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정이’ 매력은 K-신파, 故 강수연 닮고파” [인터뷰]
넷플릭스 ‘정이’ 김현주 인터뷰 글로벌 1위 저력? 연상호 표 ‘K-신파’ 故 강수연 향한 존경과 그리움
데뷔 26년 차에도 새로운 도전에 몸을 던진다. 4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또 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매료한다. 그래도 자신의 강점을 잊지 않는다. 사람 냄새나는 A.I.는 배우 김현주이기에 구현 가능했다.
김현주는 지난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영화 <정이 JUNG_E>(감독 연상호)에 출연했다. 이 작품은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그는 딸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전쟁에 참여, 작전 실패로 식물인간이 되어 뇌 복제 대상이 된 정이를 연기했다.
<정이>는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영화(비영어권) 1위에 올랐다. 단 사흘 만에 1,93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글로벌 흥행 질주를 시작했다.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지만,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연상호 감독이 의도한 ‘신파 요소가 담긴 한국형 SF 장르’가 쟁점이다.
작품에 만족하는 팬들은 “적절한 감동과 무겁지 않은 이야기에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평가한 반면, 연 감독표 디스토피아를 기대하며 정통 SF를 기다린 일부 관객들은 과거 작품을 답습한 듯한 뻔한 신파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날 아침 글로벌 1위 소식으로 한껏 기뻐했던 김현주는 이 같은 혹평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신파적 요소는 오히려 절제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영화의 색이 더 옅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품에 녹아있는 한국적 정서가 해외에서는 신선하고 이색적인 감성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주는 ‘세련미 넘치는 당당한 도시 여자’의 이미지로 오랫동안 각인되어 왔다. <지옥>에 이어 <정이> <선산>까지 연상호의 손을 잡은 까닭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나의 다른 모습을 찾아주기 때문”이라고. 배우에게 ‘새로운 도전’은 무엇보다 탐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는 말이다.
액션스쿨에서 <지옥>을 준비할 당시 주변에서는 40대 여배우의 액션 도전에 ‘이걸 왜 하냐’며 놀라워했고, <정이>로 다시 만나자 ‘왜 또 왔냐’는 농담을 들었다는 그는 “어릴 때 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보다 잘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정이>에서 전투 A.I.로 분한 그는 <지옥>에서 못다한 액션을 해소했다. SF 특성상 CG로 처리되는 부분이 많아 상상의 대상과 연기하는 자기 모습에 ‘현타’를 느끼기도 하며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로봇이지만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에 집중하며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함께 연기한 故 강수연(정이의 딸 서현 역)과의 기억도 떠올렸다. 처음 제안을 받고 당연히 자신이 딸일 거라 생각했다는 그는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뒤집힌 모녀관계가 신선했다. 이미 정보를 알고 있기에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강수연과 함께한 마지막 신을 꼽은 그는 “벽을 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고 회상했다. 또 강수연이 눈을 감고 귓속말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눈을 감고 있는데 ‘나 얘 보면 눈물 난다’고 하셨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끌고 온 것 같다. 그 기억도 많이 생각난다”고 전했다.
김현주는 강수연을 향한 짙은 그리움을 드러냈다. “만나 뵐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 했던 분”이라고 운을 뗀 그는 “내가 감히 어떤 배우라고 말할 수 없는 분이다. 처음에는 많이 어려웠는데, 현장에서는 같이 연기하는 동료 배우로 대해주셨다. 시사회를 하면서 ‘선배님은 진짜 영화배우’라고 생각하게 됐다. 현장에서는 전설 속 인물이라 영화배우는 당연한 수식어였는데, 스크린으로 본 선배님은 진짜 멋있었다”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저 직업으로 시작한 배우였지만, 이제 잘 해내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는 김현주. “지금도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故 강수연 선배님처럼 좋은 선배,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면서 한없이 깊은 존경심을 표현했다.
<정이>를 통해 도전 정신을 되찾은 김현주는 연상호 감독이 바라던 정서를 SF물에 녹여내며 한국형 콘텐츠를 완성했다. 미세한 감정선과 섬세한 표현력, 그리고 K-콘텐츠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과감한 도전으로 이룬 결과물은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또 하나의 역사를 기대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