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자 빙하기 콘텐츠 전략 – ‘판’ 커지니 ‘통’ 커진 韓영화

한국 영화 제작비 200억 시대 올 여름 텐트폴 작품 참패 행진 상당기간 침체기 전망

사진=각 영화 포스터

올 여름 개봉한 영화 순제작비는 대부분 200억원 언저리였다.

<외계+인> 1부는 330억원 (7월20일 개봉), <한산: 용의 출현> 280억원 (7월27일 개봉), <비상선언> 260억원 (8월3일 개봉), <헌트> 195억원 (8월10일 개봉)으로 이어지는 대작영화 제작비를 보면, 한국 영화가 아니라 헐리우드 제작 영화가 아닐까는 의구심까지 든다.

불과 2~3년전만 해도 한국영화의 제작비를 논할 때 대작영화라는 평이 나오는 기준은 100억대 순제작비였다. 박찬욱 감독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은 순제작비가 113억원, P&A비용을 포함한 총제작비는 135억원이었다. 극장 관객에게만 의존해서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던 시절에는 최소 3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야 했으나, 지난 몇 년간 ‘판’이 커져 한국영화들도 ‘통’이 커졌다. 해외 수십개국에 선판매되고, OTT플랫폼이 많이 생기면서 선판매 단가도 증가했다.

<헤어질 결심>은 해외 193개국에 선판매되며 손익분기점을 낮췄고, 향후 주문형비디오(VOD) 등의 부가수익을 고려하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120만명 안팎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개봉 2개월 차인 8월 말을 기준으로 이미 185만명을 넘어섰고, 누적매출액은 200억원에 육박했다. 향후 추가 수익금을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미 투자사에서는 쏠쏠한 수익을 거뒀다.

이처럼 수익원이 다변화하고 시장이 확대된 덕분에 100억대가 아니라 200억대 제작비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이전에는 극장 수익만이 영화의 손익을 추정할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었으나, 요즘은 OTT나 IPTV 등 부가 판권 시장이 매우 크고, K-콘텐츠 수출도 잘 되는 편이라 영화배급사에 대한 의존도가 많이 줄었다. 극장에 일반관 외에 4DX, 아이맥스 등 특수관이 많아지고, 관람료가 오른 것도 있어, 더 이상 관객 숫자 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200~300억원대의 제작비, 대작영화인가?

영화업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저예산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기존 영화업계는 제대로 된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탓에 표준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다거나, 스태프들의 야근을 당연시 한다거나 등으로 쥐어짜기가 계속됐다. 그나마 제작비가 200억원대로 상승하면서 현장의 노동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여전히 미국 독립영화 예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200억원대 제작비가 그렇게 큰 비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갑자기 200억원대 영화가 4개나 연속적으로 개봉한 배경에는, 지난 몇 년간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개봉을 미뤄왓던 고예산 영화들이 앞다투어 개봉한 영향도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순제작비 100억원 이상을 들인 한국 영화 개봉 편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2017년부터 매년 10편 정도의 영화가 개봉했지만, 2020년과 2021년에는 각 4개, 3개 밖에 개봉되지 않으며 개봉을 미뤘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대규모 개봉이 이어졌다.

실제로 올 여름 개봉한 <비상선언>은 지난해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던 작품이나, 올 1월로 개봉을 연기했다가 결국 올 여름으로 또 다시 연기했다. <한산: 용의 출현>도 촬영은 2020년에 진행했다. 작년 여름 개봉 예정이었다가 결국 올 여름 개봉을 선택했다.

개봉이 연기되며 순제작비가 일부 더 증가했던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대작 영화라고 해도 아직까지 200억원대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작비는 아니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평이다.

‘통’이 더 커질 수 있을까?

OTT 플랫폼의 성장을 비롯한 제반 여건이 개선되면서 영화계 안팎에서는 제작비가 꾸준히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그러나 글로벌 자금시장 경색과 OTT 플랫폼들이 자금 운용에 곤란을 겪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통’이 더 커지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리지 않겠냐는 조심스러운 분석이다.

이번 7~8월에 개봉한 대작영화 중 <외계+인> 1부가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흥행 참패를 겪으며 브레이크가 걸리는 모습이다. 총제작비 330억원의 블록버스터 대작에, 손익분기점은 무려 73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나, 개봉 1달이 지난 시점에 누적 관객수는 153만명, 누적 매출액도 160억원에 불과하다.

영화 업계 관계자는 <외계+인>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영화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투자 의향을 보일지 미지수라고 우려했다. <탑건: 매버릭>의 흥행으로 인한 역풍을 맞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같은 기간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등의 영화에 비해서도 관객 동원 파워에서 밀리고, 심지어 개봉 9일차부터는 <뽀로로 극장판 드래곤캐슬 대모험>에게도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흥행 참패를 예견하게 된다.

영화 업계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맞물려 OTT 플랫폼의 구매력도 감소하고 있는 이때에 블록버스터가 흥행 대참패를 겪는 악재까지 겹친 탓에 K-콘텐츠 제작에 상당기간 침체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판’이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는 셈이니 ‘통’이 계속 커진 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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