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션] 시대극의 무게감도, 액션 활극의 통쾌함도 제대로 잡지 못한 ‘도적: 칼의 소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도적: 칼의 소리’ OTT 랭킹 최상위 등극 직후 3위로 물러나 시즌2 향한 갈망 드러낸 배우들·제작진
비극적인 민족의 역사를 내세워 ‘항일’ 같은 감정에 호소하기에는 콘텐츠를 즐기는 시청자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졌다.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보장하는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즐비한 <도적: 칼의 소리>에 적지 않은 아쉬움의 평가가 쏟아지는 이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이하 도적)는 1920년 중국의 땅, 일본의 돈, 조선의 사람이 모여든 무법천지의 땅 간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하나 된 이들이 벌이는 액션 활극이다. 22일 공개 직후 [오늘의 OTT 통합 랭킹] 최상위로 직행했던 <도적>은 곧바로 자리를 내주며 오늘(26일) 차트의 3위에 머물렀다.
작품을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1920년대 한반도의 분위기를 미리 살필 필요가 있다. 당시 조선은 1910년 8월부터 시작된 암흑기인 일제 강점기를 보내고 있었다. 1919년 3·1운동을 시작으로 한반도 각지에서 이어진 독립운동에 놀란 일본은 무단통치 대신 ‘문화통치’를 전면에 내세웠고,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은 친일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당시 수많은 지식인과 독립운동가들이 친일로 노선을 변경했으며, 그 결과 민족은 뿔뿔이 분열됐다.
독립계몽운동이 시작된 것도 이때다. 국내에서 활동이 어려워진 독립군들은 국외로 기반을 옮겨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북쪽 지역에 해당하는 간도는 이들 독립군은 물론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등진 수많은 조선인을 받아들였다. 일본이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살고 있던 무고한 한국인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인 ‘경신참변’이 바로 1920년 간도에서 일어났다.
<도적>은 과거의 괴로운 기억을 떨치지 못한 이윤(김남길 분)이 간도로 향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간도에 자리 잡은 조선인 마을에서 최충수(유재명 분)라는 인물을 찾은 이윤은 6년 전 자신의 그릇된 판단으로 최충수의 가족들이 목숨을 잃게 된 것이라며 자책한다. 하지만 그런 이윤을 죽이고 싶어 하는 자는 최충수만이 아니었다. ‘돈이면 뭐든 하는’ 총잡이 언년(이호정 분)이 이광일(이현욱 분)의 사주를 받아 이윤을 죽이려 간도까지 따라온 것. 하지만 자신을 죽일 사람은 최충수라는 이윤의 말에 언년은 순순히 물러난다.
시간이 흐른 후 이윤은 간도를 누비는 도적단의 핵심 인물이 된다. 이윤과 최충수, 강산군(김도윤 분), 초랭이(이재균 분), 금수(차엽 분) 등으로 구성된 이들 도적단은 일본군을 처치하고 얻은 전리품으로 간도의 조선인들을 보필하며 살아간다. 그런 이윤에게 유일한 그리움의 대상은 자신에게 먼저 이름을 물어 온 유일한 사람 남희신(서현 분)이다. 조선총독부 철도국 과장인 남희신은 친일파로 위장한 독립운동가로, 일본군의 방해에 국외로 보낼 군자금을 빼앗기자 직접 철도 부설 자금을 빼돌려 군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나선다.
‘웨스턴 스타일의 액션 누아르’를 전면에 내세운 <도적>은 극 초반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각종 서사를 아낌없이 풀어내며 ‘이야기’보다 ‘볼거리’에 치중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실제로 극 중 이윤과 최충수의 악연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무너져 내리고, 이윤을 향한 이광일의 분노는 배신감에서 비롯됐음이 짙게 드러난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캐릭터들의 관계성이나 숨겨진 서사, 인물 내면의 목소리를 읽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같은 과도한 친절은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극의 배경이 되는 격변의 시대는 물론 일본군 출신의 도적단 두목, 가족을 잃은 도적단의 정신적 지주, 친일파로 위장한 독립군, 잔인하고도 처절한 악역 등 저마다 수만 가지의 이야깃거리를 지닌 캐릭터들은 자신의 매력을 하나씩 풀어나갈 기회를 일찌감치 박탈당한 셈이다. 주인공의 서사에 친절하지 않은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궁금할 게 없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시청자 역시 많지 않다.
그렇다면 <도적>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이다. 제작진은 작품 공개를 앞두고 거친 황야의 땅 간도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을 비롯해 너른 대지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마상 액션, 맨손 격투에 이르는 다양한 볼거리를 예고했다. 실제로 드라마에서는 김남길의 롱테이크 액션과 이호정의 실루엣 액션 같은 특색 있는 장면들이 여럿 이어지며 이야기보다 볼거리에 치중한 제작진의 의도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하지만 <도적>을 접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의 스타일리시하고 신선한 장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황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국적 스타일의 마상 액션은 이미 15년 전 작품인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선보인 바 있고, 도적단의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는 단체 격투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일찌감치 정점을 찍었다는 이유에서다. 이호정의 긴 팔다리로 선보이는 실루엣 액션 역시 우마 서먼 주연의 <킬빌>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처럼 다소 아쉬운 연출로 한국형 액션 활극이라는 새로운 장르 개척까지는 미치지 못한 <도적>이지만, 배우들의 열연이 그 아쉬움을 만회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김남길은 액션과 내면연기를 자유롭게 오가며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했고, 서현은 많지 않은 분량에도 등장하는 장면마다 극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남희신을 완벽히 그려냈다. 유재명은 ‘참 어른’ 최충수 그 자체를 보여줬으며, 이현욱은 “이현욱이 이현욱 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악인 전문 배우의 면모를 과시했다. 속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 언년이로 분한 이호정 역시 쟁쟁한 대선배들 사이에서 빛나는 활약을 보여줬다.
여러 평가가 엇갈린 가운데 <도적>의 주연 배우들은 공공연히 시즌2를 시사했다. 김남길은 당초 20부작으로 기획됐던 작품이 9부작으로 줄어든 만큼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풀어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으며, 이현욱 역시 “지금 공개된 이야기로만 평가받기에는 너무 아쉽다”고 다음 이야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전했다. 감독과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도 기획 단계부터 시즌2를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도적>은 마지막 화의 대부분을 이른바 ‘떡밥’으로 채우며 다음 이야기를 기정사실화 했다.
하지만 제작진이 진짜 염두에 둬야 할 사실은 성공적인 시즌제 드라마를 위해서는 시즌1 하나로도 충분한 재미와 온전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짜 재밌는 건 시즌2에 보여줄게” 식의 연출은 스스로 이야기꾼의 자질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배우들의 뒤에 숨어 여론을 형성하려는 ‘술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힌 <도적: 칼의 소리>가 작품에 쏟아지는 각종 아쉬움의 평가를 배우들의 열연으로 덮으며 무사히 시즌2 제작에 나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