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기회, ‘29禁’ 만들고 싶었다”…‘썸바디’ 정지우 감독 [인터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썸바디’ 정지우 감독 인터뷰 “김영광의 변신, 항상 기대” 무한 신뢰와 응원 “첫 OTT 드라마 도전, ‘이건 기회다’ 생각”
“할 수만 있다면 ’29금’ 만들고 싶었죠. 시리즈 제작은 넷플릭스가 준 기회였습니다.”
넷플릭스 <썸바디>의 정지우 감독이 작품에 쏟아지는 일각의 혹평에 의연한 반응을 내놨다. 22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 감독은 작품과 출연 배우들을 향한 무한애정을 드러냈다.
<썸바디>는 데이팅 앱 ‘썸바디’를 매개로 살인사건이 발생하며 앱의 개발자 섬(강해림 분)과 그녀 주변의 친구들이 의문의 인물 윤오(김영광 분)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다. 이전 작품들인 영화 <해피엔드>, <은교> 등을 통해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정 감독이 처음 드라마 연출에 나서며 기대를 모았다.
드라마는 ‘소통이 어려운 개발자가 자신이 개발한 앱을 통해 연쇄살인마를 만난다’는 신선한 설정으로 눈길을 끈다. <썸바디>는 관계를 맺고 끊는 것이 얕아진 오늘날의 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누구나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간절히 찾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 주연 네 인물은 오늘날 사람들이 가진 외로움과 불안감을 잘 표현해냈다.
그동안 주로 로맨틱코미디에서 밝은 이미지로 활약했던 김영광이 뒤틀린 욕망을 내면에 간직한 살인마 ‘윤오’ 역을 맡았고 예능 <연애의 참견>에서 재연 배우로 활동하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강해림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섬’을 연기했다. 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영화 <둠둠> 등에서 활약하며 활동 반경을 넓히는 중인 김용지는 주인공 섬의 친구이자 무속인 ‘목원’ 역을, 500:1의 경쟁력을 뚫고 합류한 신예 김수연은 섬의 친구이자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가진 경찰 ‘기은’ 역을 맡았다.
강해림은 첫 주연작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품에 잘 녹아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제2의 김고은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가 나오고 있는 상황. 정 감독은 “강해림 배우가 제2의 김고은이 되면 정말 바랄 게 없다. 김고은 배우의 최근 드라마를 보고 너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해림 배우도 그런 생생함을 연기하는 배우로 발전하면 정말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작품은 주연 여배우 세 명의 캐릭터에 아스퍼거 증후군을 비롯한 장애나 동성애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캐릭터를 녹여낸 것으로도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 특별한 의도가 있었냐는 질문에 정 감독은 “이야기 기획의 첫 단계가 악당을 물리치는 3인이었다. 그들이 저마다 고민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는데, 그게 좋았다. 그들을 평범한 일상에서 보이는 보통인 사람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로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만드는 과정에서 ‘그동안 이런 캐릭터가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엔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낯선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청자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극 중 목원은 친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성소수자이고, 직업은 무속인이다. 이런 복잡한 설정에 이유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정 감독은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며 웃었다. 하지만 이어 “이 사람은 내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극 중 목원은 자기의 직업적 믿음과 개인의 욕망이 공존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디테일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소위 ‘신내림’을 받거나 어떤 수행을 하는 무속인들도 경력이나 연차에 따라 저마다 능력치가 다르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녹여내려 했다. 얼마 되지 않은, 초입에 있는 무속인이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 설명했다.
조연배우들의 열연만큼 화제가 된 주연 김영광의 연기 변신과 노출신도 대화의 주제에서 빠질 수 없었다. <썸바디>는 파격적인 이야기와 적나라한 표현으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배우와 충분한 논의가 있었냐는 질문에 정 감독은 “당연히 촬영 전 배우에게 충분히 설명한다. 요즘엔 배우들에게 촬영에 관련된 사항이라면 모든 것을 자세히 얘기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연히 김영광 배우에게도 거듭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정 감독은 처음 함께 호흡을 맞춘 김영광에 대해 “전작들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특성상 클리셰가 많은데, 김영광 배우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굉장히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그래서 많은 관객이 좋아하는 것 아닐까”라며 팬심을 드러냈다. 이어 “그런 배우가 다른 역할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정말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배우다. 한 번 호흡을 맞춰본 감독으로서, 동시에 관객으로서 김영광이 또 어떤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며 무한한 믿음과 응원을 보냈다.
드라마는 23일 현재 넷플릭스 랭킹 3위를 지키며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라는 혹평도 나오는 상황. 정 감독은 “예전에는 작품 속 특정 장면들만 부각되면서 이야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라며 웃었다. 그리고 이내 “만약 ’29금’이 가능했다면 그걸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극적인 묘사로는 아니다. 신체를 훼손하거나 그런 묘사들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도리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욕망이 아주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통해 첫 드라마에 도전한 데 각별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부터 ‘이건 기회다’라는 생각이었다. 사람과 관계를 그리기 위한 시간이 더 주어지지 않나. 실제로도 너무 좋았다. 다만 우리 스태프들이 전부 영화를 하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작업 자체가 진짜 긴 느낌이긴 했다. 작업 면에서 영화와 드라마의 밀도가 다른 느낌이었다. 동료들이 지쳐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먼저 OTT 시리즈를 만든 동료들도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런데도 굉장히 매력적인 기회였다”고 말했다.
영화의 전개나 구성과는 달라야 했던 드라마 전개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정 감독은 “드라마 1화에 김용지 배우의 출연이 없었다. 나는 그런 데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드라마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이야길 들었다.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 그런 얘기들을 반영해서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OTT가 아닌 일반 TV 드라마는 더 신경 쓸 부분이 많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정말 다행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갈수록 영화를 만드는 게 어려워진다. OTT가 쉬운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OTT가 새로운 무대가 되어주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다음 작품 역시 OTT를 통해 만나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두었다. 차기작에 대한 질문에는 “기획된 부분이 없다”며 다음 인터뷰를 기약했다.
‘너무 자극적인 장면들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한술 더 떠 “진짜 폭력적인 것은 개인의 내면이다. 할 수만 있다면 ’29금’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를 보며, 영화보다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OTT 시리즈의 특징은 그에게도, 팬들에게도 ‘기회’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우 감독의 첫 시리즈 도전작 <썸바디>는 지난 18일 이후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