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2600억 넷플릭스 ‘그레이 맨’, 강렬한 액션에 공개되자마자 ‘1위’

지난 22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그레이 맨’이 동영상 스트리밍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전 세계 넷플릭스 영화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이틀 연속 1위를 석권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콘텐츠 순위가 집계되는 국가 중 나이지리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그레이 맨’의 인기가 실감되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그레이 맨’은 그림자처럼 활동하던 CIA 요원이 조직의 어두운 뒷면을 발견하게 되고, 이런 그를 소시오패스 기질의 전직 요원이 쫓으며 벌어지는 추격전을 그린다.

주인공은 할리우드 스타 라이언 고슬링과 크리스 에반스가 맡았으며, 연출은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에 참여한 루소 형제가 맡았다.

‘그레이 맨’은 어떤 영화?

‘그레이 맨’은 미 CIA 비밀병기로 활약하던 한 남자가 조직의 어두운 비밀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살인죄로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CIA의 제안으로 암살 전문 요원이 된 ‘시에라 식스'(라이언 고슬링 분). 그는 징역형을 감형하는 조건으로 CIA의 기밀 프로젝트 ‘시에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서류상으로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일명 ‘그레이 맨’이라 불리는 첩보 요원이 된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임무를 수행하던 중 죽기 직전 자신을 시에라 프로그램 참여자라고 밝힌 코드네임 ‘포(four)’로부터 메모리 카드를 건네받는다.

내부에 든 것이 CIA의 기밀 정보임을 알아 챈 식스는 상관인 ‘카마이클(레게장 페이지)’에게 메모리 카드를 넘기는 대신 그 기밀을 파헤치기로 결정한다.

조직의 비밀을 알게 된 대가로 하루 아침에 CIA의 타깃이 된 식스는, 이후 국장의 오랜 친구이자 악명 높은 살인청부업자 로이드 한센(크리스 에번스)에게 쫓기게 된다.

식스는 전직 상관인 ‘피츠(빌리 밥 손튼)’와 방콕에서 만난 요원 ‘대니(아나 데 아르마스)’의 도움을 받아 로이드의 추적을 따돌리며 조금씩 숨겨진 진실에 도달한다.

사상 가장 비싼 영화, ‘승부수’ 던진 넷플릭스

‘그레이 맨’엔 지금껏 만들어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됐다. ‘그레이 맨’의 총 제작비는 약 2억 달러, 한화로 약 2,626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제작비 만큼 129분의 러닝 타임 동안 태국, 오스트리아, 터키, 베를린, 체코 등을 오가며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와 관련해 루소 형제는 “석조 벤치에 수갑으로 묶인 채 총격전을 벌이는 체코 프라하 공원 장면에만 4천만 달러(한화 약 525억 원)가 사용됐다”라며 비화를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넷플릭스가 ‘그레이 맨’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은, ‘그레이 맨’이 넷플릭스의 위기 돌파를 위한 일종의 ‘승부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는 가입자 수 감소 및 주가 폭락 등 악재에 시달려왔다. 여전히 글로벌 OTT 업계 선두 주자로서 자타공인 ‘공룡’을 자처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 불안한 흔들다리 위에 서있는 듯하다.

‘그레이 맨’에는 비밀에 싸인 미 CIA의 최강 암살자, 그가 지키려 하는 병약한 소녀, 사이코패스 같은 악당, 배신과 우정, 그리고 복수 등 우리가 즐겨 찾던 것들이 한 데 모여 있다.

재미있으나 새롭지는 않은, 평론가들은 마뜩잖아 할지 몰라도 관객들은 팝콘을 먹으며 신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호평을 원하는 넷플릭스에겐 이만한 것도 없다. 실제 ‘그레이 맨’은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평론가 지수 50%, 관객 지수 90%를 기록 중이며, “액션 신에서 육체적 쾌감이 돋보인다”, “역시 루소 형제는 액션에 진심이다” 등 관객들의 호평도 다수 받았다.

짜릿한 액션, 관객들도 ‘환호성’

‘그레이 맨’은 다른 것보다도 역시 ‘액션’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상 최대의 거액이 투자된 만큼, 유달리 액션의 퀄리티가 높기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방콕에서 타깃인 ‘시에라 포’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식스는 고층 빌딩 한가운데서 미션을 이행하는데, 신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는 그 시작을 더 화려하게 꾸민다.

이후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의 사투와 폭발하는 건물, 프라하 시내를 관통하는 트램을 배경으로 한 총격전까지, 영화는 끊이지 않는 액션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환호하게 만든다.

아날로그적이고 육체적 쾌감이 돋보이는 액션들이 주를 이루는 한편 클리셰를 역이용하는 액션이 ‘그레이 맨’의 가장 큰 특징이다.

타깃을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대신 나이프와 주먹으로 직접 타격하며 시작된 ‘그레이 맨’은, 가급적이면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맞부딪히는 형태의 액션을 고수한다. 이는 마지막 대결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것이 도시나 배경이 바뀔 때마다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만들어진 스타일리시한 도입 샷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대놓고 007을 언급하는 한편 여러 클리셰를 방향성만 살짝 틀어 역이용하는 영리함도 보인다.

우선 ‘그레이 맨’은 카 체이싱이나 추격전 등 액션 시퀀스를 배제시키고 대신 육탄전을 벌이는 초반부 방콕에서의 장면처럼 예상을 조금씩 벗어나려 한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미로 속에서도 오히려 식스와 로이드를 정면으로 대결시키면서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화려한 액션 뒤 감춰진 건…

그러나 액션에서도 한계점이 있다. 프라하 시내에서 펼쳐지는 액션이나 다수의 적이 기다리고 있는 적군의 본부에 소수 인원이 침투하는 장면 등은 루소 형제의 전작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가 연상된다.

액션 시퀀스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구성이 유사하단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다. 삶의 근본적인 의미와 이유 대신 삶의 방식에 주목하는 스토리의 깊이를, 루소 형제가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단 것이다.

작중 식스와 대니를 로이드와 카마이클로부터 구분 짓는 유일한 차이는 보편타당한 윤리적 선을 준수하느냐 마느냐다. 민간인과 어린 아이를 죽이지 않는 것, 사랑과 신뢰의 의미를 아는 것 등이 그들 사이의 ‘선’이다.

영화는 그 선을 넘는 사람은 부적절하며, 그렇지 않은 이는 적절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아간다. 그 결과 평면적인 ‘그레이 맨’들의 이야기는 온전히 관객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비어버린 공간은 끊이지 않는 액션, 그리고 익숙한 관계성이 대신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레옹’, ‘존 윅’ 등의 관계성이 그대로 내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대중성과 오락성을 위해 ‘그레이 맨’의 잠재적 힘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을 고찰하기 보다 현실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찾으려는 태도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레이 맨’의 서사가 보다 구체적이었다면 보는 이들의 몰입감을 더욱 높일 수 있었으리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 고유의 단점이라 할 수도 있겠다. 창작자들의 자유와 재량을 최대한 보장하는 넷플릭스의 원칙은 창작자들의 단점을 극대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 것이다.

루소 형제는 전작들에서도 오락성과 대중성을 위해 드라마적인 부분을 희생시켰던 바 있다.

우선 ‘윈터 솔져’는 ‘안전을 위한 자유의 통제’라는 사회비판적 주제를 권선징악 구도로 밖에 풀어내지 못했으며, ‘시빌 워’는 자유와 통제 사이에서 벌어진 상이한 정의관의 충돌을 두 주인공 사이의 개인적 감정 충돌에 국한시켰다.

‘낯익음’ 역시 약점이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하는 주인공, CIA의 비밀 암살 요원 ‘식스(Six)’가 방탄 방패를 들고 트램 안에서 벌이는 총격전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가 있다. 바로 ‘캡틴 아메리카’다.

‘그레이 맨’ 내부에서 설정된 설득력이 떨어지는 상황 등도 관객들의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식스가 들고 사라진 단서가 대표적이다.

식스와 식스가 지키려는 아픈 소녀의 관계가 진부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배우는 빛났다

스토리에 아쉬움에 남음에도 ‘그레이 맨’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역시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캐릭터들의 매력이다. 이것이 액션 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했다.

크리스 에반스는 ‘나이브스 아웃’에서 보인 양아치 캐릭터를 다시 한번 선보였으며,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광기 어린 인물인 로이드를 잘 표현해냈다.

라이언 고슬링은 정적이고 여유로우면서도 아픔을 간직한, 상당한 지략과 언변을 가진 캐릭터를 보여준다.

‘노타임 두 다이’에서 등장해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던 아나 데 아르마스가 또 한번 조력자로 등장한 점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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