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스타] 한석규, 낭만에 대하여

한석규의 존재감 ‘낭만닥터 김사부’ ‘진짜 어른’의 아이콘, 캐릭터와 혼연일체 32년 경력 배우의 낭만에 대하여

사진=SBS

놀랍도록 까칠하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하다. 물과 기름처럼 영원히 섞이지 않을 것 같지만, 결국 그 넓은 품에 포개어진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현시대 잊혀 가는 가치와 아름다움, 그 낭만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중심에는 배우 한석규가 있다. 7년에 걸쳐 김사부로 분한 그는 ‘진짜 어른’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SBS 인기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3이 3년 만에 돌아왔다. 모난돌의 성장기를 그린 전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서는 김사부(한석규 분)의 숙원 사업 ‘권역외상센터’를 둘러싼 갈등과 위기 속 의료진들의 모습을 담는다. 시즌을 거듭하며 김사부는 까칠한 괴짜 천재 의사에서 존경받고 닮고 싶은 선배 의사로 이미지를 굳혀갔다.

시즌1 윤서정(서현진 분), 강동주(유연석 분)를 대하는 태도가 단호하고 냉정했다면, 시즌2 서우진(안효섭 분), 차은재(이성경 분)에게는 비교적 다정하고 자상한 편이었다. 한결 부드러워진 김사부를 보며 누군가는 아쉬움을 표했지만, 모난돌과 부딪히며 김사부 또한 부드러운 표면을 갖게 된 그의 변화는 또 다른 성장이자 기쁨이다.

한석규는 김사부를 제 옷처럼 소화했다. 그가 아닌 김사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젊은 날의 실수로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그는 자신의 의술로 생명을 구하는 행위를 통해 사회에 기여했다. 명확한 기준과 분명한 소신의 소유자인 만큼 주변 사람과 부딪히는 일도 많았지만, 백절불요(百折不撓) 정신과 자세로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며 자연스럽게 믿음과 신뢰의 관계를 형성했다.

“환자를 살린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김사부는 굽이지고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뒤에는 돌담 가족들이 있었다. 박은탁(김민재 분), 오명심(진경 분), 정인수(윤나무 분), 배문정(신동욱 분), 남도일(변우민 분), 장기태(임원희 분) 등 끝까지 제 자리를 지킨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품 속 김사부가 ‘돌담병원’의 중심이듯, 한석규도 ‘낭만닥터’ 팀의 중심에 있다. 시즌1부터 함께한 김민재는 한석규에 대해 “어떤 마음을 표현해도 모자랄 만큼 너무 감동적인 선배님이자, 사부님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해 주연으로 거듭난 안효섭, 이성경 또한 시즌3 합류에 한석규의 존재가 컸다고 밝혔다. 돌담 밖에서도 한석규는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로 통한다.

사진=각 작품 스틸컷

성우로 활동하던 한석규는 1991년 본격적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공채 시절 역할 크기와 관계없이 여러 작품에 출연했던 그는 영화 데뷔작 <닥터 봉>(1995)과 <은행나무 침대>(1996)로 충무로 라이징스타에 등극했고, 1997년 <초록 물고기>, <넘버3>, <접속> 세 작품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독보적 존재로 거듭났다. 이후 여전히 명작으로 손꼽히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한국 블록버스터의 시초이자 영화계 역사를 바꾼 <쉬리>(1999) 등으로 90년대를 후반기를 독식했다.

2000년대에 들어 다소 주춤한 기세를 보였지만, 한석규는 스크린에서 브라운관으로 무대를 옮겨 다시 한번 도약했다.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역을 맡은 그는 25.4% 시청률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어 2016년 <낭만닥터 김사부>로 완전히 안방극장을 장악하며 연기 장인으로서의 면모를 입증했다.

김사부 인기의 핵심은 지금 시대에 사라지는 것에 대해 ‘잊지 말고 지켜라.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노동의 가치는 사라지고 그저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세상의 도래, 빈부 격차 증가에 따라 수저 계급의 탄생, N포 세대의 등장으로 삶에 지친 청춘들에게 ‘어른들이 세상을 망쳐놨어도, 그래도 너 자체로 한번 부딪혀 보라’는 말로 용기와 위로를 건네며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한석규의 중저음 목소리는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강력하게 전달되어 김사부라는 인물에 강렬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힘 있는 소리만으로 ‘하나의 뚝심’을 표현하며 김사부의 정체성을 완성했다. 그동안 쌓아온 내공만큼 거침없는 감정 표출과 매끄러운 완급조절로 배우와 역할의 경계를 조금씩 지워가며 혼연일체를 이뤘다. 또 후배 팬덤의 사랑과 응원을 받으며 촬영장의 중심으로서 돌담 식구들을 하나로 응집시켰다.

사진=SBS

32년 배우 경력을 지닌 한석규에게도 김사부는 특별하다. 7년간 이어져 오는 시즌제 드라마는 그의 인생에 한 부분을 차지했다. “<낭만닥터 김사부> 작품과 만난 건 행운”이라고 말한 그는 “어느 날 문득 ‘내가 연기를 못하게 될 때가 오면 이 작품이 생각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면서 함께하는 동료들을 향한 애정과 감사를 표현했다.

한석규에게 낭만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무엇을 위해 가고 있는가’와 같은 실존에 관한 질문이다. 생산성 없는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를 파악하고 발걸음의 방향을 조율하고 컨트롤하며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는 일이 이 시대 가장 필요한 낭만이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의사, 왕, 경찰, 남편, 화가, 사진사, 특수요원 등 다양한 인생을 체험한 한석규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가고 있을까. “배우는 감정의 표현으로 인물을 구축하고 나타내는 일을 한다. 잘 되던 게 갑자기 안 되면 갈 길을 잃고 두려움에 자신감을 잃어 무너질 때도 있다. 그럴 때 동료들(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전언이다.

한석규의 연기는 심지가 굵다. 그래서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그의 체취가 묻어있다. 가상의 캐릭터에 발을 들이고, 서서히 잠식하면서 한석규 화를 진행한다. 그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시청자들은 한석규는 김사부로, 김사부는 곧 한석규로 인식하며 편안하게 작품이 몰입하게 된다. 연기에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처음부터 남달랐던 그의 연기는 시대를 넘어 완성형에 도달했다. 온기가 느껴지는 목소리 또한 강점으로 작용했다.

‘연기를 못 하게 될 날’까지 생각한 한석규는 1964년생으로 올해 60세다. 최근 <낭만닥터 김사부3>에서 불성실한 Z세대 의사 장동화(이신영 분)에게 소리치며 훈육하는 모습으로 볼 때, 연기 수명을 걱정할 때는 아닌 듯 하다. 무엇보다 환갑을 맞이해 더 깊어질 그의 정서와 예술적 묘사에 기대감이 높아진다. 이름이 곧 브랜드, 출연만으로 흥행이 보장되는 국민적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 앞으로도 영화, 드라마, OTT 등을 통해 여러 장르와 카테고리를 넘나드는 연기를 펼쳐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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