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로 읽는 한국경제사 – 8.막내가 물려받는 금융지주회사

믿었던 자식들 실망, 믿게 된 막내 아들에게 그룹의 미래인 금융지주회사 물려줘 믿었던 자식보다 믿지 않은 자식이 성공하는 사례로 현대그룹 예시 한진그룹 막내아들 조정호 회장이 금융계열사 물려받아 드라마처럼 크게 키운 사례도 있어

재벌집 막내아들 11회에서 진양철(이성민 분) 순양 회장은 제조업보다 금융업이 더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아래,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할 계획을 세운다. 금융지주회사를 물려받은 자식이 사실상 순양그룹을 물려받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로 흘러가는 중에,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막내아들 진도준을 선택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기대했던 본처의 자식들이 연이은 실패를 보여주고 있으니 결국 버렸던 아들을 다시 선택한 것이다.

재벌집에서 자식들에게 사업 부문을 하나씩 나눠 물려주고, 성장 유망한 사업을 좀 더 기대치가 높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항상 그 유망 사업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큰 기대감 없이 물려 준 사업을 자식의 경영 수완이 뛰어나 크게 성공시키는 사례도 있다.

믿었던 아들이 실패, 믿지 못한 아들이 성공한 사례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은 다섯째 아들 정몽헌 회장에게 현대그룹의 핵심인 현대건설과 현대상선 등의 계열사를 물려줬다. 원래 정몽헌 회장이 7% 지분을 갖고 있었고, 2000년에 정주영 명예회장이 16%의 지분을 증여해줬다. 그러나 2001년 3월에 현대건설이 부도에 빠지며 결국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고, 정몽헌 회장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채권단이 갖고 있던 현대건설은 둘째 아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여섯째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이 만든 컨소시움이 인수했다. 선택했던 아들이 잃은 가문의 재산을 선택하지 않은 아들들이 힘을 합쳐 되찾은 것이다.

연세대 문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며 정주영 명예회장의 가장 큰 자랑이었던 정몽헌 회장은, 아버지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들 사이에서 철저하게 따돌림 당하며 연이은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이른바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형제들에게 각인을 시키면서 현대가의 정통성을 잇는 듯 했으나, 2002년 9월에 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2003년 내내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 대북사업이 차질을 빚었고, 현대그룹의 상징이었던 현대건설은 채권단의 손에 넘어가면서 복잡한 문제에 얽히던 중 2003년 8월 4일에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12층 화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한다. 타살 의혹이 있으나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타살 의혹과 별개로, 건설 및 대북사업 등의 가업을 제대로 잇지 못하면서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분에 큰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몽헌 회장의 별명 중 하나는 ‘비운의 황태자’다.

진도준 등장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신뢰를 얻었던 진동기, 진화영 등이 겹쳐보이는 부분이다.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출처=메리츠금융

막내가 물려받은 금융지주회사

드라마 상에서는 믿었던 막내아들에게 금융지주회사를 물려주면서 사실상 가문의 핵심을 물려주는 것으로 나온다. 가문의 핵심은 아니지만, 막내아들에게 금융지주회사를 물려준 사례가 현실에서도 있었다.

국민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포함, 국내 10위권 재벌기업인 한진그룹은 조중훈 창업주 아래 네 아들이 1990년대를 거치며 계열 분리를 진행했다. 그 중 막내아들 조정호 회장이 물려받은 금융 계열사 그룹이 현재의 메리츠금융이다. 메리츠금융의 핵심 계열사인 메리츠화재는 2021년말 기준 시가총액 3조6천억원, 당기순이익 6,631억원, 금융자산 28조원, 금융그룹 전체로 보면 운용자산 90조원, 6개 계열사를 갖춘 대형 금융계열사 그룹이 되어있지만, 한진그룹에서 계열 분리가 이뤄졌던 2005년의 메리츠화재는 시가총액 1,700억원의 작은 기업이었다.

드라마 상의 진도준처럼 그룹의 핵심이 아닌 작은 계열사들이었지만, 경영 역량만큼은 진도준과 비견될 수 있을 법하다. 2005년 동양화재를 메리츠화재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계열 분리를 마무리짓던 시점의 메리츠금융 계열사 전체에 대한 조정호 회장의 지분 가치는 1,000억원에 불과했다. 금융계열사들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2021년 기준 조 회장의 지분 가치는 1조4천억원에 이른다. 당시 지분율이 낮아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되기도 했던 것에 비하면 그룹 사정이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집안과 거리두며 홀로서기

범한진그룹은 형제들간 교류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5년 한진그룹 계열 분리 과정에서 네 형제 사이에 갈등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조정호 회장은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유산 분배 과정에서 선친의 생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수차례 소송을 걸기도 했다. 결국 메리츠금융그룹도 다른 형제들이 물려받은 한진그룹 계열사들과 거리를 두게 됐다.

조남호 회장의 한진중공업이 위기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회삿돈은 내 돈이 아니다”며 거절한 것은 증권가에 널리 퍼진 유명한 일화다. 편의점 CU(구 보령훼미리마트)를 운영하는 홍석조 회장이 처남인 삼성 이건희 회장을 찾아가 IMF구제금융 당시 지원을 요청했던 경험담을 여러 강연에서 언급했던 것에 비하면 형제간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 상의 진도준도 다른 형제들과 이미 단단히 척을 진데다, 사실상 ‘왕따’를 당하고 있는 신세다. 금융지주회사를 물려받으며 순양그룹의 ‘적자’가 아님에도 그룹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처럼 다른 형제들에게 ‘왕따’를 당하게 될까? 아니 지금보다 더 심하게 당하게 될까?

회귀자라 모든 지식이 다 있다고해도, 역사가 조금씩 바뀌고 있음에도 드라마 상에서 보여준 경영능력은 메리츠금융그룹의 조정호 회장 이상이다. 그런 신의 경영능력은 드라마니까 가능한 시나리오일 수는 있겠지만, 현실의 진도준과 가장 유사한 경영자도 형제간 상속 분쟁을 겪고 난 이후에는 집안 일과 거리를 두게 됐다. 현실에 진도준이 있었다면 친척들의 회사를 모두 뺏어오게 될까, 복수가 끝나고나면 서로 결별하고 다른 삶을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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