 OTT 차트의 최상단을 지키며 시청자들의 ‘사이다 전개’에 대한 갈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들 작품은 손에 피를 묻히는 자가 범죄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지 복수를 의뢰받은 자인지만 다를 뿐 주인공의 적극적인 계획과 행동으로 가해자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안긴다는 점에서는 같다. 과거 법정물 유행 당시 가해자들이 자신에게 내려진 형을 선고받은 후 눈을 흘기며 퇴장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최근 드라마 속 가해자들은 훨씬 혹독한 최후를 맞이하는 셈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학폭)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피해자 동은(송혜교 분)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지난해 12월 파트1에 이어 이달 10일에는 파트2를 공개하며 전 세계를 동은의 복수극으로 물들였다. 드라마는 공개 첫 주 넷플릭스가 집계한 글로벌 차트에서 드라마 부문 영어-비영어 통합 1위를 차지하며 흥행 중이다.

드라마는 “탄탄하게 쌓아 올린 서사가 빛난다”는 호평을 들은 파트1에 비해 파트2에서는 일부 혹평을 마주했다. 본격적인 복수의 상당 부분이 우연에 기댔다는 점에서다. 가해자 5인방이 모두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거나 목숨에 버금가는 귀한 것들을 잃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음에도 그 최후를 맞이하는 과정에 주인공의 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청자들은 복수극에서만큼은 사랑스러운 여주인공보다 강인한 여전사를 원한다.

사진=SBS

지난 2월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 SBS <모범택시>는 두 시즌에 걸쳐 학폭, 보이스피싱, 노인 사기 등 생활 밀착 범죄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그려내며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시즌2가 잦은 결방을 맞음에 따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법도 하지만, 시즌1을 단독 공개 중인 OTT 웨이브로 시청자가 몰리며 뜨거운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인기 요인으로 “가해자가 철저한 악인으로 그려진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모범택시>는 가해자의 악행을 오랜 시간에 걸쳐 묘사하지만, 그 과정에서 범죄자의 개인적인 서사는 철저히 배제한다. 이 때문에 이어지는 주인공의 복수 대행은 명분을 얻는다.

드라마는 시즌1 당시 각종 범죄의 적나라한 묘사와 다소 폭력적인 응징으로 지상파 방송 중 가장 높은 시청 등급인 19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 반면 시즌2는 “더 많은 시청자와 즐기기 위해 수위를 조절했다”는 제작진의 바람으로 약간의 순한 맛을 첨가했다. 폭력적인 묘사는 줄이고 유머로 그 자리를 채운 것. 덕분에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시청자가 늘었음에도 아직 전작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적어도 복수극을 찾는 시청자들은 ‘더 끔찍한 악행과 그에 걸맞은 극단적 응징’을 원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복수극의 뜨거운 흥행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작품이 그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문제 해결이 보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는 있으나, 더 큰 폭력과 비참한 결말을 불러올 수 있는 사적 제재를 미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청자는 드물다. 현실에서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대리만족을 찾는 것일 뿐”이라며 복수극의 열풍이 시청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드라마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복수극을 향한 엇갈린 시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OTT랭킹-(주)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는 시청자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복수’를 키워드로 최근 한 달간(2023년 2월 14일~3월 16일)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키워드 분석 결과(①) 사람들은 ‘더 글로리’를 비롯한 ‘드라마’가 그리는 ‘과거’ ‘사건’에 대한 ‘복수’의 ‘시작’과 ‘결말’을 하나의 묶음으로 연관 짓고 있었다. ‘복수’를 현실과는 엄격히 구분된 허구의 이야기로 정의하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키워드 기준 긍·부정 비중(②)에서는 긍정이 부정보다 높았다. ‘복수’에 대한 긍정 키워드 비중은 42.3%로 ‘관심’의 대상이자 ‘기대’ 요인이었고,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모범’ 사례로 꼽혔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표현과도 연결되며 복수극 열풍의 배경에 대중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있었음을 드러냈다.

부정 키워드 비중은 31.5%로 ‘살인’ 등 ‘폭력’적인 ‘사고’를 묘사함으로써 ‘갑자기’ 과거 ‘상처’ 등이 떠오르는 사례가 발생할 것을 ‘걱정’한 데서 비롯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각종 콘텐츠가 그려내는 복수 이야기가 ‘현실’에서는 어떤 ‘반응’으로 이어질지 ‘예상’하는 중립 키워드 비중도 21.2%에 달했다. 부정과 중립 키워드 비중을 합산하면 52.7%로 과반을 차지한다.

이런 분석 결과를 종합해 볼 때 대중은 복수극의 열풍 속에서도 현실과 드라마의 경계를 엄격히 구분 짓고 있으며, 그마저도 절반 이상이 과몰입에 대한 경계심을 놓지 않고 드라마 속 캐릭터의 복수를 단순 ‘관찰’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늘(16일) <더 글로리>와 <모범택시>는 [데일리 OTT 랭킹]에서 각각 넷플릭스와 웨이브 차트의 최상단을 지키고 있다. 이들 드라마가 그리는 주인공의 처절한 복수에 대한 필요 이상의 우려는 이제 약간 방향을 바꿔 사건의 발단이 된 각종 범죄에 대한 관심으로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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