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유플러스, 400억에 왓챠 대주주로 나선다
자금난 왓챠, 700억 투자금과 11년 업력에도 현재 기업가치 200억원 한때 5,000억원 넘보던 기업의 몰락, 기존 투자사들에 대한 책임론도 대두 스타트업계 충격 속에 투자사들과 반목 심화되는 발언도 잇따라 400억 신규 지분 인수로 LG유플러스는 OTT 진출 교두보 마련, 기존 채널과 시너지도 기대
LG유플러스가 OTT 토종 3사 중 하나인 왓챠의 경영권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재 왓챠의 주요 주주, 채권자 및 이해관계자들 간 최종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태로, 이미 결정된 계약 조건이 크게 변동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지난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가 신주 발행 방식을 통해 왓챠의 경영권을 일부 확보한 대주주로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말에 인정받았던 프리 투자밸류 3,000억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2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LG유플러스가 400억원을 투자하면서 구주 매출없이 전체 지분의 2/3를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왓챠의 박태훈 대표와 경영진이 2011년부터 지난 12년간 키워온 회사의 가치, 지난 2013년 이후 투자금 700여억원 가치 합계를 불과 200억원에 인정했다는 것이다.
자금난을 이유로 프리 200억은 스타트업계 전체에 대충격
지난여름 왓챠의 대규모 구조조정 소식이 알려진 이후, 투자자들은 왓챠 박태훈 대표의 퇴진과 헐값 매각을 종용해왔다. 자칫 회사가 폐업할 경우, 현물 자산을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은 OTT 업체의 특성상 투자 지분의 가치가 0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투자사 중 가장 지분율이 높았던 에이티넘이 동시에 투자한 ‘리디’와 합병안이 나오기도 했으나, 박 대표는 잔류를 강하게 희망하면서 무산되었다. 이어 박 대표는 개인 네트워크를 통해 지난가을 내내 38억원을 모아 급한 불을 끄기도 했다. 해당 자금은 대부분 콘텐츠 이용 대가를 지불하는데 활용되었고, 당시 프리 투자밸류는 78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200억원의 프리 투자밸류 소식이 알려지면서 업계 관계자들은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리디’와 합병안이 나왔을 당시 관계자 중 한 명은 “이럴 거였으면 우리와…”라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스타트업 대표들은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는 순간부터 대표와 창업자가 아니라 VC가 회사 주인이 되는 것’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는 반응도 나온다.
또 다른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난 7월 1천억원 규모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를 준비하던 당시, 무리하게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요구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던 투자사들도 동반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약간의 추가 투자로 기업 존속을 돕기만 했어도 반년도 안되어 이렇게 헐값에 매각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2021년 말 기준, 박태훈 대표와 원지현 최고운영책임자(COO), 이태현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을 비롯한 경영진의 합계 지분율은 약 25% 내외로, 75%에 이르는 지분을 보유했던 투자사들도 기업가치 3,000억원을 넘어 5,000억원을 바라보다 150억원 내외로 쪼그라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투자사들, 장 좋을 때는 외형 키워라, 나쁠 땐 위험은 너만 부담해라
일반적으로 벤처투자사들은 스타트업들에 투자하면서 투자금이 전액 소진되더라도 매출액을 비롯한 외형을 크게 확대할 것을 주문한다. 외형이 확대되어야 추가 투자금을 받기에 유리하고, 투자 시점의 기업가치도 대폭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왓챠는 투자사들의 요청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지난 2021년 연결 기준 매출 708억원을 확보하며 2020년 대비 86.3%나 성장했다. 물론 영업손실은 154억원에서 248억원으로 증가했으나, 투자사들 입장에서는 추가 투자금이 들어가면 상관없다는 것이 2021년 말의 투자업계 분위기였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만에 금리 인상으로 성장주에 대한 투자 심리가 주춤해지자 벤처투자사들은 일괄 모르쇠로 태도를 바꿨다. 투자금을 받아달라고 줄을 서던 투자사들이 고개를 돌린 것이 비단 왓챠에 국한된 사정은 아니지만, 투자사의 요청대로 외형 성장에 집중하던 스타트업 대표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을 혼자서만 짊어지라는 투자사들의 태도에 악이 받친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럴 거면 앞으로 누가 투자 받으려고 하겠냐?”며 “투자할 때는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반자’라며 과장 표현을 하다, 이렇게 자금 사정 나빠지면 고개를 돌리면 그게 은행이지 무슨 투자사, 공동 운영자냐?”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의 운명은?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은 대체로 기업 인수·합병 시장에서 호된 저평가를 받는 것이 일상이라고 알려졌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중 영업 불능 상태에 빠진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를 제이피 모건(JP Morgan)이 불과 1달러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당시 리먼 브러더스는 13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파산 신청을 한 상황이었던 반면, 왓챠는 경영이 어려워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기업 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1:1 비교는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다.
왓챠의 경우, 기업가치 400억원으로 전망되는 블렌딩 매각을 지난 8월부터 진행해오고 있었고, 지분 51%를 매각해 약 2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상황이었다. 자금난으로 성장세가 주춤해진 것은 사실이나,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지난 7월 기준 109만 명, 자금난이 알려져 사용자가 이탈한 8월 기준 99만 명으로, 100만 명 상당의 사용자를 확보한 보기 드문 성장에도 불구하고 불과 200억원의 프리 투자밸류가 결정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올 만한 소식이다.
LG유플러스와 시너지는? 향후 전망은?
사실상 액면가 증자 상황인 만큼, LG유플러스에는 긍정적인 소식이다. 그간 기존 IPTV 기반 키즈 서비스였던 ‘아이들나라’를 OTT로 전환하면서 OTT 업계 진입을 노리고 있던 LG유플러스에게는 헐값에 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셈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에 따르면, ‘아이들나라’ 분사를 통해 왓챠와의 협력 시너지를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흘러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토스에 전자결제 사업을 3,650억원에 매각하며 남긴 차액의 적절한 투자처를 찾은 만큼, 추가 지원을 통해 SKT, KT와의 통신업계 경쟁력도 강화한다는 전망이다. 현재 SKT는 방송 3사와 연합한 ‘웨이브’를 통해 국내 OTT 중 선두업체로 자리매김했고, KT는 자체 운영 중이던 ‘시즌(Seezn)’을 CJ그룹의 자회사인 ‘티빙’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웨이브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이다.
그간 음원 업계에서 멜론의 독주에도 불구하고 SKT의 플로(FLO)가 11%의 시장 점유율, KT와 LG유플러스가 지원하는 지니뮤직이 17%의 시장 점유율 (각 2021년 말 기준)을 확보했던 것처럼, 통신사들의 자체 사용자층을 통한 OTT 가입자 확보 채널이 가동될 경우, 왓챠와의 시너지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