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 CEO “망 이용료, ‘오징어 게임’같은 우수 콘텐츠 방해 우려”

“우리는 인터넷의 힘을 빌려 창작자와 콘텐츠 소비자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 전 세계 적인 작품이 갈수록 증가한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죠.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렉 피터스 넷플릭스 CEO가 망 이용료 부담 이슈에 대해 콘텐츠 투자 축소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그렉 피터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가 2월 28일(현지시각)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 기조연설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일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들이 우리 같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요금을 부과해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사용할 보조금 마련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망 이용료 부담,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피터스 CEO가 말하는 부정적인 결과는 망 이용료를 부과할 경우 ISP 고객 중 고가 요금제 사용자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망 이용료를 부담이 커지면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줄고, 창작 커뮤니티를 해칠 뿐 아니라 이로 인해 고가의 통신사 요금제가 가진 매력을 반감시킬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ISP가 소비자에게서 요금을 거둬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비용 지불을 요구하는 것은 동일한 인프라로 비용을 두 번 받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그들의 행동이 소비자에게 더 나은 통신 환경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며 “CP와 ISP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의무를 이행할 때 진정한 의미의 동반성장이 가능하다”고 힘줘 말했다.

넷플릭스 CEO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해당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렸다. 업계는 넷플릭스가 MWC23 첫날 기조연설자로 나선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역내시장 담당 전문위원의 “막대한 (네트워크) 투자를 공정하게 부담하기 위한 최선의 자금 조달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는 발언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했다.

유럽연합은 ‘중립’ 강조

당시 브르통 위원은 “망 이용료 관련한 논의가 ISP와 CP 간의 공정 분담을 둘러싼 분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단순히 이분법적 선택으로 볼 문제는 아니”라고 접근하며 “산업은 시대에 발을 맞춰야 하고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현행 규제들이 과거의 산업에 기반해 만들어진 만큼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화’에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ISP와 CP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겠다”고 중립을 선언하며 이날 연설을 마쳤다.

현재 EC는 망 이용료 관련한 법안 제정에 착수했으며, 브르통 위원은 이를 주도하는 핵심 인물이다. EC는 ‘기가비트 커넥티비티 액트’라는 망 이용료 납부 법안을 제시하고 12주의 의견 수렴 기간에 들어선 상태다.

“<오징어 게임> 인기처럼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피터스 넷플릭스 CEO는 브르통 위원의 말을 직접 인용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망 이용료 부과에 대해 “어제 티에리 브르통 집행위원이 말씀처럼, 단순히 거대 통신사와 엔터 기업 사이의 문제는 아니다. 양측이 각자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방식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며 인터넷 등 통신 기술의 인기가 높아진 데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인터넷의 힘을 지렛대 삼아 전 세계의 우수한 창작자들과 콘텐츠 소비자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오징어 게임>처럼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작품이 갈수록 증가한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구독자 중 60%가 넘는 이용자가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지금 우리 학교는>, <피지컬: 100> 등 한국 콘텐츠를 시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터스 CEO는 “예전 유료 TV가 엔터테인먼트를 주도할 때의 방식을 떠올려 보면, 도리어 우리가 ISP에 콘텐츠 제작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나”며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창작자들을 비롯해 창작자, ISP, 기기 제조사 등 다양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하지 않나. 이런 탄탄한 파트너십이 바탕이 됐기에 오늘 이 자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가장 좋은 접근 방식은 CP와 ISP가 각자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역할인 콘텐츠의 품질과 다양성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이날 연설을 마쳤다.

‘온건’ EU vs. 넷플릭스 ‘강경’, 국내에도 영향 미치나

이번 MWC23에서 망 이용료 분담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을 것으로 예상했던 업계는 넷플릭스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봤다. 그동안 망 이용료 분담 필요성을 강조해 온 유럽연합 등이 ‘중립’을 내세워 온건한 목소리를 낸 반면 넷플릭스는 최고 경영자까지 전면에 나서 망 이용료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냈기 때문.

한편 업계에서는 국내에서 넷플릭스와 망 이용료 분담을 두고 긴 소송전을 이어오고 있는 SK브로드밴드 역시 이번 MWC23에서 유럽의 통신사 및 협회와 물밑 접촉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국내에 발의된 7개의 망 이용료 의무화 법안이 모두 동력을 잃은 만큼 해외에서 망 이용료 부담 필요성에 대한 사례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SK브로드밴드가 이달 말 예정된 넷플릭스와의 망 이용료 지급을 둘러싼 항소심 8차 변론에서 분위기를 주도할 만한 성과를 얻어올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