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넷플릭스 ‘다머-괴물: 제프리 다머 이야기’

사진=넷플릭스

미국 소셜 커뮤니티 레딧에서 실시한 ‘100년 후에도 기억될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라는 조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살인마 제프리 다머. 천년에 가까운 징역형으로 사실상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그는 다른 재소자에게 폭행을 당해 생을 마쳤다. 죽음 이후에도 다머는 그 악명에 걸맞게 수많은 콘텐츠로 재연됐고, 이 잔혹한 살인마의 이야기는 전 세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의 고교시절을 그린 영화 <내 친구 다머>를 비롯해 국내에도 소개된 다큐멘터리 <다머가 말하는 다머: 연쇄 살인범과의 인터뷰>, 그리고 만화책에 이르기까지 그를 다룬 작품은 필요 이상으로 많았고, 더 이상 그는 소비할 가치조차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난해 넷플릭스는 그간 숱하게 파헤쳐졌던 이 제프리 다머라는 인물을 훨씬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지난 9월 <다머-괴물: 제프리 다머 이야기>(이하 다머)가 정식 공개되자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10년이 넘는 범행 기간, 최소 17명의 희생자, 끔찍한 범행 수법 등 그의 악행이 아무리 끝이 없다 한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그의 이야기를 곱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10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머>는 현재 넷플릭스 영어권 드라마 1위를 차지하며 누적 시청 시간 2억9,984시간을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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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워키의 한 아파트. 집에서 악취가 난다는 이웃의 항의에 횡설수설 둘러대고 클럽으로 향한 제프는 귀가할 땐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예술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면 돈을 주겠다며 한 흑인 남성을 집으로 불러들여 칼로 위협했고, 상대의 한쪽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먹잇감의 공포를 음미하기라도 하듯 그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한 쪽 손은 자유로웠던 상대는 제프를 가격한 후 밖으로 도망쳤고, 그를 발견한 경찰들에게 붙잡히는 제프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남들이 보기엔 평범했지만 그 스스로는 불행했던 제프의 어린 시절이 펼쳐진다. 자주 집을 비우는 아버지, 약물에 의존하던 어머니, 부모님의 이혼 후 홀로 지냈던 열여덟 소년. 그게 끔찍한 살인 행각을 벌일 만큼의 불우한 환경이었나를 생각하는 시청자들의 앞에 이번엔 제프의 아버지가 나타난다. 그는 아들이 어렸을 때 받았던 수술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먹은 약이 악영향을 끼치진 않았을까 하며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제프는 “저는 그냥 이렇게 태어났나 봐요”라고 무심히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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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가 경찰에 붙잡힐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첫 범행을 저지른 후 시신을 유기하러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경찰에게 검문을 받기도 했고, 약에 취한 라오스 소년 코네락을 집에 두고 술을 사러 나갔다가 코네락의 탈출로 계획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제프의 뻔뻔한 거짓말에 경찰은 순순히 그를 보내주거나, 피해자를 그에게 인계하고 만다.

제프의 이웃인 탓에 악취와 알 수 없는 소음으로 고통 받던 글렌다는 탈출한 소년을 보고 그를 제프에게 인계해선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하지만 글렌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후 그녀는 경찰에 소년의 안전을 확인하고, 또 그 이후로도 가시지 않는 악취와 한밤중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여러 차례 신고하지만 경찰에서 돌아오는 답은 “확인 했습니다” 아니면 “확인 하겠습니다”뿐이다. 물론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드라마는 모델 지망생 토니의 죽음으로 후반부를 맞이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토니는 제프와 필담을 나누며 가까워지고, 누구보다 자상한 그의 모습에 제프는 동요를 느끼는 듯 했다. 하지만 토니가 떠나려는 순간 또 다시 이성을 잃은 제프는 결국 그에게도 흉기를 휘두른다. 사랑스러운 아들, 그리고 남동생을 잃은 토니의 가족은 이대로 무너지고 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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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10회라는 긴 호흡에도 불구하고 살인마가 잡히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피해자가 등장할 때마다 ‘이 사람이 희생양이 되는 걸까, 아니면 도망쳐서 저 살인마의 악행이 세상에 드러날까?’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 스릴과 긴장감을 초반에 모두 차단한다는 것은 스릴러 드라마를 만드는 데 있어 무모한 시도에 그칠 수 있다. 시청자의 피로감은 줄일 수 있겠지만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많은 상황에선 자칫 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머>는 제프의 어린 시절과 범행 당시를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재생하며 시청자들이 긴장을 유지하게 한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모두 버리고 3인칭 시점을 유지한다. 그리고 제프의 범행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보여준다. 제프가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남자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미국 내 소수인종들의 분노가 들끓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그럼에도 제프의 이웃 글렌다는 범죄의 희생자를 기억하고 그들의 가족을 위로하는 데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고통을 나눠가지려는 글렌다의 모습을 통해 드라마는 잔혹 범죄의 피해자가 단순히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희생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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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그려진 희생자 가족들의 모습은 실제 제프리 다머의 재판 당시를 그대로 재연한 것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들은 분노하거나, 또는 정 반대로 무기력하다. 이 부분에서는 유족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인 이들 유족이 평정심을 잃었던 바로 그 순간을, 그들이 입었던 옷과 헤어스타일, 말투, 표정까지 그대로 재연해냄으로써 상처를 헤집어놓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극 중 토니의 어머니만이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려는 것 외에, 다른 유족들은 여전히 악몽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이들의 상처를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도 드라마는 ‘각색’이라는 무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처음 <다머> 공개 당시 ‘LGBTQ’ 태그를 달아 시청자들에게 제공했다. 넷플릭스에서 ‘LGBTQ’를 검색하면 <캐롤> <영원한 여름> 등 성소수자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들과 함께 <다머>가 나열됐다. 실제 제프리 다머는 성소수자였고, 드라마 속 제프 역시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다. 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그 사람이 떠나는 것이 싫어서’였다. 다만 여기서 잊어선 안 될 것은 사랑은 종종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모든 집착이 사랑은 아니라는 점이다.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으로 포장할 수 없다는 점을 넷플릭스가 간과했던 것은 아닐까? 다행히 빗발치는 항의에 넷플릭스는 서둘러 해당 태그를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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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제프리 다머를 다뤘던 대부분의 영화나 다큐에 비해 넷플릭스 <다머>는 그의 범행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찰의 무능함, 피해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남겨진 이들의 노력, 피해자의 가족은 물론 가해자 가족의 복잡한 심경 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하다.

<다머-괴물: 제프리 다머 이야기>를 통해 고통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예상보다 잔인한 장면은 많지 않지만, 식사나 군것질을 하며 감상하는 것만큼은 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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