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서 성장한 한류, 한국 영화의 새로운 기회는 OTT 시장?

김윤지 수석연구원, ‘설계되지 않은 성공, 한류’ 강연 “한류는 경제위기가 만들어 낸 문화 산업” “위기의 한국 영화, OTT 시장 흐름 타야”

사진=새얼문화재단

“한류는 위기에서 나타났던 새로운 기회다. 지금 새로운 기회는 바로 OTT”

지난 10일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설계되지 않은 성공, 한류: 한류의 탄생과 발전’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류의 성공을 이끌었던 가장 큰 요소는 문화의 산업화다. 과거 우리나라는 모든 외국 영화들을 따로 수입해 스크린에 거는 간접 배급 방식으로 상영했다. 하지만 1986년 우르과이라운드협상 이후 영화법이 개정되면서 한국 영화 시장은 ‘개방기’에 접어들었다. 이로 인해 할리우드 영화를 포함한 외국 영화들의 직접 배급이 기능해졌고, 한국 영화계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영화계는 격렬한 반대 의견을 이어갔다. 외화가 국내 영화시장에 들이닥치기 시작하면서 영화계는 위기감을 느꼈고, 수많은 외화의 등장에 반미 감정까지 나타났다. 급기야 직접 배급을 반대하는 영화인들은 1988년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위험한 정사>가 상영되던 영화관에 뱀을 푸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개방으로 인한 위기는 기회로 탈바꿈했다. 1993년 개봉한 <쥬라기 공원>의 흥행 수입이 국산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고, 당시 김영삼 정부와 국내 영화계는 문화산업 진흥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영화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 문화산업정책 전환을 추진했다.

이후 1997년 IMF 외환위기의 발생으로 문화 산업은 다시 한번 도약에 나선다. 이듬해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등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에 착수, 자유로운 제작 환경과 경쟁 환경을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 영화는 문화가 아닌 산업으로 발전했다. 이어 김수현 작가의 MBC <사랑이 뭐길래>의 중국 수출을 시작으로 한류가 시작됐고, MBC와 KBS, SBS 방송 3사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계는 더 재밌고 퀄리티 높은 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사랑이 뭐길래>를 시작으로 2002년 KBS <겨울연가>, 2005년 MBC <대장금> 등의 드라마가 아시아 시장에서 유행했고, 수익은 많지 않았지만 K-콘텐츠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기회가 됐다.

당시 미국은 김대중 정부에게 스크린쿼터제 폐지로 영화 시장을 완전히 개방할 것을 요구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국내에서 상영하는 영화 중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40%가 되기 전까지는 완전한 개방은 어렵다는 것이 김 정부의 입장이었다. 스크린쿼터제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자국의 영화를 일정 기간, 일정 횟수 이상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후 노무현 정부 시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과 함께 한국에서 스크린쿼터제가 폐지됐고, 한국 영화 산업은 다시 한번 침체기를 맞이한다. 스크린쿼터제 폐지와 함께 찾아온 침체기는 되려 한국 영화 산업에 새로운 자극이 됐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실미도>를 시작으로 <태극기 휘날리며>(2004), <왕의 남자>(2005), <괴물>(2006), <해운대>(2009) 등 많은 한국 영화가 천만 관객을 달성한 것도 한국 영화산업의 분위기 고취에 큰 역할을 했다.

2010년을 기점으로 한국 영화는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했다. 2013년 영화 산업 역사상 최초로 영화 관람객이 2억명을 넘어섰고, 한국 영화 기준으로도 2011년 8,000만명에서 이듬해인 2012년에는 1억 1,000만명, 2013년에는 1억 3,000만명을 달성하며 매년 성장세를 기록했다. 2012년부터는 흑자를 달성하기도 했다. 개방으로 맞이한 위기가 한국 영화를 ‘산업화’의 길로 이끈 것이다.

이후 2017년부터 등장한 넷플릭스 등 OTT의 등장은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됐다. 글로벌 OTT의 등장으로 더 이상 드라마와 영화를 국가마다 수출할 필요가 없어졌고, 제작사와 배급사들이 OTT를 통해 판매한 K-콘텐츠들은 글로벌 행보를 걸었다.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만 보아도 K-콘텐츠의 전세계적 인기를 입증할 수 있다.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TV(비영어) 부문에 따르면 역대 가장 많이 소비된 콘텐츠 1위는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이며, 또 다른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과 <더 글로리>는 각각 4위와 5위에 올라있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7위에 자리한다. 10위까지 순위를 메기는 글로벌 차트에 한국 콘텐츠 4편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 한국 영화의 위기와 성장으로 시작된 문화 산업의 발전이 K-콘텐츠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김 연구원은 현재 팬데믹으로 위기에 빠진 영화 산업이 OTT 시장의 흐름을 타야 한다고 밝히며 “영화 산업의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영화계는 OTT 시장에서 세대교체를 이루며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OTT와 K-콘텐츠 사이에 IP(지적재산권) 문제, 수익 구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부분은 많지만, 이는 한류의 세대교체를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한국 영화는 재기를 위해 OTT 플랫폼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빈과 황정민 주연의 <교섭>,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 박서준과 아이유가 함께한 이병헌 감독의 <드림> 등 대작조차 극장 상영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며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이한 영화 업계는 생존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소비와 투자가 OTT로 분산되어서 라는 분석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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