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더 해, 연진아 ‘더 글로리’ [빅데이터 LAB]

넷플릭스 ‘더 글로리’ 파트2, 글로벌 흥행 시동 공개 당일 앱 사용자 55% 폭증, 몰아보기 열풍 안길호 PD 학폭 폭로에 의미 퇴색, 성적표에 이목 집중

사진=넷플릭스

“당신들도 나처럼 뜨거웠기를, 쓰리고 아팠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시간. 지난 10일 공개된 넷플릭스 <더 글로리>(연출 안길호, 극본 김은숙) 파트2에서는 학교 폭력(이하 학폭)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의 복수가 펼쳐졌다. 김은숙 작가의 첫 장르물인 이 작품은 유년 시절 학폭으로 영혼까지 망가진 문동은이 온 생을 걸고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12월 30일 공개된 파트1에서는 끔찍했던 학폭의 기억과 18년간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동은의 삶이 그려졌다. 다시 마주한 가해자 5인방(박연진, 전재준, 이사라, 최혜정, 손명오)은 과거는 다 잊은 듯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단 하나의 우연도 없이 뚜벅뚜벅 복수의 길을 걸어온 동은은 타인의 인생을 짓밟고도 양심의 가책 없이 웃고 떠드는 그들의 삶에 작은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복수가 시작되기 전 막을 내린 파트1 덕분에 시청자들은 2개월이 넘도록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야 했다. 파트2 공개 전 열린 GV에서 김은숙 작가는 전편의 인기에 놀라워하면서도 “파트2 대본을 보니 내가 봐도 무섭도록 잘 썼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김 작가와 배우들은 “모든 복선이 터질 것”이라며 “남은 파트2가 더 재미있을 거”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파트2 공개와 동시에 즉각 반응이 왔다. <더 글로리> 파트2 공개 당일 국내 넷플릭스 앱 일간 이용자가 하루 사이 55% 폭증했다. 지난 10일 구글 플레이스토어·애플 앱스토어 내 넷플릭스 일간 활성 이용자는 474만 8,605명으로 집계됐다. 전날(305만 1,798명)보다 55.6% 오른 수치다. 일주일 전인 지난 3일(257만 4,327명)과 비교하면 무려 84.5%나 늘었다.(모바일인덱스 제공)

앱 평균 사용 시간은 1인당 83.54분을 기록, 9일 63.28분과 지난 3일 62.37분을 크게 뛰어넘었다. 국내외 시청자들은 공개 당일 파트2 전편(8회)을 몰아본 것으로 풀이된다. 파트1 누적 시청 시간은 1억 7,220만 시간(이달 초 기준)이다. 엄청난 기세의 파트2는 과연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사진=넷플릭스

※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앞서 예고된 것처럼 파트2에서는 동은의 복수가 실행됐다. 가해자들은 끝까지 죄를 뉘우치지 못했다. 반성은커녕 동은의 행동을 비웃거나 반격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이들의 마지막은 파트2 공식 포스터에서 공개된 내용과 일치해 찾아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학폭 주동자 박연진(임지연 분)은 철저하게 혼자가 됐다. 사랑하는 딸(하예솔), 자랑스러운 남편(하도영), 빛나는 직업을 잃었고 엄마에게도 버림받았다. ‘학폭’ 폭로와 동시에 쫓겨나듯 기상캐스터를 그만둔 그는 제 사람 하나 없는 감옥에서 외롭고도 처참하게 극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눈으로 남을 희롱하고 상처주던 전재준(박성훈 분)은 알록달록한 세상 대신 암흑 속에서 처참한 끝을 맞이했다. 부모의 비호 아래 제멋대로 살던 마약 중독자 이사라(김히어라 분)와 평생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무리에 속하려 아등바등 하던 혜정(차주영 분)은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자멸했다. 파트1 때부터 실종됐던 손명오(김건우 분)는 죽어서도 이리저리 이용만 당했다. 그렇게 모두 지옥에 갇혔다.

피해자 동은과 가해자 연진의 중간에 서 있던 하도영(정성일 분)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자신이 서 있어야 할 딸 예솔의 옆을 지켰다. 동은의 조력자인 강현남(염혜란 분)은 가정폭력에서 벗어났다. 딸을 향한 그리움을 안고 제 삶을 살기 시작한 그는 동은과의 재회에 빨간 립스틱을 칠했다. 동은을 위해 ‘칼 춤추는 망나니’가 된 주여정(이도현 분)과는 사랑으로 서로에게 구원이 되었다.

사진=넷플릭스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를 강조했던 김 작가의 말대로 가해자는 모두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사적 복수’에 대한 조심스러운 시각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동은의 복수는 통쾌한 응징이나 단죄가 아니다. 가해자의 부정을 끄집어내 무너뜨린 방식이다. 이를 위해 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잡지 말아야 할 손도 잡았다.

극 중 동은은 복수의 과정 중 가정 파괴를 겪어야 했던 연진의 딸 예솔에게 “네가 원하면 평생 사과하겠다”면서 미안함을 드러냈다. 복수가 끝난 후에는 주변 사람과 단절하며 책임을 짊어지려 했다. 그마저도 옳은 방법이라고 옹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선(善)을 위한 악(惡)의 개입을 감싸지는 않았다. 여정의 복수를 돕기 위해 교도소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모습과 환한 빛이 구름으로 뒤덮이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죗값을 치르는 장소로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충분히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이 복수가 끝나면 문동은 씨는 행복해집니까?”

꽃길만 걷던 <더 글로리>에 잡음이 생겼다. 작품을 연출한 안길호 PD가 고교 학폭 가해자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 피해자 주장에 따르면 안 PD는 학창 시절 여자친구를 놀렸다는 이유로 하급생을 집단폭행 했다. 안 PD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의혹을 부인했지만, 이틀 만에 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상처받은 분들께 마음속 깊이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파트2 공개 사흘째 되던 날이다.

<더 글로리>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학폭 가해자가 만든 ‘학폭 비판 드라마’를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다는 의견이다. 글로벌 히트작이 된 작품을 통해 안 PD는 승승장구하고, 학폭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은 드라마 팬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으며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은 ‘연진이가 승리하는 세상’이었다.

드라마를 향한 여론도 달라졌다. OTT랭킹-(주)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가 ‘더 글로리'(‘글로리’ 포함) 키워드로 데일리 여론 분석을 진행한 결과(①) 안 PD가 학폭을 인정한 어제(12일) 기준 ‘더 글로리’와 함께 ‘학폭-감독-가해자-안길호’의 언급량이 급상승했다. 이와 함께 ‘현실-피해자-조롱’이라는 단어도 나타났다.

키워드 간 네트워크(②③④)를 종합하면 ‘학폭을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의 감독 안길호는 학폭 가해자다. 작품의 인기 영향으로 안 PD는 쉴드를 받고, 피해자는 조롱당하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부정 키워드(⑤)가 긍정 키워드(3.6%)를 넘어서며 4.3%를 기록했다. 전체 비율에서는 크지 않으나 지수로 보면 파트2 공개 당일 2에서 13으로 11이나 상승했다.

상당히 치명적인 ‘제작진 리스크’에도 <더 글로리>의 흥행 질주는 이어질 전망이다.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오늘(13일) 기준 전 세계 35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주연 송혜교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높은 인기와 화제성은 이미 확보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 세상 문동은을 위한 응원’이라는 작품의 의미가 퇴색됨과 동시에 김 작가의 “딸이 ‘내가 누군가를 때리는 것과 맞고 오는 것 중 뭐가 나아?’라고 물었던 답을 찾았다. 차라리 맞고 오는 게 낫겠다. 나에게는 가해자를 지옥까지 끌고 갈 돈이 있다”는 말은 우스운 입방정이 되었다. ‘스타 PD가 된 학폭 가해자’ 안길호 연출의 이후 행보와 <더 글로리>가 받아들 성적표에 시선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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