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드백’ 관례 깨부순 쿠팡플레이, ‘생태계 혼란’ 방치해도 괜찮을까
사실상 사라진 ‘홀드백’ 관례, 정부 차원의 개입 일정 부분 필요할 듯 살아남기 위해 열심인 쿠팡플레이, 영화관도 출구전략 모색해야 상영관 개조하기 시작한 영화관들, ‘살아남기 경쟁’ 시작됐다
콘텐츠 업계에서 암묵적으로 준수되고 있던 ‘홀드백(방영 유예 기간)’ 관례가 사실상 사라졌다. 최근 쿠팡플레이가 개봉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프리미엄 영화를 무료로 배포한 것이 그 방증이다. 이에 업계에선 쿠팡플레이의 행보가 전체적인 콘텐츠 생태계 질서 붕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쿠팡플레이, ‘존 윅4’ 개봉 59일 만에 공개
2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는 지난 9일부터 3일간 ‘쿠플클럽’이라는 추가 와우회원 전용 혜택을 출범하면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지난 4월 12일 개봉한 <존 윅4>를 무료로 제공했다.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되기까지 홀드백 기간은 겨우 59일로, 2달이 채 넘지 않았다.
홀드백이란 극장에서 처음 상영된 이후 IPTV, OTT 등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기까지의 유예 기간을 의미한다. 그동안 신작 영화들은 최소 3주의 홀드백 기간을 거쳐 1차 플랫폼에 유통돼 왔다. 이게 관례였다. 그러나 이 같은 홀드백 기간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점차 짧아졌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영화관의 관객 수가 급감하면서 플랫폼으로 직행하는 영화들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업계가 특히 이번 쿠팡플레이 사례에 주목하는 이유는 OTT 등 2차 플랫폼의 홀드백 기간까지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여타 영화와 비교해도 <존 윅4>의 홀드백 기간은 상당히 짧다. 예컨대 <아바타: 물의 길>의 경우 개봉 105일 만인 지난 3월 28일에야 VOD 서비스를 시작했고, 지난해 9월 7일 개봉한 <공조2>도 VOD 서비스까지 53일, OTT 서비스까지 123일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쿠팡플레이 행보, OTT 생태계 붕괴시키나
쿠팡플레이의 행보에 업계에선 당장 ‘대체효과’가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쿠팡플레이의 월간활성화사용자수(MAU)는 431만4,098명으로, 토종 OTT 가운데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티빙(514만7,273명), 3위는 웨이브(391만9,076명)가 차지했다. 이에 대해 한 업계 전문가는 “토종 OTT의 생존분기점을 8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생존을 위해 적정 수준의 가입자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프리미엄 영화를 짧은 기간 무료로 공개한다는 쿠팡플레이의 전략은 화제성 면에서나 MAU 확보 면에서 좋은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홀드백 관례를 깨는 행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콘텐츠 제작 및 유통 전반에 걸친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콘텐츠 업계 전반에 투자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OTT 차원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쿠팡플레이 사례처럼 OTT가 단순 수급을 중심으로 운영될 경우 콘텐츠 생태계에 그다지 좋은 역할을 해낼 수 없다. 쿠팡플레이가 업계 내 수급 비용만 높여 놓고 막상 향후 콘텐츠 업계에서 발을 뺄 수 있으리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홀드백 기간이 짧아지면 영화관의 존재 의의 자체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영화관은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엔데믹을 거치며 존립 위기를 맞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CJ CGV는 매출 1조2,813억원, 영업손실 768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매출 1조9,423억원, 영업이익 1,220억원)과 비교하면 매출은 34%나 급감했으며,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홀드백 관례마저 사라진다면 CJ CGV 등 영화관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영화관, 생존 위해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찾아야
영화관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할 시점에 놓여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잘 나간다’고 알려진 OTT마저 먹고 살기 위해 시장의 암묵적 룰을 깨가면서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 노릇이다. 이런 가운데 사실상 OTT의 그림자 뒤로 밀려난 영화관이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선 ‘묘수’를 던질 필요가 있다.
최근 영화관들은 발길을 돌리는 관객들을 붙잡기 위해 영화관이란 ‘공간’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일부 상영관을 운동시설로 개조하거나 상영관을 활용해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의 방식이다. 특수 상영관의 장점을 활용해 가수의 공연 영상을 상영하는 곳도 있다. CJ CGV는 지난해 국내 영화관 최초로 기존 상영관을 개조해 클라이밍, 골프 등 운동 시설을 만들기도 했다.
롯데시네마는 서울 잠실 월드타워 ‘수퍼플렉스(SUPER PLEX)’를 리뉴얼했다. 좌석 수를 기존 628석에서 295석으로 절반 이상 줄이는 대신 ‘누워서 볼 수 있는 영화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전시기획사 씨씨오씨와 손잡고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 전시공간 ‘CxC 아트뮤지엄 x 롯데시네마’(CXC아트뮤지엄)를 개관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영화관은 전시장, 카페, 워크숍, 체험 등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쿠팡플레이가 암묵적 룰을 깬 건 하나의 ‘전략’이다. 그런 만큼 쿠팡플레이의 전략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쿠팡플레이의 행위가 전반적인 콘텐츠 생태계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영화관 나름의 자구책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정부 차원에서도 홀드백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실제 프랑스의 경우 홀드백 기간을 법률로 정하고 있다. 프랑스 법령에 따르면 유료 케이블채널은 극장에서 개봉되고 6개월, 넷플릭스는 15개월 이후부터 해당 영화를 유통할 수 있다. 특히 영화 투자 비용이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짧은 홀드백을 적용한다. 영화제작 투자 활성화를 함께 노리기 위함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일정 부분에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