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禁 OTT 드라마 ‘노출 강요’ 갑질 폭로, 영화계 악습 되풀이 [이슈]

‘판타G스팟’ 출연자 “일방적 노출 통보받아” 박찬욱 “노출에 대한 협의는 ‘인권’ 문제” 자율등급제 도입 직전, OTT-TV 심의 기준 간극 커져

사진=쿠팡플레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오리지널 드라마에 출연한 한 단역 배우의 ‘노출 강요’ 폭로가 나와 충격을 안기고 있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판타G스팟>이 배우 노출 강요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드라마는 제작발표회 당시부터 “여성 작가, 감독, 배우들이 한데 모여 진짜 여자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됐다”는 자신감으로 ‘여성향 드라마’를 강조한 탓에 더 큰 충격을 안기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판타G스팟>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여자 희재(안희연 분)가 사랑 없는 관계만 즐기는 미나(배우희 분)와 섹스 상담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그동안 지상파 드라마에서 다루지 못했던 여자들의 성(性) 이야기를 과감하고 솔직하게 펼쳐낼 것을 예고하며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사진=배우 A씨 블로그 글 일부

자신의 이름으로 에세이 책을 출간하고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일상을 공유해 온 배우 A씨는 지난해 말 OTT 드라마 제작진 측으로부터 ‘노출 강요’를 받았다고 고백해 파장을 불러왔다. “두 달에 걸쳐 감독과 미팅하고 캐스팅을 확정한 배역이었지만, 촬영 직전 노출 연기를 통보 받았다”고 밝힌 그는 “제작진은 노출을 거절할 경우 캐스팅을 변경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상업 드라마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나 다름 없는 역할이라 단역을 벗어나고픈 욕망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40분 러닝타임 중 A씨의 출연 분량은 단 4분. 그 중  2분은 노출이 있는 베드신이었다. 그는 문제의 드라마 제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A씨가 올린 다수의 글에서 <판타G스팟>임이 드러났다. A씨는 “촬영 현장의 사람들 모두 젠틀 그 자체였으며, 나를 배려하기 위해 애써줬다”고 말했지만, 일방적인 노출 강요와 캐스팅 번복에 대한 암시는 명백한 ‘갑질’이라는 점에 많은 네티즌이 공분하고 있다.

논란이 거세지자 A씨는 해당 글을 삭제한 후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내 선택으로 그 작품에 출연했고, 후회는 없다. 피해보는 이가 없길 바라며 열심히 참여한 작품에 누가 될까 염려되어 해당 글은 지우겠다”고 밝혔다.

미디어 촬영 현장의 고질적 문제 ‘노출 강요’

상대적 우위에 있는 자가 우월한 신분이나 지위 등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을 일컫는 ‘갑질’은 영화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 콘텐츠 촬영 현장에서 빈번히 발생했던 일이다. 2010년대 중후반 본격화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은 과거 ‘거장의 예술혼’으로 포장됐던 일방적 노출 강요의 사례들을 폭로하며 업계에 파장을 몰고 왔다.

故 김기덕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로 활동한 배우 조재현은 감독과 유명 배우의 직위를 부당하게 남용해 여배우와 스태프들을 성적으로 희롱, 추행하고 성폭행까지 했다는 폭로가 이어지며 영화계에서 종적을 감췄으며, 당시 배우 이영진은 이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고 반응해 눈길을 끌었다. 이영진은 “시나리오에는 단 한 줄로 적혀있는 베드신이 막상 촬영 현장에 가면 완전한 노출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굉장히 심한 장르”라고 지적했다.

문소리 역시 갑자기 추가된 노출신에 거부 반응을 보이자 “다른 작품에서 많이 벗었으면서 왜 그러냐”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후 문소리는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하는 ‘위드유'(With you, 당신과 함께) 운동을 전개하며 “우리는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아니라면 방관자, 암묵적 동조자였다. 그동안 여성 배우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며 부당하게 대우한 업계에 각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 ‘아가씨’ 촬영 현장/사진=CJ ENM

자연스럽게 ‘거장’의 덕목에 윤리와 배려가 추가됐다. 소설 「핑거스미스」를 영화화한 <아가씨>의 연출을 맡은 박찬욱 감독은 주인공 숙희를 연기할 신인 여배우를 물색하며 “노출 최고 수위. 노출에 대한 협의 불가”를 전면에 내세웠다. 노출에 대한 각오가 된 사람들만 지원하라는 박 감독의 배려였다. 그는 “영화 촬영을 둘러싼 모든 계획이 다 공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출 등 예민할 수 있는 장면은 ‘어떤 내용이고 왜 필요한지’ 반드시 배우와 공유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당시 영화는 옷을 입고 리허설을 마친 후 배우들만 남겨진 채로 촬영을 진행했으며, 해당 장면을 소화한 김민희와 김태리는 “베드신 촬영을 앞두고 감독님이 와인을 준비해 긴장을 풀어주셨다. 노출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런 배려 덕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배우들의 노출에 대한 충분한 협의는 노동 현장에서의 인권문제다. 내 상식에서 이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할 수 없다”고 말하며 미디어 업계의 각성을 촉구했다.

쿠팡 <판타G스팟> 역시 촬영 현장에서의 배려를 내내 강조했다. 주연 희재를 연기한 안희연은 생애 첫 베드신을 마친 소감으로 “노출에 대한 부분은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촬영 전 회의도 많이 했고 전문 코치님들도 계셔서 편하게 촬영했다”고 말하며 남성 중심으로 제작되고 소비되던 성 이야기를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여성들의 시선으로 풀어냈다는 점을 적극 강조했다. 그렇다면 노출에 대한 고민의 시간과 촬영 전 충분한 회의는 주연 배우만이 가진 특권이었을까, 아니면 그조차 거짓이었을까?

OTT 자율등급제 시행, 영화계 악습 되풀이 말아야

OTT 업계의 숙원이었던 ‘자율등급제’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3월부터 OTT 사업자들은 자사의 오리지널 콘텐츠 등급을 자체적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과거 영화가 그랬듯 TV 콘텐츠와 OTT 콘텐츠의 심의 기준이 더 크게 벌어질 것을 예고한다.

트렌드 분석 기관 메조미디어의 지난해 OTT 업종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OTT 시장 규모는 1조원대 규모에 달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용자 수와 방대한 콘텐츠 양이다. 이는 OTT가 뉴 미디어에 그치지 않고 주류 매체로 거듭나며 그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율등급제를 맞이하기에 앞서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드는 주류 매체의 ‘사회적 의무’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볼 시점이다. OTT 자율등급제가 각종 제약을 벗어내는 단순 ‘권리’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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