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증’ 기본도 못 지키나…‘슈룹’ 박바라 “엄격한 잣대에 상상력 위축”

‘슈룹’ 박바라 신인 작가, 역사 고증 논란 해명 “3년간 준비, 엄격한 잣대에 상상력 위축” 네티즌 반응은 싸늘 “공부 없는 사극 불편해” K-콘텐츠 글로벌화, 우리 문화 왜곡 없어야

사진=tvN

“퓨전 사극처럼 상상력의 범주에 놓여있는 내용에도 지나치게 엄격한 고증의 잣대를 대면 상상력이 위축될 수도 있다.”

지난 4일 종영한 tvN 드라마 <슈룹>의 박바라 작가가 ‘역사 고증 논란’에 직접 입을 열었다. 3년간 준비하고, 열심히 논문과 실록, 책을 살피며 공부했다고 털어놓으며 “비판 또한 관심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우 김혜수가 20여 년 만에 복귀한 사극으로 화제를 모은 <슈룹>은 조선시대 중전 화령(김혜수 분)이 자식들을 위해 치열한 궁중 교육열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담았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현대적 요소를 많이 녹여내며 역사 고증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됐다. 여기에 중국식 한자 표기와 중국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대사로 방영 기간 내내 도마 위에 올랐다.

박 작가는 “기획부터 방송까지 꼬박 3년이 걸린 작품이었다”고 밝혔다. <슈룹>의 시작은 ‘오펜(CJ ENM의 창작자 양성 프로젝트)’에 있을 때 ‘궁 안에 상궁 스파이가 나오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으로 ‘조선 파파라치’라는 작품을 기획한 것. 여기서 나무 가지 치듯 정리하고 남은 중전을 두고 여러 생각 끝에 ‘중전도 결국 누군가의 엄마’라는 아이디어를 얻고 이야기를 쌓아갔다.

고증 오류와 중국풍 논란에 대해 박 작가는 작품을 준비하며 왕실교육을 가장 중점으로 공부하고 취재했다면서 “한 줄 대사를 쓰기 위해 수많은 논문과 실록과 책을 살펴봤다. 책문, 종부시, 택현, 신방례, 호슬, 예체, 왕실교육법, 지식법, 사신 수련법, 관상감 관천대, 가장사초, 의창, 배동, 시강원, 종학, 계영배 등 다양한 고유 전통 등을 작품에서 소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강원과 종학 교재를 중점으로 봤다. 대사 한 줄을 쓰는데도 논문, 조선왕조실록, 서책을 살펴야 하니 사실 중간중간 한탄도 했다”면서 “모든 내용을 자문까지 받아야 해서 다시는 사극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사진=tvN

박 작가는 <슈룹> 제목을 순수 우리말로 고안한 것을 강조했다. “해외 팬들이 ‘Umbrella’가 아닌 ‘Shroop’이라고 불러줄 때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면서 해외 인기의 요인 또한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문화 덕분일 거라고 자신했다.

2회에서 문제가 된 ‘물귀원주’ 한자 표기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방송에는 ‘물건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가다’는 뜻의 물귀원주가 한자 ‘物歸原主’가 아닌 중국식 한자 표기법 ‘物归原主’로 적혀있어 논란이 됐다.

박 작가는 “교육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라 그 당시 대표 외국어였던 중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황귀인의 설정이 있었다”고 밝히며 이후 시청 불편함을 고려해 여러 설정이 제외되거나 수정되었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물귀원주’라는 중국어 표기가 남게 되는 실수였다고 해명하며 사과했다.

“이 부분은 다시 한번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드린다”고 거듭 사과한 그는 “논란이 된 ‘태화’는 고려 시대부터 사용해 온 아주 흔한 한자이며, ‘슈룹’ 속 모든 명칭들은 제작 과정부터 전문가에게 한자 자문을 받은 것이다. ‘본궁’이란 단어 또한 황원형이 감히 중전이 말하는데 끊는다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본인인 중궁(=중전)’의 말이 안 끝났다는 의미로 사용하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작품 속 한국 고유의 매력을 느껴주길 바란다고 당부한 박 작가는 이번 논란에 대해 “비판과 잣대, 그리고 이로 인한 개선도 관심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할 계획”이라면서도 “퓨전 사극은 자유로운 상상력이 있어야 기획과 제작이 가능한 장르다. 상상력의 범주에 놓여있는 내용에도 지나치게 엄격한 고증의 잣대를 대면 상상력이 위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바라 작가의 해명과 사과에도 일부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3년 준비해 만든 사극이라고 자부하기에 넘치도록 역사 고증 오류 지적을 받게 된 것. 또한 고증 오류를 ‘창작자의 상상력 제한 우려’로 연결시킨 발언에 대해 이해 불가한 태도를 보이며 “해명이 아니라 변명 같다. 역사의 기본만 지키라는 거다. ‘퓨전 사극’은 방패가 아니다. 고증 논란, 역사 공부가 싫다면 사극 쓰지 말라”고 강력하게 반박했다.

<슈룹>이 고증 논란으로 뭇매를 맞은 이유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한 뒤 대책 없이 현대적 요소를 녹인 탓이다. 여기에 주연급 배우들의 “정통 사극에 가깝다”는 말도 역풍 맞는 계기가 됐다. <슈룹>은 시작과 동시에 ‘현대판 <SKY 캐슬> 같다’는 평을 받았다. 다르게 말하면 ‘익숙한 작품을 사극으로 펼쳐냈다’는 것과 같다. 여기에 역병은 코로나19, 성소수자는 최근 부각된 문화 다양성 등 현대 이슈를 고스란히 극 안에 들여앉히며 ‘원작 없는 오리지널’이라고 말하기 무색하게 상상력 없는 이야기를 완성했다.

익숙함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지만, 중전의 위치에 있던 화령의 왈가닥 행동이나 적통 대군을 향한 후궁 소생 왕자들의 무례한 태도, “너네 엄마”, “그 새끼” 대사 등은 적어도 사극 안에서는 지켜야 할 선이 무너진 셈이다. 이는 어떤 지향점을 지닌 퓨전이 아니다. 가상의 세계, 허구의 이야기, 그리고 퓨전 사극으로 방패를 세워도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물귀원주 한자 표기 오류/사진=tvN ‘슈룹’ 장면

SNS에는 퓨전 사극에 대한 유명한 글이 있다. ‘사극에서 필요한 고증은 영의정이 1,000cc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해도 괜찮지만, 추상전하 앞에서 오토바이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천인공노할 짓’이라는 말이다. 시청자들은 상상력을 더한 흥미로운 설정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퓨전 사극을 넘어 평행세계 사극까지 탄생하는 환경이 조성될 수가 없다. 얼마든지 새로운 시도를 하되 ‘기본’을 지키라는 말이다. 특히 해외 OTT를 통해 여러 나라 사람들이 보게 될 한국의 문화라면 ‘한국풍’이 아니라 ‘한국의 것’을 제대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창작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자 의무다.

사실 <슈룹> 고증 논란은 박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영상으로 담아낸 연출, 제작진, 그리고 정통 사극을 외쳤던 배우들에게도 일정 책임이 있다. 대부분의 시청자가 박바라 신인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김혜수 출연을 반기며 TV 앞에 앉았을 테니 말이다. 이를 방송한 tvN 역시 문화 강국을 만들고자 한다면 국내 구설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드라마 <철인왕후>(2020-21) 당시 중국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한차례 역사 왜곡 논란을 크게 겪고도 같은 조심스러운 기색이 없는 건 실망스러운 행보다.

OTT를 통해 문화 국경이 사라지면서 콘텐츠의 힘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자’는 식의 무차별 콘텐츠 생산은 콘텐츠의 질을 하락시켜 지금까지 쌓아온 K-콘텐츠의 명성을 무너뜨리고 산업 전체를 파국에 이르게 할 것이다. 한국의 콘텐츠 산업은 팬데믹 이후 급성장을 맞이하며 정점에 도달했다. 세계 시장으로 점프업을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기에 콘텐츠 제작사, 플랫폼, 창작진 등 모두가 심기일전 중이다.

내년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예고된 가운데 도약 중인 콘텐츠 산업 일부에도 제동이 걸릴 위험이 있다. OTT 이용자 대부분이 ‘콘텐츠’로 인해 플랫폼을 선택한다고 밝혔다.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좋은 콘텐츠의 창작과 제작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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