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쪼개 팔기 ‘페이센스’, 혁명인가 불법인가?
OTT 구독권 ‘1일권’으로 나눠 파는 ‘페이센스’ 국내 OTT 3사 “불법 쪼개기 판매 중단” 내용증명 발송 OTT 플랫폼 시장의 생태계를 망치는 ‘황소개구리’, 근절 시급
주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구독권을 ‘1일권’으로 나눠서 파는 신종 사이트의 등장으로 OTT 플랫폼 사업자와 마찰이 예상된다. 5월 말부터 국내외 6개 OTT 1일 이용권을 판매하고 있는 페이센스다.
페이센스의 1일 이용권 가격은 티빙과 웨이브, 왓챠 각 500원, 넷플릭스 600원, 디즈니+ 400원으로, 기본 월간 단위로 운영되는 OTT 계정의 판매 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 이용권은 모두 가장 좋은 화질과 최다 동시 시청 허용 인원(4명)을 지원하는 ‘프리미엄’이다. 페이센스는 미리 사둔 각 OTT 서비스의 프리미엄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1일권 구매자들에게 하루 동안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드라마나 영화 콘텐츠 1개를 웹하드 등에서 구매한다고 가정하면 최소 2,000~5,000원을 지불해야 하고, 넷플릭스 월간 이용 요금이 최소 9,500원~최대 17,000원 임을 감안할 때 분명 파격적인 혜택이다.
OTT 1일권, 품절 속도도 빨라
넷플릭스와 왓챠을 함께 이용하는 직장인 구(29)씨는 “평일에 회사를 다녀오고 나서 다음 날 이른 출근 때문에 평일에는 거의 볼 시간이 없어서 주로 주말 또는 쉬는 날에만 OTT 플랫폼을 몰아쳐서 보니 솔직히 돈도 아깝고 피곤하다”면서 “주말마다 1일권을 사서 몰아보는 것이 월 이용권보다 가격 대비 고효율”이라고 말했다.
송홍석 페이센스 대표는 “OTT 서비스를 구독하면 기껏해야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보는데 한 달 치 비용을 정기적으로 내야 하고, 내가 보고 싶은 콘텐트는 각기 다른 OTT에 흩어져 있어 결국 여러 개의 OTT를 구독하는 비용이 부담돼 추가 구독을 포기하게 된다”며 “하지만 OTT 업체들은 자동결제 방식과 복잡한 해지 절차를 통해 사실상 일정 기간 의무 사용을 강요하는 불공정한 약관을 들어 이용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비자들의 불편함과 OTT 업계의 현행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페이센스를 만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페이센스는 정확한 이용자 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카카오톡 문의 채널의 친구 수만 8,300명을 웃돈다. 일부 이용권은 한정된 수량이 제공되는 만큼 일찍 동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OTT 업체별 월 이용권이 4인 기준 1만3,900∼1만7,000원인 점과 OTT 업체가 통상 계정 하나를 4명이 공유(프리미엄 기준)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페이센스는 계정 하나당 월 수만원대의 수익을 얻는 셈이다.
OTT 3사, 페이센스에 영업 중단 요구
그러나 이런 신선한 바람에 제동이 걸렸다. 페이센스 서비스 개시 11일 만에 티빙, 왓챠, 웨이브 등 국내 OTT 3사가 이를 ‘불법 쪼개기 판매’로 보고 페이센스에 영업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이다. 내용증명에는 “페이센스가 동의 없이 약관을 위반해 이에 대한 민형사상 법적 조치할 예정”이라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페이센스는 OTT들과 계정을 쪼개 파는 행위에 대해 별도 B2B 계약이나 제휴를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OTT 업계가 유례없이 빠른 법적 조치를 예고한 배경에는 페이센스에서 1일권을 구매한 소비자를 현실적으로 제재하기 어렵다는 고충이 깔려있다. 국내 OTT 업계 관계자는 “어떤 계정이 제3자로부터받은 것인지 기술적으로 적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비밀번호가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패턴 등으로 추정할 순 있겠지만, 그런 계정에 일괄 이용 차단을 결정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토로했다.
페이센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OTT 서비스의 계정을 구독하여 고객님들께 24시간 동안 대여해드리고 있다”며 “OTT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페이센스는 법으로 정해진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한 페이센스 관계자는 “오픈한 지 2주도 안 된 서비스고 인력도 부족한 작은 스타트업일 뿐”이라며 “13일 오전 SBS ‘모닝와이드’에서 변호사님 두 분이 내용증명의 법적 위반사항에 대해 ‘아니다’라는 결론을 명확하게 내줬다”고 밝혔다.
변호사 “저작권법 제20조에 따라 보호될 수 있어”
변호사들은 OTT 회사들이 주장한 ‘이용약관 위반’과 관련해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고한경 변호사는 “페이센스와 같은 사업이 지금까지는 없었다”며 “(판매나 양도가 아닌) 1일 구독권으로 쪼개서 잠깐 대여하는 것까지 금지되는지는 해석에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페이센스 서비스가 ‘저작권법 제20조’에 따라 보호될 수 있다”고 유권해석했다. 여기에는 ‘저작자가 저작물을 배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정은주 변호사는 “결과적으로 OTT 업체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약관을 보면 이용권을 영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에 약관위반에 해당하고, OTT 업체들 자체적으로 약관위반을 이유로 계정 정지 등의 이용 제재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에 대해서는 “적법하게 구매한 제품을 재판매하는 경우 (저작권법) 침해가 아닌 것으로 봐주는 원칙이 있다”고 설명했다.
페이센스 무대응 일관하자 OTT 3사 가처분 신청
현재 OTT 플랫폼 3사는 페이센스의 서비스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등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페이센스가 OTT 측과 별도의 계약이나 제휴 없이 1일 이용권을 자체 판매하는 것이 △무단 도용 및 정보통신망 침입 행위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10일 페이센스 측에 “서비스를 중단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발송했으나, 페이센스 측이 회신을 거부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함에 따라 OTT 플랫폼 3사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오는 8월 10일 국내 OTT 3사가 페이센스를 상대로 낸 서비스 중지 가처분신청의 첫 심문기일을 진행한다.
송홍석 페이센스 대표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페이센스의 서비스가 약관 위반에 해당한다는 OTT 3차 플랫폼 측의 지적에 대해 “위법이나 약관 위반은 주장하는 쪽에서 이를 입증해야 한다”며 “이는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투자 없이 이익만 가로채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현재 페이센스는 아마존 프라임, 쿠팡 플레이, 애플TV까지 론칭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거금을 내고 OTT 서비스를 사용하는 유저들에게는 반가운 사이트인 것만은 확실하다. 코로나19의 광풍이 지나가고 엔데믹을 준비하는 요즘, 야외 활동이 부쩍 늘어나면서 하루 이틀, 날을 잡아 이른바 ‘몰아보기’를 하는 유저가 늘어나고 있다. OTT별로 제공하는 콘텐츠도 다르다 보니 여러 플랫폼을 옮겨가며 볼 수밖에 없어 금전적 부담도 상당하다. 이런 고객의 니즈를 콕 찍어 반영해주는데 페이센스를 두 손 들고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위 ‘중개 사이트’는 기존 OTT 플랫폼 시장의 생태계를 망치는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인 만큼, 유사 사이트들이 계속 활개를 칠 경우 그간 정착된 수익모델이 한순간에 무너질 우려가 크다. 이는 CP와 OTT 업체의 수익 악화는 물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대한 투자 감소로까지 이어져 미디어 산업의 선순환 구조마저 위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